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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1/01] ‘문화민족’의 역사, 국가무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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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속에서 전승되어온 한국의 정체성  

세계에서 유례 찾기 힘든 ‘위대한 유산’


글 | 편집부


얼마 전 흥미를 끄는 기사를 봤다. “한반도 전역에서 오랫동안 전승된 ‘인삼 재배와 약용문화’가 농경 분야 최초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는 내용이었다. 아차, 싶었다.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해 살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잠시 잊었던 까닭이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대한민국의 ‘위대한 유산’을 지금 만나보자.    


  국가무형문화재는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문화재 가운데 그 중요성을 인정해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를 말한다. 무형문화재의 지정은 1961년 12월 정부에서 일제가 만든 조선고적천연기념물보호령을 폐지하고 문화재보호법을 새로 제정해 1962년 1월부터 시행됐다.


1964년 종묘제례악을 제1호로 지정한 이후 양주별산대놀이, 남사당놀이, 판소리, 통영오광대, 강강술래, 나전장, 강릉단오제, 북청사자놀음, 봉산탈춤, 거문고산고, 한산모시 짜기, 살풀이춤, 연등회, 씨름, 김치 담그기, 해녀, 제염, 온돌문화, 장 담그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유산들이 국가무형문화재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전통예술의 정수

종묘제례악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는 종묘제례악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인 종묘에서 치러지는 왕실의 전통 제례의식을 ‘종묘제례’라 하는데, 이때 연주되는 음악을 ‘종묘제례악’으로 부른다. 


종묘제례악을 만든 이는 세종이다. 세종은 중국식 아악 일색인 종묘제향에 문제의식을 갖고 1446년 박연을 시켜 아악을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롭게 정비하도록 명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향악을 토대로 한 신악(새 음악)인 ‘보태평’과 ‘정대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세종은 또 ‘정간보’라는 악기를 만들어 신악을 기록했고, 이 음악이 발전해 종묘제례악이 되었다. 


종묘제례악은 기악과 노래에 춤이 함께 등장한다. 음악은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보태평과 정대업 11곡이 한국의 전통악기로 연주된다. 편종, 편경, 방향과 같은 타악기가 주선율을 이루고, 여기에 당피리·대금·해금·아쟁 등 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더해진다. 이 위에 장구·징·태평소·절고·진고 등의 악기가 더욱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구사한다. 


조선왕실의 제례음악은 세조 9년(1463년)부터 현재까지 종묘에서 변함없이 연행되고 있다.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종묘제례악은 1964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에는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함께 국내 최초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역사성과 더불어 예술성과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풍자와 해학의 미학 

양주별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는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에 당당히 올랐다. 제1호인 종묘제례악이 화려한 왕실문화의 정수로 꼽힌다면, 양주별산대놀이는 특권계급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식을 녹여낸 서민놀이문화의 대표라 할 만하다. 


양주별산대놀이는 파계승, 몰락한 양반, 무당, 사당, 하인 및 늙은이와 젊은이가 등장해 현실을 폭로하고 풍자, 호색, 웃음과 탄식 등을 보여준다. 주제는 파계승 놀이와 양반 놀이, 서민 생활상을 보여주는 놀이로 크게 나뉜다. 무엇보다 당시의 특권계급과 기존 도덕에 대한 비판정신을 연출하는 민중극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일종의 탈춤으로, 우스꽝스러운 탈을 쓴 광대의 익살스런 춤사위와 재담은 관객들과 호흡하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탈춤은 한국인의 신명과 활달한 몸짓, 익살과 풍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최고의 민중연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다른 놀이와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남녀 삼각관계의 설정에서 봉산탈춤·오광대·꼭두각시놀음은 남녀의 갈등을 강조하는 데 반해 양주별산대놀이에서는 양반과 평민의 대립관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임진왜란 후 양주에 목사 유척기가 부임해 군사와 관내 주민을 위로하기 위해 한양의 본산대를 초청한 것이 산대놀이의 시초라고 전해진다. 200년 전부터 양주에서는 매년 초파일, 단오, 추석 같은 명절이면 사직골의 딱딱이패를 초청해 산대놀이를 공연했다. 그러나 딱딱이패가 공연이 많아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기자 을축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돼 딱딱이패에게 놀이와 가면 만드는 법을 배워 스스로 놀이를 하게 되면서 본래의 산대놀이에 못지않은 재주를 익히게 됐으나, 내용과 형식이 본(本)산대놀이와 조금 달라 별(別)산대놀이로 불리게 됐다.


현대 엔터테인먼트의 원류

남사당놀이


  남사당놀이는 ‘남사당’이라는 전문예인집단에서 전승된 전통연희와 놀이다. 남성 30~40명으로 구성된 남사당패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했다. 이들은 사찰을 근거리로 하면서 농·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공연을 했다.


남사당놀이는 노래와 춤, 음악, 놀이가 결합된 총체적 성격을 지닌다. 현재 풍물, 탈놀이인 덧뵈기, 줄타기인 어름, 인형극인 덜미, 땅재주인 살판, 버나 돌리기 등 여섯 종목이 전해지지만 과거에는 훨씬 다양한 종목이 있었다. 이 놀이는 한국의 전통성과 총체적 놀이성을 인정받아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남사당패는 20세기 초반에 중부 지방을 비롯해 중국 만주 지방까지 다니며 공연을 할 정도로 활동 범위가 넓었다. 그러면서 지역 전승의 각종 풍물, 탈놀이, 세시놀이에 영향을 주었다. 남사당놀이는 현대의 문화 콘텐츠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각종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게임·공연 문화·음반·서적 출간·교육·광고 분야에 걸쳐 적극 재창조되고 있으며, 특히 영화 ‘왕의 남자’에 남사당놀이 중 줄타기, 풍물, 탈놀이, 인형극 등이 두루 삽입되어 영화의 흥행과 작품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농경사회에서 시작된 여성 놀이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전라남도 해안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민속놀이다. 기록에 의하면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적군을 속이기 위해 활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던 농경사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강술래는 우리나라 대표 명절인 설, 대보름, 단오, 백중, 추석 밤에 열렸는데, 동쪽 하늘에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동네 아낙들은 서로 손을 잡고 둥근 원을 만들며 강강술래를 돌았다. 당시 밖에 나가기 힘들었던 여인들에겐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한 셈이다. 


강강술래에는 악보는 물론, 리듬을 만든 작곡가도 없고 가사를 지은 작사가도 따로 없다. 평범한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고 다듬은 음악이자 춤이다. 그런 까닭에 강강술래는 당시 여성들의 삶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민속놀이이며, 우리 고유의 정서와 말과 리듬이 잘 담겨있는 무형 문화유산이다. 


아울러 각 지역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어휘와 반복되는 후렴, 리듬의 강약, 변화무쌍한 의성어와 몸동작 등으로 다양성을 보여준다.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민요

아리랑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은 역사적으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일반 민중이 공동 노력으로 창조한 결과물이다. 


아리랑은 매우 단순한 노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여음(餘音)과 지역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발전해온 두 줄의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 보편의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한편, 지극히 단순한 곡조와 사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흥적인 편곡과 모방이 가능하고, 함께 부르기가 쉽고, 여러 음악 장르에 자연스레 수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는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창의성, 표현의 자유, 공감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아리랑이 지닌 가장 훌륭한 덕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새로운 사설을 지어낼 수 있고, 그런 활동을 통해 아리랑의 지역적·역사적·장르적 변주는 계속 늘어나고 문화적 다양성은 더욱 풍성해진다. 


아리랑은 또한 영화·뮤지컬·드라마·춤·문학 등을 비롯한 여러 다양한 예술 장르와 매체에서 대중적 주제이자 모티프로 이용되어 왔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진 통합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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