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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 Theme.2 세상을 바꾼 1세대 여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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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깬 신여성·노동자의 등장 


사회적 존재감 드러내며 

교육·계몽·노동운동 투신

거대한 항일 물결에 합류


글 | 예지숙(조선대학교 HK연구교수)


개화기 이래 여학교가 설립되고 근대적 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근대적 교육의 수혜를 입으면서 누구의 딸이나 동생이 아닌 개인으로서 자신을 인식하였고 스스로 정치적·사회적 주장을 당당히 드러냈다. 3·1운동 당시 여학생, 여교사, 전도부인 등이 서울의 거리 시위를 주도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여학생의 소풍행렬이 구경거리가 될 정도였으며, 담장 바깥은 금기였던 시절이라 여성들의 거리 시위와 투옥은 사회에 그야말로 ‘충격’을 안겨주었다. 3·1운동을 통하여 고양된 사회적·정치적 존재감을 바탕으로 1920년대에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이 일어났으며 조선여자교육협회, YWCA, 근우회 등 여성 단체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변혁의 시대 속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누구의 아내, 어머니, 딸이라는 관계가 아닌, 자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자신을 규정하게 되었다.


  전통사회가 근대사회로 급격하게 전화하면서 여성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킨 커다란 동력은 학교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인 제도였다. 여학교에서의 교육과 학교생활, 교우관계를 통하여 여성들은 가내적 존재가 아닌 사회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사회운동, 항일운동에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근대적인 교육을 받은 소위 ‘신여성’이나 ‘여학생’이 중심적인 존재였지만 여성운동이 지식인 엘리트 운동에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 일제가 주도한 식민지 공업화 과정에서 정미업, 방직업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남녀 차별, 민족차별의 여건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권익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이끌어갔다.


남녀평등 주장하며 구국운동에 나서


근대사회로의 전환기에 가장 먼저 사회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여성들은 양반 부인이었다. 선교사에 의하여 곳곳에 여학교가 세워지고, 정부에 의하여 근대적인 학교가 수립되었음에도 여성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자 양반 부인들은 ‘찬양회’를 조직하여 1898년 여학교 설립운동에 나섰으며 기금을 모아서 1899년에 ‘순성여학교’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목구비와 사지오관의 육체가 사나이와 일반이거늘 이같은 압제를 받아 세상 형편을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 모양이 되리오…”라면서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대우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또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상실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의병장으로 유명한 윤희순(1860~1935)은 1907년 의병전쟁 때 부녀의병단 30여 명을 모아 의병의 취사와 세탁 등을 도맡았고 화약, 화승총 만들기 및 군자금을 모집하고 나아가 실전 훈련도 하였다. 윤희순이 지었다는 ‘안사람 의병가’ 중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나가 의병 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라는 구절을 통하여 여성 의병의 사회적 인식과 구국의식을 엿볼 수 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 때에는 구국운동에 나섰는데 ‘대안동 국채보상운동부인회’, ‘인천항 국민적성회’ 등 지역을 단위로 국채보상운동 단체를 설립하여 모금운동을 하였다. 국민적성회의 여성들은 여자도 ‘대황제 폐하의 적자이고 남녀 구별은 있지만 권리는 같은 것’이라며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구국운동에 나섰다.  

  

근대적 교육을 받은 ‘여학생’ 등장 


  개화기 이래 여학교가 설립되고 근대적 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이 등장하였다. 1910년대에 전국에 1,000명 정도의 한국인 여학생이 중등학교에 수학하고 있었다. 이들은 근대적 교육의 수혜를 입으면서 누구의 딸이나 동생이 아닌 개인으로서 자신을 인식하였고 스스로 정치적·사회적 주장을 당당히 드러냈다. 이들은 민족문제와 계급 문제, 젠더 문제가 결합된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주의 민족해방운동, 민족주의 운동 등 다양한 흐름에 공명하고 여성 문제를 제기하였다. 


3·1운동 당시 여학생, 여교사, 전도부인 등이 서울의 거리 시위를 주도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여학생의 소풍행렬이 구경거리가 될 정도였으며, 담장 바깥은 금기였던 시절이라 여성들의 거리 시위와 투옥은 사회에 그야말로 ‘충격’을 안겨주었다.  


여학생들은 3·1운동 이후 동맹휴학을 통하여 학교와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하는데, 3·1운동기에 맹휴를 통한 시위를 시작으로 1920년대 중반에는 점점 증가하더니 1927, 28년경에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는 ‘맹휴의 시대’라 할 만큼 동맹휴학은 학생운동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노골적으로 민족차별을 일삼는 일본인 교사와 그를 따르는 한국인 교사에 대한 배척운동이 가장 많았으며, 차별 교육 철폐와 같은 정치적 요구를 내건 사례도 많았다. 1927년에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의 일본인화 교육에 반대한 동맹휴학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1929년에 민족차별을 발단으로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에서 여학생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겨울방학에 돌입하면서 잠잠해졌으나 1930년 1월 15일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이화여고보), 숙명여고보, 동덕여고보, 근화여학교, 배화여고보, 경성여자학업학교 등 각 학교 여학생들이 ‘서울지역 여학생연합시위’를 전개하면서 학생시위에 다시금 불을 지폈고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3월까지 이어졌다.


다양한 여성 사회운동과 정치운동 전개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 여성들은 1920년대에 들어 더욱 다양한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을 조직하고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여성조직으로 여성교육운동가로 덕성여대의 설립자인 차미리사(1889~1955)가 주도한 조선여자교육협회, 김필례 등이 주도하여 1922년 설립한 YWCA 등이 대표적이었다. 또 사회주의 이념을 항일운동에 수용하였고,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소개되면서 여성 사회주의 운동단체들이 설립되었다. 1924년에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로 ‘조선여자동우회’가 설립되어 항일운동을 하였다. 


1927년 5월 27일 창립총회를 통하여 근우회가 결성되었다. 이로써 민족주의 여성운동과 사회주의 여성운동으로 나뉘어 전개되던 여성운동이 항일과 남녀평등 문제를 매개로 이념을 초월하여 통합된 것이다. 근우회는 일본의 오사카 도쿄 등을 포함하여 60개 지부를 거느린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근우회의 인사들은 전국 순회강연과 야학 등을 통하여 여성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에 근우회가 해산되었는데 이즈음 사회주의 여성운동은 방직·제사·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일어난 것을 목도하면서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였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은 동덕여학교 출신으로 동맹휴학을 주모하면서 항일운동가로 성장하여 1930년대에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민족운동가로 활약하다가 노선을 갈아타고 일제 협력의 대열이 들어선 사람들이 대거 출현했던 일제 말에 박진홍은 검거와 투옥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끝까지 일제에 항거하였다. 


마지막으로 여성 노동자의 저항을 살펴보겠다. 1920년대 이후에 경공업을 중심으로 근대 공업이 발전하였고 일본 독점자본에 의하여 대규모 방직회사들이 한국에 진출하였다. 노동자 중에는 여성과 유년의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유년 노동의 증가는 여성 노동의 증가와 관련이 깊다. 이들은 성인 남성 노동자에 비하여 다루기 쉬웠고 임금도 적게 줄 수 있었다. 여성노동자들의 활약은 1920년대 초반부터 두드러졌다. 쌀 고르는 일에 종사하는 선미여공의 파업, 노동운동에 커다란 자극이 되었던 경성고무여성노동자 동맹파업, 1930년대 여공들의 파업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중 ‘을밀대의 투사, 강주룡’이 주도한 1931년 평양공장총파업은 이 사건을 주요한 이슈로 단박에 끌어올릴 만큼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념적인 지향과 항일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와 별도로 교육운동, 계몽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한 여성들의 활동은 종국에 항일이라는 거대한 물결로 합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대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였다. 또 여성 스스로 누구의 아내, 어머니, 딸이라는 관계가 아닌, 자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자신을 규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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