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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 위대한 한글, 위대한 독립운동…574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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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지키면 겨레가 살고,  

겨레가 살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 


글 | 강한필 (월간 순국 편집위원)


 

위대한 훈민정음은 처절한 암흑 시절을 거치며 언문은 한글이 됐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가 됐다. 그리하여 한글은 IT대국, 디지털 강국의 원천이 됐다. 한류는 세계를 출렁이게 하고, 세계의 젊은이들은 우리말로 떼창을 부른다. 한글은 이제 우리만의 문자가 아니다. 날마다 세계로 뻗어간다. 그러나 막상 우리는 그 한글의 소중하고 위대함을 모른다. 그 말과 글로 서로 헐뜯고 저주하고 싸운다. 2020년 10월 9일, 574돌 한글날이다. 위대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우리글을 지키고 다듬어 한글로 만들어주신 우국지사들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인

한글을 가진 국민이다. 


한글은 소리를 담은 표음 문자이자 음성을 담은 음소 문자로써, 모든 소리, 모든 음성을 담을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다. 자음은 혀의 위치, 입술 모양 등을 근거로, 모음은 천지인 (天地人)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독창적인 원리로 우선 몇 개의 기본 글자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더해가며 파생하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모든 소리와 음성을 모두 담을 수 있지만 과학적이고 단순해 배우고 익히기 쉽다. 훈민정음 해설서인 해례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슬기로운 자는 아침 먹기 전에,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다.”


한글이 과학적이고 배우기 쉽다는 것은 세계도 인정한다. 세계 87개국 1,300여 대학에서 한글을 가르친다. 문자가 없는 일부 국가에선 영어 알파벳 대신 한글을 그들의 언어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1989년, 문맹 퇴치의 날인 9월 8일에 문맹 퇴치에 공이 큰 단체나 사람에게 주는 문맹퇴치상으로 세종대왕상 (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했고, 1997년에는 문자로는 유일하게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그 우수성을 증명했다. 


또한, 대부분의 글자는 수천년동안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고 소멸되고 변형되며 오늘에 이르렀지만 한글은 창제자, 창제시기, 창제의 목적이 뚜렷하다는 점에서도 놀랍다. 또 하나의 놀라운 장점은 한글은 마치 21세기 4차산업혁명시대, IT시대의 도래를 예측이나 한 듯 오늘의 시대에 적합한 문자라는 점이다. 한글은 영어 알파벳의 3배, 일본 글자의 5배, 중국어 한자의 8배 빠른 입력 속도를 자랑한다. 이렇게 현재 우리가 편안히 누리고 있는 위대한 한글은, 편안한 역사를 누리지 못했다. 


세종대왕에 의해 세종 25년 (1443년)에 창제되고 세종 28년 (1446년)에 반포된 배우기 쉬운 우리 글 훈민정음. 조선왕조 500년 긴 세월, 한문 문화에 찌든 지배계급에 의해 천대받고 언문, 언서, 반절, 절글, 가갸글 등으로 불리며 괄시당하고, 때로는 소멸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때때로 가혹한 역사는 깨우침의 죽비가 된다. 일제 강점의 처절한 숨막힘의 시절, 일제의 가혹한 우리글 말살 정책은 우리의 얼과 글을 지켜 나라를 되찾자는 한글을 통한 독립 운동에 불을 지폈다. 강한 압박에 강한 반동은 물리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현상만은 아니다. 우리글과 말을 지켜 나라를 찾고자한 민족지도자들이 목숨 바쳐 그 역할을 다했다. 그들에 의해 우리글은 지켜지고, 다듬어지고, 더 높게 진화된 한글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 말글 수호 투쟁은 

가장 성공적이고 빛나는 독립운동


“말을 지키면 겨레가 살고, 겨레가 살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 말모이 운동, 문맹 퇴치 운동, 계몽 운동, 우리말 큰사전 편찬 운동 등 형태는 달랐지만 한글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그 선봉에 선 분이 주시경 선생이다. 그는 경술국치 이전인 1908년 8월, 국문연구회를 조직했다. 조선어학회, 한글학회의 뿌리다. 그는 또 조선어문법이란 책을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 책은 제자들에 의해 더 다듬어지고 보강되어 훗날 한글맞춤법통일안으로 발전했다. 1910년대 초에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우리 겨레의 글, 으뜸가는 글이 곧 ‘한글’이라고 이름지었다. 한글의 ‘한’은, ‘크다’, ‘으뜸이다’, ‘하나다’, ‘바르다’는 뜻이 담겨있다. 우리 글을 드디어 으뜸의 문자로 새로운 천지를 열게 한 것이다.

 

1911년부터 시작한, “말을 모아 튼튼한 광에 잘 간수하자”는 말모이 운동이 터를 잡아가던 무렵인 1914년 7월, 주시경 선생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8세 때이다. 치열하게 펼쳐져온 한글 운동은 한동안 좌절하고 표류했으나 그를 따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제자들에 의해 이어졌다. 그들은 대부분 어려운 그 시절에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선진 문물을 익하고 돌아온 그 시대 대표적인 엘리트들이었다. “한글이 생명이다” 그들은 우리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운동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문맹퇴치운동, 계몽 운동을 펼치며 우리글과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민족의 숙원이며 민족정신의 수호인 사전을 만들고자 했다. 일제는 이즈음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고 미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압제와 수탈은 그 수위가 한없이 높아갔고 전쟁에 우리 민족을 동원하고자 내선일체정책을 펴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며 조선인 민족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했다. 


한글 교육을 내세워 민족혼을 깨우고 있는 조선어학회의 학자들과 그 관계자들을 일제가 가만히 둘 리 없었다. 1942년 10월부터 검거 선풍이 불어 닥쳤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전국각지에서 함경남도 홍원 경찰서에 끌려온 조선어학회 관계자들은 모두 33명. 가혹한 고문과 처참한 감옥살이로 이들 중 이윤재, 한징 선생은 함흥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장현식 선생은 홍원경찰서에서 혓바닥에 대못이 박히는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그 후유증으로 반벙어리로 나머지 생을 살았다. 일제는 수십년간 연구하고 정리한 조선어큰사전 출판을 위한 방대한 양의 원고도 압수했다. 최현배, 이희승, 이극로, 정인승 등 최후의 5인은 해방된 지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 드디어 풀려났다. 


조선어학회 관계자들은 다시 모였다. 압수당한 말모이 원고도 서울역 조선통운창고에서 찾아내어 독립 운동의 한 축으로 열정을 쏟아온 조선어큰사전 제작의 대장정에 나섰다. 나라와 자유는 찾았지만 혼란은 계속 됐다. 그들은 미국 록펠러 재단이 지원한 자금과 종이, 잉크 등 자재와, 독지가들의 지원으로 1947년 501돌 한글날, <조선말 큰사전> 1권을 간행했다. 계획한 총 여섯 권중 제1권이지만 역사적이고 감격적인 대사건이었다. 


한글, 역사상 가장 진보한 위대한 성취물

디지털 시대의 총아로 부상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중략) 그 낱낱의 말은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준 거룩한 보배이다. (중략) 포악한 왜정의 억압과 곤궁한 경제의 쪼들림 가운데서 오직 구원한 민족적 정신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고 원대한 문화적 의욕에 부추긴 바 되어 한 자루의 모지라진 붓으로 천만가지 곤란과 싸워온 지 열 다섯해 만에 만족하지 못한 원고를 인쇄에 붙이었더니 애닳도다. (중략) 실낱같은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 같이 바드러워 오늘 꺼질까 내일 사라질까 하던 차에 반갑다. 조국 해방을 외치는 자유의 종소리가 굳게 닫힌 옥문을 깨뜨리어 까물거리던 쇠잔한 목숨과 함께 흩어졌던 원고가 도로 살아남을 얻으니, 이 어찌 한갓 조선어학회 동지들만의 기쁨이랴?”


조선말큰사전 발간의 감격을 그 책머리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열광하고 감격하게 만들었을까? 긴 세월, 땀과 눈물과 피로 얼룩진 그 보배를 손에 쥐었으니 눈물겨운 소회가 없었겠는가? 


그로부터 또 10년, 전쟁의 참화를 딛고 우리말큰사전 6권이 완간됐다. 주시경 선생의 말모이 운동, 눈장님 퇴치운동, 계몽운동, 조선어학회 사건, 조선말큰사전 발간 등, 반세기에 걸친 험하고 긴 여정 끝에 훈민정음은 한글로 우뚝 섰다. 혼란스런 해방공간과 동족간의 전쟁을 겪으며 이들 중 일부가 북으로 넘어가거나 끌려가는 비극도 겪었다. 그러나 이들이 북쪽의 문화와 언어 정책을 이끌어 우리말과 글의 동질성이 유지되고 있음이 한 가닥 위안이다. 


위대한 훈민정음은 처절한 암흑 시절을 거치며 언문은 한글이 됐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가 됐다. 그리하여 한글은 IT대국, 디지털 강국의 원천이 됐다. 한류는 세계를 출렁이게 하고, 세계의 젊은이들은 우리말로 떼창을 부른다. 한글은 이제 우리만의 문자가 아니다. 날마다 세계로 뻗어간다. 그러나 막상 우리는 그 한글의 소중하고 위대함을 모른다. 그 말과 글로 서로 헐뜯고 저주하고 싸운다.


2020년 10월 9일, 574돌 한글날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 우리글을 지키고 다듬어 한글로 만들어주신 우국지사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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