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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스크랩 [2020/12] 제81회 순국선열·애국지사 영령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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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Focus | 역사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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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의 드높은 뜻 

대한민국의 이름과 영원히 함께


글 | 편집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을 기리는 ‘제81회 순국선열·애국지사 영령 추모제’가 11월 17일 오후 2시, 서대문독립공원 독립관 앞마당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추모제는 광복회와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공동 주관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남우 보훈처 차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유족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오후 1시 30분부터 식전행사, 오후 2시부터 본 행사 순으로 구분 진행되었으며 ‘KBS 한국방송’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특히, 본 행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헌신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영령들을 최상의 예로써 추모하기 위해 조선시대 제례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뤄낸 독립을 기반으로 이뤄낸 것입니다. 순국선열들의 목숨 바친 애국 애족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5만 여명으로 추산되는 순국선열들의 대부분이 이름을 알 수 없거나 후손이 없는 무명(無名), 무후(無後)인 상황이다. 비장하고 처절했을 헌신과 희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역사의 뒤안길로 산화해간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우리 국민과 민족이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 11월 17일, 제81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위령제를 올리는 일은 후손된 국민으로서 마땅한 도리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날은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이기도 하다.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바로 오늘을, 망국의 날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치욕스런 역사와 그 치욕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투쟁의 역사를 우리는 함께 기억해야 한다.    


  순국선열의 날 제정…잊지 말자, 을사늑약 1905


 1939년 11월 21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31차 회의에서 순국선열의 날이 제정되었다. 임시정부가 윤봉길 의거 이후 수년간 정처없이 떠돌던 중이었다.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임시의정원은 이분들을 일일이 개인별로 기억할 수 없어 합동 추모의 날을 제정한 것이다. 그 때 날짜를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난 11월 17일로 정했다. 을사늑약은 사실상의 망국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분개한 수많은 의열사들이 목숨을 끊어 불법 불의에 항의하거나, 의열투쟁, 의병투쟁으로 많은 희생을 당했던 것을 기억하고자 함이었다. 


 이후 임시정부는 해마다 이날 추모제를 거행했다. 해방이 되고 임시정부 요인들이 1945년 11월 23일 귀국하여 처음 행한 것도 한 달 후인 12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서 임시정부 요인 주관의 순국선열 추념대회 개최였다. 그후 사회혼란과 6.25전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4.19혁명 후 1960년 11월 17일 윤보선 대통령이 주관하여 합동추모제가 열렸다. 다시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 모든 사회단체 해산과 함께 국가 기념행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가, 1997년 5월 9일 대통령령(제15396호)으로 정부기념일로 제정되어 오전 10시에 국가기념행사, 오후 2시에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주관으로 추모제를 거행해 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얼, 순국선열 위상 정립을 위해


   제81주년 대한민국순국선열·애국지사 영령 추모제. 이날의 행사는 오후 1시 30분 KBS 국악관현악단이 함께 하는 식전행사로 시작되었다. KBS 국악관현악단의 ‘순국의 혼’이란 개막 연주는 행사의 품격을 더해 주었다. 이어 바리톤 김종우 씨의 독립군가 메들리, 소리꾼 박자희 씨의 직창 판소리, 상주아리랑 공연, 그리고 ‘그대 꽃을 피우리다’란 시낭송은 우리의 마음을 일상의 번잡함에서 떠나 순국선열에게로 향하게 해 주었다.


 오후 2시 제2부 추모제 시간이 가까워 오자 추모제의 제전위원장이자 헌관을 맡은 김원웅 광복회장을 비롯하여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과 이남우 국가보훈처 차장 등이 조선시대 전통 제관 복장을 하고 입장하였다. 


 제2부 추모제례는 전통 상례와 제례 전문가인 국립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시덕 학예연구관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국민의례가 있었고, 이동일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장이 인사말씀을 했다. 이동일 회장은 조국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재산 그리고 가족까지 모두 겨레의 제단 앞에 바치신 순국선열이 국가유공자 중 최하위의 예우를 받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순국선열 선양과 위상 정립을 위하여 ▲헌법전문에 순국선열 명문규정 반영 ▲순국선열추념관의 조속한 건립 ▲순국선열유족회 공법단체 설립 등을 역설했다. 


조선시대 국가제례 형식…영령 최상의 예로써 추모


이날의 추모제례는 순국선열의 국가적 위상에 걸맞는 국가제례로서 조선시대 국가 제례를 모델로 하여 현대사회에 맞게 간소화하여 절차를 마련하고, 김원웅 광복회장이 제전위원장을 맡아 격식이 갖추어진 제례의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김시덕 사회자와 황실문화보존회 이상명 님과 종묘제례보존회 이상훈 님이 의례를 인도하는 가운데 전폐제가 시작되었다. 전폐제는 향을 피우고 잔을 올려 순국선열의 혼(신)을 모시고 폐백을 드려 혼(신)에게 인사하는 의식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전폐례와 첫 잔을 올리는 초헌례를 집전하고, 종묘제례보존회 이호욱 님이 축문을 대독했다. 이어 이남우 국가보훈처 차장이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이 세 번째 마지막 잔을 올리는 종헌례의 순서로 의식이 진행되었다. 잔을 올리는 순서가 끝난 후 헌관 일동의 음복수조례, 송신례로 의식은 마무리되었다. 음복수조례는 제사 술을 한 모금 마심으로써 순국선열의 음덕을 받아 나라의 융성과 국민 평안을 누리도록 음복을 받는 의식이다. 송신례는 제사를 마치고 모셨던 순국선열의 혼을 떠나보내는 의식이다. 


 제례를 마친 이후에는 내빈 및 단체장의 분향, 순국선열의 노래를 합창하는 가운데 참석자들의 분향으로 오후 3시에 추모제의 모든 막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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