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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스크랩 [2021/12] 제82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및 영령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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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목숨 바쳤던 찬란한 별


고귀한 희생정신 영원히 기억하리


글 | 편집부 


‘제82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큰마당에서 거행됐다. 11월 17일 오전 10시에 거행된 기념식은 독립운동가이자 저항 시인인 이육사 선생의 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서 따온 ‘또 하나의 별을 노래하자’라는 주제로 진행됐으며 독립유공자 유족, 정부 주요 인사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어 오후 2시에는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 앞마당에서 ‘제82회 대한민국 순국선열·애국지사 영령추모제’가 열렸다. 선열들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엄숙하게 기리며 최고의 예를 갖추어 추모 제례를 봉행했다. 


1905년 11월 17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이다. 처절한 슬픔과 분노가 가슴을 치는 날이다.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찬탈당했다. 선열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울분으로 맹렬히 일어나 일제에 저항했다. 민영환은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고,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했으며, 나라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을사늑약에 앞장선 을사오적을 처단하려는 암살단이 조직되기도 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열들이 조국의 제단 앞에 단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다.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당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해 11월 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매년 순국선열의 희생과 독립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을 눈보라 몰아치는 이국땅에서 정성 다해 올렸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끝끝내 놓지 않았다. 


순국선열의 날은 광복 후에도 처절한 길을 걸어야 했다. 1955년부터 1969년까지 정부 주관의 기념행사가 거행되었지만, 1970년 이후에는 정부 행사 간소화 조치로 정부 주관 행사는 폐지되고 유족단체 주관의 기념행사만 개최되었다. 이후 1997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면서 다시 정부 주관 행사로 열렸다. 하지만 기나긴 시간의 공백 속에서 순국선열의 정신과 가치는 사라져 갔다. 


독립기념관에서 ‘또 하나의 별’을 노래하다 


11월 17일 오전 10시 제82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특히 올해는 국민의 뜻을 모아 건립된 독립기념관 겨레의 큰마당에서 처음 개최돼 의미를 더했다. 기념식을 주관한 국가보훈처는 주제를 ‘또 하나의 별을 노래하자’로 정해,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이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를 비추듯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순국선열 한 분 한 분의 유업을 본받아 이어 나가자는 다짐을 표현했다. 


올해 기념식에는 독립유공자 유족, 정부 주요 인사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독립기념관 내 추모의 자리에서 참배를 시작으로 독립유공자 포상, 기념사, 헌정공연, 순국선열의 노래 제창 순으로 약 40분간 진행됐다. KBS1에서는 실시간 방송을 전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우리가 사는 오늘은 선열들이 목숨을 다해 지켜낸 것이다. 우리에게는 보다 나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사명이 있다”며 “나라와 민족을 위한 순국선열들의 헌신과 애국충정에 깊은 존경을 보내면서 그 정신을 영원토록 이어가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이어 “지난 광복절에는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예우를 다해 국내로 봉환했다. 내년이면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도 완공된다. 정부는 앞으로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예우에 부족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포상은 올해 대상자 134명을 대표해 고(故) 홍용환 선생 등 6인의 유족 등에게 전수됐다. 홍용환 선생은 홍범도 장군의 차남으로, 1919년 중국 길림성 왕청현에서 독립군 간부로 활동하고 1920년 연길성에서 대한독립군 제4군 대장으로도 활동했다.


민족의 소리, 혼의 소리가 울려퍼지다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제82회 대한민국 순국선열·애국지사 영령추모제’가 서울시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 앞마당에서 개최되었다. 광복회와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에서 주최했으며 국가보훈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청, 각 보훈단체 및 기념사업회, KBS가 후원했다. 


본 행사에 앞서 KBS 국악관현악단의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져 추모제의 품격을 높였다. ‘순국의 혼’이라는 주제의 영상 속에는 항일배우 김염, 독립군 주치의 김필순 등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 가족의 이야기가 담겼다. 소리꾼 정보권은 안중근 의사 의거와 애국충정을 기리는 창작 판소리 ‘안중근 열사가’를 불러 감동을 전했다. “감췄던 태극기를 번뜻 내어 휘두르며 나는 원수를 갚았다. 이천만 동포들 쇠사슬에 얽혀 놓은 우리 원수 이등박문 내 손으로 죽였소. 대한독립 만세….” 명창의 절절한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엇보다 KBS 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거문고, 가야금, 아쟁, 북, 꽹과리 등 우리 국악기 소리가 더없이 아름다웠다. 공연을 감독한 유제만 차장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제82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순국선열·애국지사 영령추모제를 국가제례로 봉행하는 데 있어 민족의 소리이자 혼의 소리인 국악으로 함께 할 수 있어 더없는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82년간 이어온 순국선열의 절규를 아는가


오후 2시 KBS 국악관현악단의 주악에 맞춰 제82회 대한민국 순국선열·애국지사 영령추모제 개회식이 열렸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순으로 진행되었다.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작고 초라한 독립관 앞에서 묵념을 하자니, 선열들 앞에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이동일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은 “1939년 11월 2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서 순국선열 공동기념일로 제정한 지 82주년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겨레의 재단에 목숨 바친 15만 순국선열의 98%는 이름도 후손도 없다. 서훈받은 순국선열 3,500여 명의 후손 가운데 유족 보상금을 받는 후손은 23%인 804명이며, 서울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분은 0.3%인 426명에 불과하다”며 순국선열과 그 후손들이 걸어온 처참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서대문 독립공원 내 위치한 대한민국 순국선열 위패봉안관은 면적이 179.45㎡(54평)에 불과해 서훈받은 3,500여 명의 81%인 2,835위만 봉안되어 있다. 670여 분의 위패는 자리조차 없는 셈이다.


이동일 회장은 “임시정부부터 지금까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비가 새는 곳에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순국선열 추모제를 유족회에서 회비 내서 지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라며 “82년간의 절규를 아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순국선열의 예우는 국가 정체성 확립과 국민통합의 원동력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는 헌법전문에 건국공로자 중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의 희생에 대한 포괄적 개념을 명시하고 있으며, 국가현충시설 중 순국선열추념관 등을 최우선으로 건립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가유공자 등 단체설립법상 최상위 개념인 순국선열유족회의 공법단체 설립과 유족보상금 개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82주년은 기쁜 날이다. 순국선열추념관 건립 기초 설계비가 정부 예산에 책정되었고, 국가보훈처에서 월간 『순국』 발행에 2억 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앞으로 국무총리가 추모 제례의 제전위원장이 되길 희망한다”며 감사와 바람을 전했다. 


고귀한 영령들이여, 대한민국을 지켜주소서


이어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의 진설과 진행에 따라 추모 제례를 봉행했다. 추모 제례는 순국선열의 국가적 위상에 걸맞은 조선시대 국가제례를 모델로 현대사회에 맞게 간소화한 절차를 마련하고, 이성춘 서울지방보훈청장이 제전위원장을 맡아 예와 격을 갖춘 제례의식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김시덕 사회자와 (사)한국의재발견 구본실 님과 종묘제례보존회 이상훈 님이 의례를 인도하는 가운데 전폐제가 시작되었다. 전폐제는 향을 피우고 잔을 올려 순국선열의 혼(신)을 모시고 폐백을 드려 혼에게 인사하는 의식이다. 이성춘 서울지방보훈청장이 전폐례와 첫 잔을 올리는 초헌례를 집전하고, 종묘제례보존회 이호욱 님이 축문을 대독했다. 이어 허현 광복회 부회장이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이 세 번째 마지막 잔을 올리는 종헌례의 순서로 의식이 진행되었다. 잔을 올리는 순서가 끝난 후 헌관 일동의 음복례, 송신례로 의식은 마무리되었다. 음복례는 제사 술을 한 모금 마심으로써 순국선열의 음덕을 받아 나라의 융성과 국민 평안을 누리도록 음복을 받는 의식이다. 송신례는 제사를 마치고 모셨던 순국선열의 혼을 떠나보내는 의식이다.

경건함 속에 진행된 제82회 대한민국 순국선열·애국지사 영령추모제는 순국선열 노래 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추모제가 끝난 후 순국선열 영령에 바치는 헌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김재홍 함경북도 도지사, 이형진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 회장, 이옥비 이육사추모사업회 이사 등 참석자들이 경건하게 헌화를 마쳤다. 


독립정신이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별이 되길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추모제에 참석해 정성 다해 헌화한 엄재은 님(서울시 현저동)은 “아이가 예전에 이곳에 와서 방명록에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쓰는 걸 보고 감동받았다. 오늘 추모제가 있는 줄 몰랐는데, 오늘 아이랑 함께 와서 뜻깊은 추억을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혼자 추모제에 참석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귀 기울이고 관심을 표현한 황수현 님(대학생 3학년)은 “지금까지 순국선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1월 17일이 순국선열의 날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오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다. 앞으로 순국선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겠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순국선열의 얼과 가치를 잇는 귀한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본다. 

극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던 선열들의 강건한 독립정신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뭉클하다. 한편으론 제2의 현충일로 불릴 만큼 의미 있는 기념일이지만 대부분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에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전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순국선열의 희생정신과 독립정신이 더 널리 알려져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별이 되길,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통합의 시대를 여는 마중물이 되길, 그리하여 국민 모두가 순국선열에 대해 진심 어린 감사를 체득하고 자랑스럽게 묵념을 올릴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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