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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생각하는 역사 [2020/10] 우리가 버린 독립운동가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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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한국인’들에 대한 감동적인 회상 

무명의 독립투사들, 기억의 전당에 불러오다


글 | 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왜 우리는 그들을 잊어버렸나. 8도 연합 의병대를 통솔해 일본군과 싸웠으며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가 된 허위, 유관순이 활약한 아우내 만세운동의 진짜 주역 김구응, 미국에 군사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박용만, 일본 장교의 자리를 버리고 연해주에서 빨치산 부대를 이끈 김경천, 김좌진과 함께 만주 독립군 3대 맹장으로 꼽힌 김동삼과 오동진, 상하이 임시정부의 자금줄 역할을 한 안희제… 문용기, 윤형석 등은 저자의 표현 그대로 ‘무명의 독립투사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과 업적을 보자면 이제껏 알려지지 않고 있던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이유로 잊혀진 걸까? 



우리가 모르고, 잊고, 끝내는 버리다시피 한 독립운동가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마시면서 그 근원을 생각한다.”라는 뜻이다. 빈사 상태에 빠졌던 우리 겨레를 살린 ‘물’이나 다름없는 ‘해방’ 또는 ‘광복’ 75주년을 맞이하면서 그 근원인 독립운동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 때 맞춰 출판됐다. 바로 위에 적시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표현으로 ‘우리가 모르고, 잊고, 끝내는 버리다시피 한 독립운동가’ 20명의 삶과 의거 그리고 거기에 따른 죽음의 기록이다, 그들 가운데 스코필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안희제는 특히 최근에 이르러 신문 전면광고를 통해 꽤 널리 알려졌다. 박차정의 경우, 남편 김원봉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 「밀정」이 개봉된 2016년 이후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허위, 박용만, 김동삼, 오동진, 김마리아, 송학선 등은 독립운동사를 한 두 권이라도 읽은 사람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다.


 그렇지만 김구응, 문용기, 윤형석 등은 저자의 표현 그대로 ‘무명의 독립투사들’이다. 조선의 공산주의운동사를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박헌영의 첫 부인 주세죽 역시 ‘무명의 독립투사들’에 속할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저자가 이들 모두를 ‘무명의 독립투사들’에 포함시킨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그들은 ‘우리가 버린 독립운동가들’이었으며, 따라서 다시 저자의 표현 그대로 그들을 ‘우리의 기억의 전당에 불러온 것’은 칭찬 받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반생을 신문사에서 봉직한 언론인답게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후손들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채록했고 그것을 사료에 연결시켜 80여 년 또는 백 년 전의 사건들을 생동감 있게 서술하는 데 성공했다. 한번 손에 잡으면, 쉬지 않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바로 평이하면서도 현장감 넘치는 서술에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전문적 학술서적이 아닌데도 참고문헌들을 생략하지 않고 책의 끝 부분에 소개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극을 받아 더 공부하려는 독자에게 길라잡이를 해준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죽음 뛰어넘어 악독한 일제에 맞서 싸웠던 애국선열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을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취재하고 공부한 것을 글로 옮겨 적으면서 몇 번이나 벅찬 감정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곤 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서평자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진솔한 심정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누가 눈물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겠는가.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얼마나 신산(辛酸)했고 비장했던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 앞에서도 얼마나 당당했으면서도 담당했던가는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 그리고 이봉창 의사의 전기를 읽을 때 깨닫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책이 다룬 20명의 삶을 읽으면서 다시 깨닫게 된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죽음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신(神) 또는 종교를 만들거나 신 또는 종교를 믿게 만들었다.”는 어느 철학자의 관찰이 그 점을 말해준다. 이렇게 볼 때, 죽음을 뛰어넘어 악독한 일제에 맞서 싸웠던 애국선열들이야말로 신의 영역에 도달했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을미사변 때도 그러했지만 1907년의 정미늑약 때도 의병을 일으켰던 허위 선생의 경우를 보자. 그는 1908년 10월 21일 정오에 훗날 서대문형무소로 개칭된 경성감옥 교수대에서 “밧줄이 목에 걸쳐져도 안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고 태도는 당당하기만 했다.” 저자에 따르면, “왜승이 불경을 읽으며 명복을 빌어주려 하자, 선생은 ”충의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로 올라갈 것이요, 혹 지옥으로 떨어진다 해도 어찌 너희의 도움을 받아 복을 얻겠느냐“고 꾸짖으며 거절했다.


 이어 사형을 지휘하는 일제의 검사가 시신을 거둘 친족이 있느냐고 묻자, 선생은 “죽은 뒤의 염시(斂屍)를 어찌 괘념하겠느냐. 옥중에서 썩어 문드러져도 좋으니 속히 형을 집행하라.”고 단호하게 대꾸했다. 이 대목에 이르러, 저자는 “목숨을 잃기 직전의 순간에도 선생은 털끝만큼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고 썼다. 참으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어찌 이렇게 처신할 수 있었겠느냐. 


위대한 행동은 위대한 정신에서 나온다.


 매국노 이완용을 척살하려다가 실패해 사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는 겨우 스물 세 살이었다. 삶에 대한 애착이 큰 나이가 아닌가. 그러한데도 재판관이 마지막 변론을 허락하자 그는 꼿꼿한 자세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려는 사람의 행동에 어찌 구구한 변론이 있을 법인가”라며 껄껄 웃었다. 


 여기서 저자는 명언을 남겼다. 이재명 의사가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매국의 거물 이완용 처단에 나선 것은 위대한 행동이다.”라고 논평한 뒤, “위대한 일은 결과와 상관없이 위대한 것이다.”라고 부연한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망명지 만주에서 독립군 근거지를 마련했으며 ‘만주벌의 호랑이’라고 불리던 김동삼 역시 죽음에 초연했다. 서대문형무소 감방에서 숨을 거두면서, 저자에 따르면, 그는 “이러한 일정한 자리에서 죽게 되는 것도 과분한 일이다. 독립군이라면 대개 풀밭이나 산 가운데서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저자에 따르면, 그는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고 유언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윤형숙 열사의 처신도 놀랍다. 여학교 2학년 때 전라도 광주에서 3·1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윤 열사는 일본 헌병이 내리 친 군도에 의해 왼팔 상단부가 붉은 피를 뿌리며 땅에 떨어졌는데도 오른팔로 땅에 떨어진 태극기를 주워들고 흔들며 더욱 격렬하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실신했다고 한다. 열사는 복역을 마친 뒤 일제의 탄압과 회유를 끝까지 견뎌내며 지조를 지켰다. 이러했던 열사가 6·25전쟁 때 북한군에게 총살됐다는 사실에서 분단의 비극과 북한군의 무지를 다시 실감하게 된다.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 간디는 흔히 ‘마하트마 간디’라고 불린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책에 소개된 항일독립운동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마하트마’의 소유자로 평가될 만하다. 허위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안희제, 김동삼, 김마리아, 송학선, 양세봉, 박상진, 박재혁 모두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서평자는 인간의 마음가짐과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위대한 행동은 위대한 정신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통해 다시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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