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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2/08] 항일독립운동의 발자취 서대문독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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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목숨 내던진 독립운동사의 생생한 현장


반세기 동안 이어온 조국독립 항거

세상에 이보다 위대한 역사 있을까


글 | 편집부  사진 | 편집부·한국관광공사·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가면 된다. 3만 3천여 평의 공원에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치열하게 외세에 맞서 싸웠는지, 얼마나 뜨겁게 대한독립을 외치며 함께 힘을 모았는지,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의연하게 내던지며 일제의 총칼에 맞섰는지… 말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생생한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다. 서대문독립공원을 천천히 둘러보면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세상에서 이렇게 멋진 나라와 민족이 있을까. 외세에 대항하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반세기 동안 쉼 없이 항거했던,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참 자랑스럽다.  

분수대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솟아 나오고, 짙은 녹음이 도시의 열기를 식혀준다. 나무 그늘 사이로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어르신들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은 귀여운 총총걸음을 치고 있다. 도심 속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곳의 이름은 ‘서대문독립공원’이다. 

조금만 귀 열고 눈 열어 곳곳을 둘러보면, 평화로운 풍경 안에 깃든 선열들의 뜨거운 함성이 들려온다. 가혹한 고문을 견디면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목소리, 일제의 총칼 앞에도 굴하지 않았던 당당한 눈빛,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거운 맹세…. 푸른 공원 사이사이로 오랜 공간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들이 가슴을 울린다.

한민족 항일투쟁사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번 여행은 ‘독립문’에서 시작한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개선문의 양식을 본뜬 독립문(대한민국 사적 제32호)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독립협회는 주권을 위협하는 열강들 사이에서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독립문을 세우고자 했고, 이러한 뜻에 공감한 각계각층 사람들의 성금을 모아 1897년 건립되었다. 조선 시대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사대주의 성격의 ‘영은문’을 허물고 그 근처에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을 국민 성금으로 우뚝 세웠다는 사실이 무척 감격스럽다. 현재 독립문 앞에는 영은문에 사용되었던 큰 돌 두 개가 세워져 있어 자랑스러운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독립문을 지나 왼편으로 ‘독립관’이 있다. 독립관은 본래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지어진 영빈관으로 ‘모화관’이라 불렀다. 이후 방치되다가 서재필 박사가 독립협회를 세우며 독립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곳에서 애국토론회 등을 개최해 독립운동의 기지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철거되었다가 1997년 목조 건물로 복원되어 현재 ‘대한민국 순국선열 위패봉안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54평 규모의 낡은 위패봉안실에는 선열 2,835위가 전시되어 있다. 공간이 협소해 남은 700여 위는 모시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독립신문을 들고 있는 송재 서재필 동상을 지나면 오른편에 ‘3·1독립선언기념탑’이 자리하고 있다. 1963년 광복절에 국민 성금을 모아 3·1운동의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에 세워졌으나, 1979년 탑골공원을 정비하면서 방치되었던 것을 1992년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옮겼다. 4.2m 높이의 탑 뒤에는 3·1독립선언문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독립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순국선열추념탑’을 만날 수 있다. 태극기를 음양각으로 조각한 22.3m 높이의 탑이 우뚝 솟아있고, 탑 아래 좌우 40m에 달하는 거대한 대리석에 선열들의 독립투쟁사가 생생하게 부조되어 있다. 항일 의병과 독립군, 청산리전투, 윤봉길·이봉창·안중근·유관순 열사의 모습 등 반세기에 이르는 한민족의 항일투쟁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가슴이 벅차오른다.

참혹한 고문을 견뎌낸 
고통의 흔적들

산책길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이어진다. 1908년 일제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지은 서대문형무소는 당시 경성감옥으로 불리다가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바뀌면서 80년 동안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에 맞섰던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옥중에서도 당당히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곳에 투옥된 순국선열만 400여 명, 독립투사는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후 다른 시설들은 철거되었으나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고려해 보안과 청사, 제9~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사형장 등은 남겨졌으며, 1998년 살아있는 역사의 배움터로 개관한 것이 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역사관 내부로 들어가면 유물, 시신 수습실, 조사실, 취조실, 각종 고문기구 등이 있다. 특히 역사관 지하에 있는 고문실로 내려가면 물고문, 인두고문, 주리틀기고문, 벽관고문(옴짝달싹 못 하게 좁은 직육면체 나무 상자에 사람을 넣어 세워두는 고문) 등을 체험해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겪었을 고통의 흔적과 마주하며 차마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참담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선열들의 뜨거운 애국심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상징

항일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번 여행의 종착지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다.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역사를 기억하고 조명하기 위해 건립을 추진, 지난 삼일절에 공식 개관했다. 지하 3층, 지상 4층 건물에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특별전시실, 라키비움, 옥외 상징광장, 수장고, 다목적홀, 옥상 정원 등을 갖추고 있다.

기념관 내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 3·1운동부터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의 활동을 주제별로 나눠 밀도 있게 소개하고 있다. 전시실은 2층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상설전시 1관)’, 3층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사람들(상설전시 2관)’, 4층 ‘임시정부에서 정부로(상설전시 3관)’ 등 3곳으로 구성돼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정신의 가치는 대한민국 정부로 계승되었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헌법’과 ‘민주공화국’이라는 제도적 유산만이 아니라 국호·연호, 국기, 국가, 국경일과 기념일, 정부의 주요 인물들까지 실질적으로 이어받아 세워졌다. 전시관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말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기념관 1층 옥외광장으로 나오면 우리의 굴곡진 역사를 표현한 ‘역사의 파도’라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강탈된 주권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과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역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역사의 파도’ 사이사이에는 3·1운동 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대한민국 제헌헌법, 대한민국 헌법을 새겨져 있다. 휴대폰을 활용하면, ‘신념’과 ‘여정’ AR(증강현실) 콘텐츠도 함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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