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 Special 친일문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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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 우리의 역사 바로 세우기
2-1.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 바로 세우기, 어디부터 출발해야 하나?
일제 식민사관은 현재 진행형
친일 아닌 척하는 이중 구조 더 심각
글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내세우며, 우리 역사를 축소, 훼손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심어 놓은 사관, 즉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
친일극복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친일당사자를 극복하는 문제이고 또 하나는 친일의 이론적 구조를 극복하는 문제다. 지금 친일당사자는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에 친일의 이론적 구조를 극복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먼저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는 논리의 문제다. 친일 행위가 ‘따지고 보면 애국’이었다‘든지 ’그 시대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식의 궤변이다. 이는 비교적 극복하기 어렵지 않는 논리다. 그 시대에도 일제에 맞서다가 사형당한 순국선열들과 투옥당한 독립운동가들이 많았다는 반론이면 충분하다. 더 큰 문제는 겉으로는 친일이 아닌 척하는 이중적 이론구조의 문제다.
이능화가 식민사학의 대표(?) :
학통과 직업으로 이어지는 친일이 더 심각

한때 ‘친일파 99인’을 묶은 명단이 있었다. 을사오적부터 시작해서 정치·경제·교육·언론·법조·여성·문학·종교계 등에서 친일행위를 했던 인사들 명단이었다. 이 명단은 그대로 해방 이후 한국 사회 각 분야를 주도해왔던 인사들의 명단이기도 해서 한국현대사가 얼마나 친일파들이 득세했던 역사인가를 잘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 중 학술계의 친일파 명단에는 ‘정만조·어윤적·이능화·최남선’의 네 명이 들어가 있었다. 보통사람들은 최남선 외에는 누구인지 잘 모를 것이다.
이중 이능화에게는 ‘민족사 왜곡과 식민사학 확립의 주도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남한학계의 식민사학 문제는 현재진행형인데, 그간 ‘식민사학’하면 ‘이병도·신석호’가 꼽혔지 ‘이능화’가 꼽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병도·신석호는 사라지고 이능화만 들어갔다. 이능화는 1943년 세상을 떠났기에 해방 후 남한 강단사학계가 계속 식민사학을 계승하는 구조와는 관련이 없다. 남한 사학계의 고질적 식민사학 청산은 ‘이병도·신석호’를 극복해야지 이능화를 비판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병도·신석호는 총독부가 만든 ‘식민사학’의 이름만 ‘실증사학’으로 바꾸어 단 채 남한 강단사학계의 정설로 승격시킨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해방 후 친일파들이 ‘친일’이란 문패를 ‘반공’으로 바꾸어 살아남았던 것과 같은 행태였다.
남북한의 역사학 :
일제 식민사관의 극복, 아직도 해결 안돼
해방 후 역사학계에는 세 파 정도의 역사학자들이 있었다.
첫째는 박은식·이상룡·신채호 등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역사학으로 정인보·안재홍 등이 이를 계승했다. 해방 후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하고 정인보·안재홍 등이 6·25전쟁 때 납북되면서 힘을 잃었다. 현재 남한에는 이 역사학을 계승하는 대학 역사학과가 없다.
둘째는 맑스의 사적유물론을 지지하던 사회경제사학자들이었다. 이들이 대거 월북해 북한 역사학계를 형성해서 북한 역사학계의 주류가 되었다.
셋째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했던 이병도·신석호 등의 식민사학자들이었다. 이들이 분단과 6·25전쟁을 이용해 남한 강단사학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식민사학이란 본명을 실증사학으로 바꾼 후 식민사학을 해방 후에도 남한 강단사학계의 정설로 승격시켰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사의 강역에서 대륙과 해양을 삭제해서 반도사로 축소시켰다. 그 반도의 북쪽은 고대 중국의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다고, 남쪽은 고대 야마토왜의 식민지인 임나가 있었다는 것이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이다. 이것이 ‘한사군=한반도설(낙랑군=평양설)’과 ‘임나=가야설’로서 한국사는 외국의 식민지로 시작했다는 논리다.
북한 학계는 1960년대 초반에 일찌감치 이 두 학설을 쓰레기통에 처박았지만 남한 강단사학계에는 아직도 정설이다. 총론으로는 늘 식민사학을 비판하지만 각론에서 들어가면 늘 식민사학을 옹호한다. 희한한 것은 이런 식민사학 옹호에는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좌우도 없고,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사실이다.
작금의 문제는 신친일파 :
친일의 이론적 구조 극복과 인적 청산 필요
이런 상황에 고무된 일본 극우파들은 ‘신친일파’ 육성에 나섰다. 일본 문부성 장학금과 사사카와 재단처럼 전범들이 만든 재단들의 막대한 돈이 ‘신친일파’ 육성에 사용된다. 이들이 각 대학 사학과에 진출하기 시작하더니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본성’이라는 이름의 가야전시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본성(本性)’은 본래 타고난 성질이란 뜻의 일본어 혼세이(ほんせい)를 그대로 옮겨놓은 일본식 조어이다. 조선총독부가 주창했던 ‘임나일본부설’이 조금 변형된 채로 설명문을 가득 채웠다. 식민사학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급기야 임나일본부설을 국고로 선전하는 상황으로 악화된 것이다. 일진회가 일본과 한국 내각에 합방청원서를 제출하며 기세를 올리던 망국 직전과 흡사하다.
그래서 현재 우리 사회의 친일문제를 극복하려면 광복 직후처럼 친일의 이론적 구조 극복과 새롭게 등장한 ‘신친일파’의 인적 청산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하게 되었다. 한 세기 전 우리 선조들이 바보라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죽은 친일파 성토에는 열을 올리지만 산 친일파에게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