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 Theme.1 국가보훈정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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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 국가보훈제도로의 전환 필요
남·북한 보훈대상자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징적 기제 존재해야
글 | 유영옥(칼빈대 석좌교수, 국가보훈학회 회장)
우리나라의 보훈제도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6·25전쟁, 4·19혁명, 월남파병, 1970년대 민주화투쟁, 1980년대 민주화운동 등을 고려하여 변천, 발전되어 왔다.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다. 지난 일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는 것은 현재 위치를 모르는 것이고,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훈정책은 국가정책의 수립·집행 과정에서부터 다른 어떤 정책보다 앞선 순위에 있다.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36년간 식민통치를 당했고, 이어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으로 인해 전쟁의 상흔을 겪었으며 천안함, 연평도 등의 사건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한의 반평화적인 도발 행위로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 보훈정책의 경과 내용을 살펴보고, 그 실상과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 미래지향적인 개선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국가보훈업무의 과거와 현재

1950년대와 1960년대는 국가보훈제도 정착을 위한 단계로서 생계안정이 중심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보훈행정 관료제도의 발달과정은 역사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광복 후의 좌우 대립, 6·25전쟁, 4·19혁명, 월남파병 등으로 역사적인 커다란 고비마다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다. 국가유공자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답하기 위하여 각종 시책을 펼쳐온 것은 1960년 4월 14일 법률 제127호로 공포된 군사원호법이 그 효시라고 하겠다.
이후 제3공화국으로 이행하는 1961년 7월 5일 군사원호청을 설치하였고 1962년 4월 16일 군사원호청을 원호처로 승격 개편하였다. 그 이후 각종 원호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원호대상자(독립유공자, 군인, 경찰, 전몰군경 등)별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들에 대한 원호시책은 처음에는 생계안정을 위한 생계보조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보상금의 지급수준을 확대하여 각종 수당과 연금 등을 신설하였다. 그 외에도 실질적인 보훈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직업보도, 자녀의 교육보호, 정착대부 등으로 확대되었다.
1970년대는 국가보상수준 신장과 국민성원을 통한 자립기반 조성이 중심이 되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하에서 국립원호병원특진규정과 1975년 원호보상금지급규정, 1978년에는 월남귀순용사특별보상법 등을 제정·공포하였고 공상공무원 및 순직공무원의 유족, 무공수훈자를 정책대상에 추가시켜 과거에 제도정책에만 신경써왔던 부분과 달리 국민이 스스로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가보상수준 또한 신장시켰다.
진정한 의미의 국가보훈제도의 시작은 1980년대 들어오면서 이념적 기반 구축을 통한 정신적 예우의 강화가 중심이 되고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향상과 복지시책의 확대가 중심이 되면서부터다. 1984년 12월 31일 원호처를 국가보훈처로 개칭하였다. 1993년 본부의 기능조정을 실시하면서 ‘제대군인정책관’을 신설하였고, 1998년 2월 28일 처 본부의 조직을 개편하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변경되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순국선열 및 독립유공자들의 애국충정을 기리는 민족정기 선양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하여 상징정책 차원에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서 다시 처장이 장관급으로 승격하였고,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이 국방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2008년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다시 처장은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되었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면서 다시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화 및 남북화해협력 시대의 개막에 따라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국민의 안보의식에 변화가 일어나는 등 전환기에 들어선 국가보훈처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국가와 사회발전의 밑거름이 될 국민의 국가관 정립과 공동체의식의 고취 및 국민통합 등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상징화 정책기능의 강화라고 생각된다.
2000년대 이전의 보훈정책은 단지 국가유공자에게 물질적인 보상에만 치우친 것으로 비춰져 민족정기 선양사업의 심화나 발전으로 인한 애국심의 고취 면에서의 인식이 미흡했다. 이후 2000년대의 보훈정책은 민족정기 선양사업이 중심이 되고 있으므로 새로운 보훈문화의 정착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보훈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보훈문화의 근거가 되는 사상 혹은 이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국가가 공을 세우고 희생당한 사람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가유공자들을 귀감으로 삼아 국민이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인 국가보훈제도의 방향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보훈정책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하에서는 미래지향적인 국가보훈제도와 정책적인 측면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보훈단체들의 이념과 가치관 확대다. 대한민국 보훈단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국가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중요 이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광복회는 독립정신을, 4·19혁명 관련 단체들은 민주와 자유와 정의구현의 혁명정신을, 그 밖의 보훈단체들은 반공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기본 이념으로 활동한다. 다만 현재까지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이념과 관련된 갈등으로 인해 독립정신과 4·19혁명 정신이 대국민 통합적 민족의식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아쉽다.
예를 들어 베트남 참전 관련 보훈단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베트남 파병을 통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룩한 리더십으로 보고 있는 반면, 4·19혁명 관련 단체들은 독재군사정권으로 폄하하고 있다. 독립외교운동가였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자본주의를 확립한 초대 대통령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광복회와 4·19혁명 관련 단체들의 시각과 그 외 보훈단체들이 매우 다르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보훈이 국민의식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다는 점에서, 또 각 보훈단체들이 각자가 추구하는 이념이 전 국민적인 확산과 지지를 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히 문제점이 있다.
둘째, 법적·제도적 문제점이다. 현재 우리의 국가보훈체계를 들여다보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다난하고 혼란스럽다. 보훈관련 법령의 경우 법체계가 일원화되어 있지 않고 무려 48개의 개별법들이 혼재하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 이유는 그동안 국가보훈에 대한 기본법 미비로 말미암아 보훈 대상에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 외에 참전유공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 5·18민주유공자, 4·19민주유공자, 제대군인 등 다양한 계층이 보훈체계에 편입될 때마다 각 대상별로 개별법이 무분별하게 제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보훈법체계가 이처럼 혼란스럽게 된 이유는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보훈대상자들의 표를 의식한 나머지 깊은 성찰 없이 즉흥적으로 법 제정을 추진해온 데서 비롯되었다는 지적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셋째, 국가유공자들의 서열화 및 차별화를 폐지해야 한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는 ‘그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하여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영예(榮譽)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국가유공자들의 등급을 분류하여 보상, 예우 등을 하는 데 있어 서열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용어로 인해 국가유공자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서열주의와 차별주의 경향은 자신과 타인을 상호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나 능력만이 보편성을 갖는다는 ‘왜곡된 우월욕구 또는 지배욕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외적으로는 국가유공자 인정요구를 지속적으로 유발하고, 내적으로는 정신적·물질적 보상에 있어서 다른 대상보다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데 집착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국가유공자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의 ‘지배적 보훈조직문화’를 형성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넷째, 지방자치단체 간의 참전수당의 불균형도 해소되어야 한다. 103개의 지자체별로 지원조례를 통해 참전유공자를 대상으로 명예수당과 사망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참전 국가유공자 수당도 지자체마다 ‘제각각’이다. 월 5만 원에서 최대 25만 원까지 별도의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참전유공자의 거주지역이나 거주기간, 나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에 따라 금액을 달리 지급하고 있다. 지급연령도 천차만별이다. 남양주시 등은 나이 제한이 없지만 안산시는 70세 이상에 한해서만 수당을 주고 있다. 또 고양시 등은 68세, 평택시 등은 65세 이상이다. 참전국가유공자의 명예를 높이고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수당이 자치단체별로 달라 유공자들이 상대적 소외감과 차별감을 느끼고 있다.
다섯째, 통일에 대비한 국가보훈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통일한국이 준비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보훈정책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의 보훈정책은 독립운동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보훈 대상자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일제에 항거한 분들을 그 근본으로 하고 있는 반면,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체제를 위해 독립운동을 한 분에 대해 애국열사라는 칭호를 취하며 보훈대상자로 삼고 있다. 6·25전쟁의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북한·중국·소련군과 싸운 전쟁이라 할 수 있으며, 북한의 경우는 대한민국 국군과 UN군과 싸운 전쟁이다. 북한은 우리 군과 전쟁을 한 자들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 칭호를 부여하며 극진한 대우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호 배타적인 이질성의 극복은 통일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난제 중 하나이다.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고 통일한국의 보훈정책이 성공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통일에 앞서 남·북한 보훈정책과 제도의 통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외에도 국가보훈이념에 배치되는 자들이 국가유공자가 되어 있다는 점, ‘공훈의 정도’에 대한 합리성 결여가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는 점, 보상과 복지정책의 불공정성, 국가유공자 그룹의 방만성, 국가유공자 명단 미공개, 호국절 제정, 국가보훈처의 고유 업무에 대한 독자적인 정책결정기능의 허약성 등도 미래의 국가보훈 발전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사안들이다.
통일한국 보훈정책의 주요 이슈

국가보훈정책이란 보훈대상자에 대한 보상, 교육, 취업, 의료 등과 같은 일련의 행정적 지원을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나라사랑정신 강화, 민족정기 선양, 호국의식 고취 등과 같은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정신적 자산을 확대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보훈정책은 한 나라의 기본 정책으로서의 매우 중요한 상징성과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조상들이 피땀 흘려 지켜낸 이 나라 이 땅을 반만년 동안 단일민족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유지해온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역사상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비록 한때 일본의 식민지로서 국권을 상실했던 경험은 있을지언정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정기를 지금까지 지켜왔다. 이렇게 세계사에서도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흔치 않게 장대(長大)한 우리 민족과 국가의 역사는 결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역사의 매 순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조국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해 온 우리의 조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조국애와 국가를 위한 충성은 한 나라가 유지·발전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국민의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국가와 민족이 개인보다 우선시되었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가치관이 팽배했던 시기에는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국민 모두는 그것을 무엇보다 고귀한 정신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
이에 바탕을 둔 미래지향적인 통일한국의 보훈정책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21세기 국제사회의 흐름과 보훈이념, 남북한 보훈정책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훈의 가치, 보훈정책의 뿌리인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의 정립과 6·25전쟁 등의 정리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제 문제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소해 나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통일한국의 보훈정책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보훈이념과 조화를 이루면서 복지적 측면을 충족시키고 동시에 국민통합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정책으로써 남북한 주민들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보훈대상 집단의 동질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남북한의 보훈대상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징적 기제가 존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필자 유영옥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에서 Faculty로 재직했다. 경기대학교에서 국제대학장, 통일안보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칼빈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국가보훈학회장직도 맡고 있다. 국무총리실 기획위원, 행자부 기록위원, 국정원·국방부·통일부·국가보훈처 등에서 상임위원장, 심사평가위원 및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거나 역임했다. 사법, 행정, 입법, 지방, 외무고시 출제위원을 지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등 주요 일간지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MBC 해설위원, KBS 패널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