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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스크랩 [2021/05] 최연소 독립운동가 주재년 열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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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패망한다 ’ 등 글씨 바위에 새겨 독립 주창 


열네 살 소년의 정의로운 외침


글 | 김재영(광복회 홍보부장)


  일제에 의한 명성황후 암살사건 이후부터 광복이 되기 전까지 장장 50년 동안 계속된 우리민족의 항일독립운동은 연인원 300만 명이 참여했고, 이 중에 순국선열의 수는 15만 명에 이른다. 독립운동의 방략 또한 무장투쟁에서부터 교육, 외교, 문화투쟁 등 여러 가지였다.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이 우리민족이 살았던 곳이라면 세계 어디에서도 그치지 않았던 한민족 독립운동은 장중한 스케일의 대서사시이자,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이 중에는 ‘3·1운동의 꽃’인 유관순 열사보다 더 어린 최연소 독립운동가가 있다. 바로 주재년 열사다. 하지만 올해로 주 열사가 서훈된 지는 15년째를 맞이하지만 주 열사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서훈이 뒤늦게 이루어진 탓도 있겠지만, ‘최연소’라는 상징성과 함께 이 분의 용기 있고 지혜로운 독립운동 활동에 비해 우리 모두가 선양활동을 소홀히 한 결과가 아닌가 필자부터 반성한다.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세상 떠나


  주재년(朱在年) 열사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해인 1929년 1월 28일 태어나 광복이 되던 해 1945년 11월 14일에 생을 마쳤다. 주 열사는 14세의 소년으로 남다른 역사의식을 갖고 어른들도 하기 힘든 바위에 글자를 새겨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주창했다. 일제가 마을사람들을 괴롭히자, 스스로 자신의 정의감으로 감행했다고 밝혀 투옥되었고,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열여섯 살에 별세했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을 통해 주 열사의 행적을 좀 더 상세히 알아본다. 주 열사는 1943년 3월 여수군 돌산면 공립국민학교(현 여수돌산초등학교) 제6학년을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열사는 재학시절부터 항일의식이 투철했다. 1942년 음력 12월 초순경, 열사의 형인 재연(在淵)의 나병을 치료하기 위해 와 있던 일본인으로부터 ‘태평양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은 미국 등의 힘을 빌려 독립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1943년 9월 초순경, 여수에서 조국독립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유포했다.


그리고 동년 9월 23일과 24일 양일에, 나무하러 가는 도중 돌산면 율림리로 가는 도로 민가 목화밭 담장 바위에 의미 깊은 글자를 새겨 넣는다. 바로 ‘朝鮮日本別國(조선과 일본은 다른 나라)’, ‘日本鹿島敗亡(일본은 패망한다)’, ‘朝鮮萬歲(조선만세)’, ‘朝鮮之光(조선의 빛)’ 네 구절이 그것이다. 주 열사는 글자를 새긴 지 사흘 만에 여수경찰서에 체포되었다. 네 구절의 글자로 인해 민심의 동요를 걱정한 일제는 경비정 7~8척과 경찰 100여 명을 동원해 경적을 울리며 온 마을을 수색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하였다. 이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마을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자, 주 열사는 자수했고, 1944년 1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났다. 하지만 어린 몸으로 4개월간의 복역 도중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이듬해에 순국했다.


주 열사의 항일운동 사실은 거의 8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항간에 구전되어 오다가 2006년 열사의 조카인 주충배 어르신에 의해 관련 자료가 발굴되어 그해 광복절을 맞아 우리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훈장증은 후사가 없어 충배 어르신이 대신 받았다. 이후 여수시는 2012년 5월, 여수시 돌산읍 금성리 작금마을의 주 열사 생가 터에 주재년열사기념관을 건립했다. 서훈 당시 산비탈에 돌무지로 방치된 열사의 묘소도 2015년 여수시가 시비 1,300여 만원을 들여 정비하였고, 지금은 충배 어르신이 국가보훈처 전남동부보훈지청으로부터 주 열사의 기념관과 묘소의 관리인으로 지정을 받아 관리하고 있다.


광복회, 잊혀진 독립유공자 선양 일환 

주 열사 묘소 참배·모교에 기념 식수


  필자가 속한 광복회에서는 지난해 독립유공자 지역 연고지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전국의 각 시군구 행정기관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나 호를 딴 도로명 주소 채택을 제안하여 지역민의 자부심 고취와 함께, 잊혀가는 독립유공자를 널리 알리는 선양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김원웅 광복회장 일행이 주재년 열사의 묘소를 참배한 것도 최연소 독립유공자 주 열사를 알리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날 김 회장 일행은 묘소 참배와 기념관 관람에 앞서, 김 회장과 관내 기관장들이 모여 주 열사의 모교인 돌산초등학교 교정에 단재 모과나무 기념 식수도 진행했다. 식수에 참여한 주요인사는 전라남도 여수교육지원청 김해룡 교육장, 전남동부보훈지청 김영진 지청장, 여수 돌산초등학교 조재익 교장, 학교운영회 임영민 위원장, 고학년 재학생들, 그리고 광복회 전남지부 송인정 지부장과 동부연합지회 김은숙 지회장 등 50여 명이다. 식수행사 직후 모교 측은 실내 공간을 마련하여 주 열사의 행적을 전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겠다고 밝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산비탈에 방치된 묘지시설물 정비

주 열사 글씨 바위 보존 방안 논의


광복회장의 주 열사 묘소 참배소식이 전해지자, 비바람에 훼손된 묘지시설물(장명등)이 오랫동안 산비탈에 방치되어 있다가 관할 보훈지청의 노력으로 제대로 정비됐다. 성과는 또 있었다. 현재 기념관 내에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는 주 열사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들을 보호시설을 지어 보존될 수 있는 방안도 공론화됐다. 일행이 보존방안의 필요성에 뜻을 모으자, 기념관 관리인인 충배 어르신도 기념관 보수가 결정되는 대로, 협소한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당신의 밭을 기꺼이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보훈처 등 잘못 기재된 열사 이름

‘주재년’으로 바로잡아주길


  광복회장의 뜻 깊은 행보로 열네 살 최연소의 독립운동가이셨던 주 열사의 선양과 함께 묘소와 기념관을 개보수하는 방안이 거론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 열사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 이번 기회에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등재되어 있는 잘못된 주재년 열사의 이름(현재는 ‘주재연’으로 되어 있음)도 바로 잡아주기를 바란다. 또한 주 열사의 모교인 돌산초등학교 인근이나 기념관 주변 길이 ‘주재년길’로 지정될 수 있도록 지역민들의 관심을 기원한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독립운동가의 특별한 사례를 발굴하고, 선양 방법도 다양화하는 한편, 우리 주변을 둘러보며 독립운동 선열들의 묘소와 기념관 등 현충시설의 관리실태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개선방안도 제시해보는 의식 있는 후손이 되기를 제안한다. 


벌써 5월, 돌산초 교정의 모과나무는 잘 자라고 있을까. 주 열사의 봉분위로 따뜻하게 내리쬐던 남녘의 봄 햇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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