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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2/07] 강인한 여성의 상징 제주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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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섬 ‘바다밭’을 생의 터전으로 일군 여성들


척박한 환경 이겨낸 ‘초인적’ 생명력

환경친화적 생태주의를 전승하다


글 | 편집부  사진 | 한국관광공사·해녀박물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노라면, 푸른 제주 바다와 해녀들의 모습이 특별한 감동을 전한다. 농사지을 땅조차 없어 ‘바다밭’을 생의 터전으로 일궈낸 해녀들의 강인한 개척정신과 억센 생명력은 제주도의 상징이다. 그런 까닭에 제주도 포구나 여행지 곳곳에는 다양한 해녀 상(像)이 세워져 있다. 언젠가 중문관광단지 내 KFC 매장 앞에 세워진 ‘커넬 샌더스 상’을 보며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KFC 할아버지’는 흰 양복 대신 까만 잠수복을 입고 머리에 물안경을 쓰고 손에는 치킨을 들고 있다. ‘제주 해녀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올해는 제주해녀 항일운동 90주년을 맞아 더욱 뜻깊다. 


해녀(海女)는 제주도, 부산, 남해 연안 또는 동해 연안, 드물게는 일본, 동남아시아, 러시아 등에서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제주도 현지에선 ‘잠녀(潛女)’나 제주도 방언인 ‘좀녀(녀)’ 또는 ‘좀녜(녜)’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둘 다 쓴다. 해녀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해 1980년대 이후 주로 사용되었지만, 제주 어촌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해녀들은 모두 제주에서 출가한 뒤 그 지역에 정착하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제주도에서는 예로부터 동부지역에 해녀가 많았다. 제주 동부는 땅이 척박해 농사를 짓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으나 해조류는 질이 좋고 풍성했다. 해조류를 먹고 사는 전복과 소라도 많이 잡혀 해녀들의 고향이 되었다.


자연과 공생하며 살아온 지혜


제주 바다에 가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짊어지고 나오는 제주 해녀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기계 장치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의한 호흡조절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물질’이라 부른다. 물질은 오랜 시간의 수련과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기술로, 보통 8세부터 마을의 얕은 바다에서 헤엄과 잠수를 익혀 15세 무렵에 ‘애기해녀’가 된다. 70~80세가 넘어도 물질을 계속하는데, 현역 최고령 해녀로 꼽히는 오옥추 할머니는 올해 89세다. 


해녀들의 물질 작업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숨을 참고 15m나 되는 물속에서 강한 수압을 견디며 1분 이상 작업해야 한다. 수압과 산소의 양을 감지하고 수면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잠수하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절기에는 6~7시간, 동절기에는 4~5시간 일하며 일 년에 약 90일 정도 바닷속에서 채취 활동을 한다.


잠수를 마친 해녀는 물 위로 올라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쉰다.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이다. 휘파람 부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를 ‘숨비소리’라 하는데, ‘숨비’는 제주도 사투리로 ‘잠수’를 뜻한다. 물질은 욕심을 내거나 실수하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해녀들이 숨비소리를 ‘생과 사의 경계’라고 부르는 이유다. 


해녀들은 숨비소리를 통해 빠른 시간 안에 신선한 공기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 짧은 휴식으로도 물질을 지속할 수 있다. 신체적 조건으로 폐활량, 수압에 견디는 눈과 귀, 찬물에서 견딜 수 있는 능력 등이 필요하며 커다란 바다생물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는 담대함도 필수다.


제주도에는 ‘숨비소리길’이 있다. 해녀들이 물질과 밭일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걸어왔던 길로, 해녀박물관에서 밭길을 지나 하도리 해안가로 이어지는 코스다. 밭담, 해신당, 불턱(불 피우는 곳) 등 해양문화유산을 보며 자연과 공생하며 살아온 해녀들의 삶과 애환을 느껴볼 수 있다.


안전과 화합의 해녀공동체


유교 문화가 깊게 뿌리박힌 한국에서 제주 해녀는 드물게 주도적인 경제 주체로 활약한 여성이다. 이들은 해녀 활동을 통해 지역경제를 이끌고 여성의 권리를 향상하는 데 일조해왔다. 아울러 제주 해녀는 19세기 말부터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국외로 진출해 제주경제영역을 확대한 개척자로 자리매김했다.


제주 해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해녀공동체’를 빼놓을 수 없다. 제주 해녀는 다른 지역의 해녀와 달리 입어권(入漁權)을 가지고 있어 어촌계 및 해녀회 등의 공동체를 구성해 문화를 전승해 오고 있다. 부산, 울산 등에서 해녀는 개인적인 직업인 반면 제주 해녀는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질 기술이나 해양 지식 등을 전수하며 대를 이어오고 있다.


제주 해녀들은 오래전부터 민회 성격의 공동체를 운영해왔다. 함부로 바다에 뛰어들어 혼자서 물질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정해 놓은 규약과 법에 따라서 행동한다. 공동으로 작업에 임하며, 공동으로 위험 상황에 대처한다. 해녀들의 일터인 바다밭은 해녀공동체인 어촌계 단위로 운영된다. 제주도에는 100여 개의 어촌계가 마을 단위로 있으며 저마다 어장의 경계, 해산물의 채취 자격, 채취 방법과 채취 기간 등을 규약으로 정해 놓고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이는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공존하기 위한 약속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유 토론을 충분히 거친 뒤 결정한다. 해녀공동체는 물질 경험과 기량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뉘는데, 상군 중에서도 탁월한 기량과 풍부한 경험, 지혜와 덕성을 갖춘 해녀를 ‘대상군’이라 하여 공동체의 안전과 화합을 이끄는 리더로 삼는다.


지속가능성 인정받은 

환경친화적 방식


환경친화적인 제주 해녀들의 채취 방식은 세계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들은 바다밭을 단순 채취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가꾸어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으며, 그 과정에서 획득한 지혜를 세대에 걸쳐 전승해왔다. 

더 많은 해산물을 채취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적인 욕심이지만 호흡을 돕는 장비의 도움 없이 물속에서 머물기 때문에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또 공동체 전체가 해마다 잠수 일수를 결정하고 작업 시간, 채취할 수 있는 해산물의 최소 크기를 정하며 남획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제주 해녀 문화는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일구는 대표적인 사례다.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한국의 19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무형유산위원회는 제주도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어업이라는 점, 공동체를 통해 문화가 전승된다는 점 등을 높게 평가했다.


일제 수탈에 맞선 최대 어민 항쟁


제주 해녀들은 불의에 맞서 당당히 저항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제의 착취와 수탈에 맞서 맨몸으로 싸운 해녀항일운동은 지난 1932년 연인원 1만 7천여 명이 참가한 제주지역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자, 우리나라 최대 어민 항쟁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주도의 항일운동이었으며, 1930년대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 중 시위를 주도한 해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은 옥살이를 했으며 검속된 해녀들만 100여 명에 이르렀다. 1932년 1월의 한 신문 기사에는 “해녀 1천여 명이 유사 이래 처음 보는 대시위를 일으켰다. 호미와 비창을 들고 죽음까지 결사했다”는 내용이 게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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