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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스크랩 [2021/10]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과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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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온 독립전쟁 최고의 국민영웅

통일 분위기 조성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글 | 황원섭((사)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부이사장) 


홍범도 장군(1868~1943)은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무장독립투쟁의 최고 지도자이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이후 독립군의 전력을 정비하려고 러시아로 건너갔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되어, 1943년 현지에서 순국했다. 그동안 고려인 동포들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동묘지에 묘지공원을 조성하여 추모하다가 순국 78년 만인 광복 76주년을 맞아, 지난 8월 15일에 고국으로 봉환하여 8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이국땅 카자흐스탄에서 순국 78년 만에 ‘장군의 귀환’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은 1992년 카자흐스탄과 국교 수립 이후 꾸준히 논의되었다. 2005년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초대 이사장 이종찬)가 출범한 이후 2011년부터 정부 측에 적극적으로 요청해왔다. 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2013년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순국 70주기 추모행사와 묘지 참배를 마치고 귀국하여 기념사업회 명의로 국가보훈처에 재차 유해봉환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한편으로 유해봉환에 관한 국민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언론기관에 투고하고 각종 행사에서 당위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은 남·북한에서 모두 존경하고 봉환을 바라고 있는 독립전쟁의 영웅이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정부는 외교적 마찰과 분쟁을 우려하여 유보해왔다. 그러다가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과 정상회담에서 카심 조마르트 토가예프 대통령에게 “홍범도 장군은 항일 독립전쟁에서 최고의 국민적 영웅이므로 고국으로 봉환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요청하고 토가예프 대통령이 이에 동조함에 따라 성사되게 되었다. 이때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원식 이사장이 정상회담의 특별 수행원으로 동행하여 힘을 보탰다. 

당초 독립전쟁 전승 100주년을 맞아 2020년에 봉환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사정으로 미뤄져 오다가 광복절을 맞아 봉환이 이루어짐으로써 해묵은 국민적 숙원이 해소된 것이다.


일제에 ‘날으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명성 얻어


홍범도 장군은 성장 과정에서 보듯이 정의감이 투철하고 불의를 보면 용서하지 못하는 강인한 성품을 지녔다. 

평양 진위대 나팔수로 근무할 때 상관의 부정과 비리를 보자 이를 응징하고 부대를 이탈했고, 제지공장 노동자로 근무할 때도 근로자들의 임금을 체불하자 사업주를 처단하고 탈출했다.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불의에 저항하여 의병투쟁을 시작하여 을미의병에 참여했다. 


1907년 일제의 총포화약류 단속법으로 포수의 생업을 박탈하려 하자 의병대를 조직하여 북청 후치령전투에서 일제 군대를 섬멸했다. 이후 삼수, 갑산, 북청 등지에서 일제 토벌대를 섬멸해 ‘날으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연해주로 이동해 의병들을 규합하고 군사훈련을 통해 의병을 독립군으로 발전시켰다. 대한독립군의 사령관으로 간도에서 독립군 부대를 통합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으로 일제 정규군을 격퇴하여 국민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을 주었고,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어 국민적인 영웅으로 호칭되었다. 


1921년 러시아로 이동하여 독립군을 재편성하고 정비하려 했으나, ‘자유시 참변’이란 독립군 최악의 사태를 겪으며, 한때 적군으로 편성되어 일본군과 연계된 백군과도 싸웠으나 혁명 이후 무장해제되었다. 


그 후 독립군 동지들과 같이 현지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기회를 모색하다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동포들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국가를 위하여 자신을 헌신한 애국자는 

국가와 국민이 끝까지 책임져야


이번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와 동시에 많은 과제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는 국가와 국민이 끝까지 보호하고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실천한 것이다. 그동안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동포들이 추모하고 보호하다가 78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 국민 모두 무거운 짐을 덜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 모두에서 “광복 76주년을 맞은 오늘 마침내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에 도착한다”며 “독립 영웅들을 조국으로 모시는 일을 국가와 후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무이자 영광으로 여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둘째, 봉환을 계기로 우리 독립운동사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자리잡아야 된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사는 우리 민족사 중에서 가장 소중한 역사적 유산이다. 그러나 아직도 연구 자체가 미진하고 이념적 갈등 때문에 진실이 가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념을 떠나 객관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독립운동사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폄하하고 공산주의자라고 오도하여 1962년 정부가 독립유공자를 포상할 때, 두 번째 등급인 건국훈장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이번에 최고 등급인 건국훈장대한민국장으로 격상시킨 것은 다행스러운 결정이었다.


셋째, 이번 봉환 과정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은 이들은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동포들이다.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의 상징이며 정체성의 실체로 모셔졌기에 그분들의 허전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 정부에서도 이 점을 고려하여 양국 정부 간에 공원을 재정비하여 고려인 동포들의 구심점으로 삼도록 합의했다. 이와 함께 고려인 3, 4세를 비롯한 재외동포들이 민족적 동질성을 가질 수 있도록 현지 대학교와 우리 대학 간에 자매 결연하여, 유대와 교류를 강화하도록 합의했다.


남과 북에서 존경받는 인물 

민족공동체 의식 회복의 계기 마련


넷째, 홍범도 장군은 남과 북에서 모두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통일 시대에 대비하여 남북한 모든 국민이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을 공유함으로써 역사적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고, 의병투쟁의 주 무대가 함경도 지방이기 때문에 인륜에 따라 북한으로 봉환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은 특정 지역이 아닌 모든 국민의 영웅이기 때문에 천리타향이 아닌, 고국에 모시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다.


유해봉환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여 민족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다.

유해봉환 이후 일부 언론과 SNS에서는 아직도 홍범도 장군을 폄하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자유시 참변의 가해자로, 또는 공산주의자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 이전에는 소련이나 중국이 철의 장막이었기에 진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일부 극우세력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고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학자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사실관계가 대부분 규명되었다.


홍범도 장군이 1922년 모스코바 크레믈린궁에서 개최된 원동혁명단체대표자회의에 참석하여 레닌을 면담하고 선물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참가 목적은 ‘고려의 독립’을 위하여 참석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27년 공산당에 입당했으나 이는 현지에 정착한 독립군 출신 농민들의 차별대우를 해소하기 위한 발언권 강화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행적을 보면 카자흐스탄에 이주한 후에도 한 번도 공산주의 운동을 하지 않았고, 독립운동 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고 노력해왔다.


자유시 참변의 실체는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이루츠쿠파와 상해파 공산주의자의 주도권 싸움이었으며 홍범도 장군은 중립을 지켰다. 이후 재판위원으로 참여하여 독립군들을 감형하고 석방하는 데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홍범도 장군의 독립전쟁 업적을 현창하고, 무장독립투쟁의 역사를 선양하기 위하여 독립전쟁 기념공원 건립을 제안한다. 전 세계 약소민족 독립운동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치열했던 우리 선조들의 항일투쟁과 자주 독립정신을 담아 국민교육의 광장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독립전쟁 전승 기념비와 독립전쟁에서 산화한 수많은 무명용사 추모비도 함께 세워야 할 것이다.

유해봉환을 계기로 순국선열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홍범도 장군의 진정한 업적을 밝히고,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데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필자 황원섭 

서울대학교 사학과, 동 행정대학원을 졸업(행정학 석사)했다. 국무총리실 정무장관실(제1) 정무조정관, 정책조정관, 국민체육진흥공단·㈜한국체육산업 상임감사, (재)우당교육문화재단·(사)우당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사)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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