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Focus

한번 더 생각하는 역사 [2022/05] 대한제국은 왜 멸망했나? 9┃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선 대한제국의 운명

페이지 정보

본문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며 한승조 교수를 생각하다


도롱뇽의 시계(視界) 벗어나는 지도자 꿈꾸며


글 | 신복룡(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우리에게 일본은 은원(恩怨)이 깊다. 그것을 모르고 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일본은 적어도 러시아나 중국보다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나라이다. 독도니, 동해의 시비나 위안부와 징용 문제는 앞으로 5백 년 이상 천년은 갈 것이다. 이런 싸움은 길게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카드를 버리고, 어떤 카드를 쥐고 있어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일관계를 생계형 투사(?)들에게 맡겨두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마침 정권 교체의 시기에 우리에게도 동굴 속의 실명한 도롱뇽의 시계(視界)를 벗어나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21세기로 접어든 밀레니엄 세기에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억될 것이다. 인류는 러시아군의 만행에 전율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왜 그토록 잔인한가? 


첫째로, 이는 푸틴(V. Putin)의 개인적인 성향과 관련이 있다. 흐루시초프(N. Khrushchev)가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스탈린(J. Stalin)이 그루지아 출신인 것과는 달리, 푸틴은 KGB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가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고, 소련의 종주 민족이라 할 수 있는 정통 러시아 혈통이라는 자부심에서 레닌의 적자(嫡子)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어 했다. 2004년에 체첸 반군이 바사에프의 한 초등학생을 인질로 잡고 항쟁했을 때, 그는 “초등학생들의 생명을 고려하지 말고 반군을 모두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려 엄청난 유아 살해 사건이 있었다. 그때 그에게는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둘째로, 신흥 러시아는 레이건(R. Reagan) 이후 은밀히 시작하여 부시(G. H. Bush) 정권에서 완성된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음모에 대해 치를 떠는 원한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 


그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근접에 대해 심각한 두려움과 앨러지를 느끼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문제는 1991년의 소련 해체 만큼이나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셋째로는, 이는 러시아 군대의 속성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제국은 본디 영토가 광대하여 침략전쟁을 전개할 때 러시아군만으로는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여 용병(傭兵)을 많이 동원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코사크 병들이 가장 용맹했다. 이들은 말이 정부군이지 실제로는 용병이나 다름이 없어서 정규적인 보급을 받지 못했고, 따라서 현지 약탈이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해방정국에서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이 주민의 시계를 약탈하여 팔뚝에 주렁주렁 차고 다닌 이른바 “시계 약탈 사건”이 대표적이며,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간인 학살은 그들의 저항에 대한 보복 심리 때문이 아니라, 약탈과 그의 은폐를 위한 잔혹 행위이다.


애국과 반일을 혼동하는 나라


그렇다면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인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를 단적을 보여주는 한 사건이 있었다. 2005년 3월 4일, <오마이뉴스>는 한승조(韓昇助, 고려대학교 교수, 본명 韓己植)가 일본 평론지에 썼다는 논문 한 편을 보도했다. 한승조의 논문은 “공산주의·좌파 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합병을 재평가하자”는 제목으로 <산케이신문>이 발행하는 월간지 『정론(政論)』 4월호에 글을 실었다. 그의 논문 요지는 이렇다. 


“말기의 조선은 일본·중국·러시아의 각축장이 되었고, 약육강식 시대에 근대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조선은 이 세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 먹히게 운명 지어져 있었다. 만일 조선이 중국이나 러시아에 먹혔다면 지금쯤은 흩어져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에 먹힌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승조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어차피 멸망할 나라였다면 러시아에 먹히느니 차라리 일본에 먹힌 것이 덜 불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내의 보도 매체들은 “한 교수가 일제 강점을 축복이라고 주장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대부분의 매스컴이 한승조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국내 애국 단체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받고 학교를 사임한 뒤 불우하게 생애를 마쳤다.(http://www.newstown. co.kr/제6935호) 누구도 그를 옹변하지 않았고, 양식 있는 지식인들까지 그의 공격에 동원되었다. 이것이 한국인의 대일 인식의 현주소이다.


우리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며, 한승조 교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마치 한일합방이 불가피했고, 일본이 옳았다는 식으로 그의 글이 비쳤다면 그것은 그의 실수이며, 표현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러일전쟁으로부터 117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에서 보면 한승조 교수가 보는 눈이 맞은 것이 아닌가? 물론 병합이 이뤄지지 않았어야 하며, 병합이 된 뒤에도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승조 교수의 논리는 미숙했고, 배경 설명이 불충분했다. 


친일 논쟁


지금 한국 사회에서 죽창가를 부르며, 반일을 외치는 애국자(?)들의 자세는 적실한가에 대하여 우리는 이제 시좌를 바꿔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일 논쟁은 “먼저 태어난 사람의 슬픔과 나중 태어난 사람의 행운”의 차이일 뿐이다. 친가(親家)의 3대(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처가(妻家)의 3대, 외가(外家)의 3대, 합하여 구족(九族)의 이력서를 놓고, “우리 집안은 친일한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가문은, 거지와 머슴과 화전민 빼놓고는, 거의 없다. 일제시대를 산 사람 대부분은 제국대학에 들어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다음 판·검사나 군수가 되어 다쿠시(taxi) 타고 화신백화점에 가서 엘리베이터 타면서 쇼핑하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봤다. 


그 당시 우리 민족은 본인의 의지에 관계 없이 태어나 눈뜨고 보니 나라는 일본이었고, 이름은 미야모도(宮本)이었다. 그것은 못난 선조들 탓이었지 그들의 죄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조국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때는 누구에게나 원치 않는 모멸의 시대(Century of humiliation)였다. 그렇다면 성장해서라도 항일 전선에 몸을 바쳤어야지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탓할 수도 있지만, 모든 국민이 항일 전선에 나설 수는 없다. 민족멸망사를 보면, 애국자가 없었던 시절도 없었지만, 애국자가 넘치는 시대도 없었다. 


역사적으로 민족수난기에 항전에 나서는 국민의 참여율은 4%가 넘기 어렵다. 임진왜란 때 7년 동안 항전율이 전 인구의 3.5%였고, 3·1운동 때 “만세 참여율”이 2.8%였다. 내가 그때 안 살았다고 함부로 장담할 일이 아니다. 귀하는 민족수난기에 목숨을 버리겠는가? 나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친일이야 하지 않았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싸웠을 것이다. 그 시절에 살지 않았다고 무책임하게 주홍글씨를 달 일이 아니다. 지금도 조국을 팔아 포도주를 홀짝거리며 애국을 외치는 영혼의 노숙자들(spiritual homless)의 무리는 허다하게 많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어찌 되나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대통령 젤렌스키(V. Zelensky)가 전투복을 갈아입고 진두지휘를 하고 있고, 그 부인은 화사한 파티복이 아니라 군복을 입고 총검술을 배우고 있다. 일찍이 이런 나라가 역사에 흔하지 않았다. 이런 나라는 한때 국치를 겪을 수 있지만 멸망하지 않는다. 군인은 위대한 장군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고락을 함께 하는 지휘관을 존경하고 따른다. 대통령이 “나에게는 죽을 권리도 없다”며 항쟁하는 우크라이나와, 자식들은 모두 미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군대 기피를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여권을 갱신한 정치인의 나라와는 국운이 다르다.


러일전쟁 당시 국방대신이던 쿠로파트킨(N. Kuropatkin)은 스스로 강등하여 극동군 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지휘했다. 그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조국을 건지려 했지만 러시아 병사들의 사기와 보급 부족과 약탈, 그리고 일본군의 엄정한 군기를 보며, 러시아의 패전을 예상했다. 현지의 러시아군들은 만주와 조선의 농촌을 약탈하여 군량미를 보급했다. 이를 바라보며 쿠로파트킨은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겼다.


“러시아 병사들에게는 적군의 포화보다 보급계 선임하사가 더 무서웠다.”


한승조 교수의 말이 옳았다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라는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자문해 본다면 결국 한승조 교수의 논리가 맞았다. 남의 힘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일본으로부터 우리는 독립했다. 그러나 소련의 식민지정책은 더 끈끈하고 찐득거리는 아나콘다이다. 그들의 식민지는 우리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고, 명목상으로 독립이 된 뒤에도 그 괴롭힘은 지속되고 있다. 이 전쟁이 어떻게 결말이 나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겪어야 할 압박과 괴로움은 식민지 시대보다 더 길 수 있다. 


우리에게 일본은 은원(恩怨)이 깊다. 그것을 모르고 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일본은 적어도 러시아나 중국보다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나라이다. 독도니, 동해의 시비나 위안부와 징용 문제는 앞으로 5백 년 이상 천년은 갈 것이다. 이런 싸움은 길게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카드를 버리고, 어떤 카드를 쥐고 있어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일관계를 생계형 투사(?)들에게 맡겨두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마침 정권 교체의 시기에 우리에게도 동굴 속의 실명한 도롱뇽의 시계(視界)를 벗어나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 신복룡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객원교수와 대한민국 학술원상 심사위원,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그리고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출판부장, 중앙도서관장,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는 『한국분단사연구』, 『한국사 새로 보기』, 『한국정치사상사』, 『해방정국의 풍경』, 『전봉준평전』, 역서 『한말 외국인기록』(전 23권) 등 다수가 있다.  

최신글

  • 글이 없습니다.

순국Inside

순국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