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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2/09] 성웅(聖雄) 이순신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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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 년 거슬러 전하는 진정한 삶에 대한 성찰


청백리·백의종군 사상 가르치고 

애국심·민족적 자긍심 일깨우다 


글 | 편집부   사진 | 문화재청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올여름 극장가를 강타하며 성웅 이순신에 대한 무한사랑과 존경이 다시 뜨겁게 끓고 있다. 이순신은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200여 편의 책으로 만들어질 만큼 인기 있는 소재다. 그리고 이 모든 서사는 난중일기에서 시작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1월부터 노량해전의 승리를 앞두고 전사하기 직전인 1598년 11월까지 7년간 매일매일 써 내려간 난중일기는 4백 년의 시공간을 넘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1월부터 노량해전의 승리를 앞두고 전사하기 직전인 1598년 11월까지 7년간 매일의 흔적을 기록한 일기다. 총 7책 205장의 필사본으로 엮여 있다. 전투 중이거나 투옥되었을 때 등 일기를 쓸 수 없었던 상황을 제외하고는 매일 일기를 썼으니, 그야말로 완전한 형태에 가까운 기록물이다. 

​사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붙인 제목이 아니다. 이순신은 그해의 간지(干支)를 딴 이름을 책 표지에 붙여 만들었다. 1권 『임진일기』(1593), 2권 『계사일기』(1593), 3권 『갑오일기』(1594), 4권 『병.신일기』(1596), 5권 『정유일기』(1597, 6권 『정유일기속』(1597.8.4~1598.1.4), 7권 『무술일기』(1592)로 이름 붙였다. 그러다가 이순신이 세상을 떠난 지 2백여 년이 지난 1794년 정조가 이순신이 쓴 일기와 시, 장계(왕에게 보고한 문서) 등의 글을 모아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했는데, 당시 편찬 과정에서 편의상 붙여진 이름이 바로 난중일기다.​


세계사에서 필적할 사례 없는

사령관의 전장 기록


​난중일기는 무인 관료가 전장에서 느낀 개인적 생각과 역사적 사실을 서술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형식은 일기지만 매일 벌어지는 교전 상황과 그때마다 떠오른 이순신의 소회는 물론 당일의 날씨와 전장의 지형, 서민 생활상까지 세세히 기록돼 있다. 임진왜란 관련 전쟁 자료 가운데 육지에서 벌어진 기록들은 여럿 존재하지만, 해전을 다룬 사료는 난중일기가 유일하다. 그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2013년)돼 있다. 유네스코는 난중일기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난중일기는 사령관의 전장 기록이라는 면에서 세계사에서 필적할 만한 사례가 없다.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은 매 전투 상황은 물론 장군 자신의 관점과 감정, 기상 정보, 전장의 지형, 민초들의 삶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문체는 간결하고 우아하다.”


서해문집에서 펴낸 난중일기(송찬섭 옮김)를 보면, 그러한 평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월에서 3월 사이, 이순신은 부대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장비가 제대로 관리·유지되고 있는지, 거북선의 대포가 정확하게 발사되는지를 철저하게 점검했다. 한 치의 실수와 허점도 용인하지 않는 완벽주의가 엿보인다. 성정을 닮은 간결하고도 거침없는 문체 역시 눈에 띈다.


“방답진의 병선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 제 한 몸 살찌울 일만 하고 이와 같이 병선은 돌보지 않으니 앞일도 또한 짐작하겠다.”


“사도진의 여러 가지 전쟁 방비를 살펴보았더니 결함이 많았다. 군관과 책임을 맡은 서리들을 처벌하였다. (…) 방비가 다섯 진포 가운데에서 제일 못한데도 순찰사가 잘되었다고 장계를 올렸다니… 죄를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아침을 일찍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에 갔다. 쇠사슬을 가로질러 걸어매는 것을 감독하며 하루 내내 기둥나무 세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해 보았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직접 전통 한지에 붓으로 기록한 친필본 일기다. 문장이 간결하고 서체 또한 매우 아름다워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이순신이 쓴 시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평가되어 별도의 문학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다. 


일기를 쓴 후에는 연도별로 책으로 엮어서 보존에 충실을 기했다. 마지막 책인 무술일기의 경우 이순신 전사(11월 19일) 직전인 11월 17일 마지막 일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전사 이후에는 종군하던 큰아들 회와 조카 완 등에 의해 유품으로 전해져 이순신 본가에서 대대로 보관해 왔다. 일제강점기에도 유실되지 않고 보존되어왔으며, 특히 이 시기에 일본 황족으로부터 난중일기의 양도 제의를 받았으나 13대 종손이 거절하여 일기를 지킨 일화가 유명하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가 국보로 지정했고, 현재는 소유자인 문중의 허락을 받아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기 안에 다양한 인간사 담겨

한국민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임진왜란은 외형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중국 3국 간의 전쟁이었지만, 중국(명나라)의 용병으로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 군사들과 일부 유럽에서 온 군사들도 참전한 기록이 있다. 미국의 전사 연구가 스워프(Kenneth M. Swope)는 200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임진왜란을 “아시아 최초의 지역적인 세계전쟁(Asia’s first regional world war)”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임진왜란에 관한 전쟁 사료 가운데 육전에 관한 자료들은 다수가 발견되지만, 해전에 관한 자료는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와 전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세계적으로 중요한 자료다. ‘세계 최초의 장갑선(裝甲船)’이라고 알려진 거북선에 관한 기록과 전술 내용도 담고 있다. 


일본의 도고 제독은 이순신을 집중 연구해 1905년 5월의 러일전쟁 시 대마도해전에서 이순신의 전법을 활용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물리쳤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오늘날 임진왜란 해전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임진왜란 시기 해전사를 연구할 때 난중일기를 필수 인용 사료로 활용할 만큼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난중일기는 전장의 기록뿐 아니라 당대 유명 인물들의 활동상을 상세히 언급하기도 했다. 조선 조정의 최고위 공직자 중 영의정 류성룡, 우의정 정탁 등을 위시한 대다수 고위인사와 전쟁 지휘부인 도체찰사 이원익, 도원수 권율 등과도 직접 교류한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원군으로 온 명나라의 최고위 지휘부인 진린 도독, 유정 제독, 형개 제독 등과 일본군의 최고위 장수인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오 키요마사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난중일기에는 엄격한 군중 생활과 국정에 관한 감회, 전투 상황의 묘사, 충성심의 표현, 백성들에 대한 걱정, 부모에 대한 효심, 명나라 내왕 요인들의 상황, 항복한 일본군들에 대한 시각과 활용내용, 전황의 기술, 기타 개인 신변잡기 등도 종합적으로 담겨있다. 한국 국민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필독서로 존재하며, 수많은 예술·문학작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난중일기의 내면에는 현대 한국의 정치가들 및 고위 관료들이 지표로 삼는 청백리와 백의종군 사상이 깊게 흐르고 있으며,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애국심, 민족적 자긍심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재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도 번역되어 일본이나 서구 등 전 세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설가 김훈은 젊은 시절 그를 뒤흔든 유일한 글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꼽았고, 2001년 장편소설 ‘칼의 노래’로 펴냈다. 최근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발표한 김한민 감독은 ‘난중일기’를 끼고 살았다고 밝혔다. 마음에 위안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10년 전작인 ‘명량’ 준비에 착수했고,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노량’을 올겨울 개봉할 예정이니 12년간 난중일기와 함께 살아온 셈이다. 4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여전히 현대인들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며 진정한 삶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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