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1/02] 독립운동가 발자취 따라 특별한 버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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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만난 13인의 독립운동가
“이번 정류장은 ‘여운형 활동 터’입니다”
글 | 편집부
“이번 정류장은 ‘혜화동로터리·여운형 활동 터’입니다.” 대학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여운형 선생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 선생이 여기서 어떤 활동을 하셨을까.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혜화동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 미처 몰랐던 터라 궁금증이 몰려왔다. 핸드폰으로 검색해봤다. 혜화동로터리는 좌우합작 운동을 벌였던 여운형 선생의 주요 활동 터로, 극우 테러리스트의 흉탄에 세상을 떠난 곳이란다. 더 놀라운 건, 이처럼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병기한 버스정류장이 서울시에 13곳 있다는 사실!
버스 안내방송을 듣고 나서일까. 대학로가 조금 달라보였다. 연극과 뮤지컬을 보고 맛집을 찾아다녔던 유희의 공간 너머에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시간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 탓이리라. 순간 울컥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겠구나.
내친김에 발걸음을 옮겨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김상옥 의사 동상을 찾아갔다. 그동안 숱하게 그곳을 오가면서도 김상옥 의사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쳤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역사책에서 숱하게 외운 이름인데, 눈앞에 있는 그분을 몰라 봤다니…. 역사가 과거에 박제되지 않고 현재의 시간과 공존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걸까. 참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당신이 걷는 길 위에
역사의 흔적이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3·1절이나 광복절 같은 날이 아닌 일상에서는 독립운동을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자주 접하는 버스에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들으면 평소에도 독립운동을 상기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서울시는 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만 7000여 명 중 활동지가 서울 주요지점이고, 대표성을 가지는 독립 인사를 선정했다. 특히 여성독립운동가를 최대한 반영했다. 덕분에 버스정류장에서 권기옥, 김마리아, 유관순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알려진 여성독립운동가 수 자체가 적은데 그조차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로 불리는 일이 많다”며 “여성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찾아주고자 하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서울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어렴풋하게 들어봤지만 평소 잊고 살았던 소중한 이름들이 들려온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특별한 장소를 가지 않아도, 이제는 일상에서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버스 타고 떠나는
서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서울역을 지나 나오는 회현역 남대문시장 앞 정류장에는 ‘이회영 활동 터’를 병기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명동 YMCA 자리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대저택이 있던 곳이다. 이회영 선생과 형제들은 대저택을 비롯한 전 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당시 처분했던 재산이 현재 가치로 6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불리는 선생의 위대한 일생을 오고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만날 수 있어 더없이 반갑다.
이회영 선생의 집터 앞에는 명동성당이 있다.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후 사형을 받아 순국한 안중근 의사는 아버지를 따라 천주교에 입교했는데, 명동성당에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명동성당 근처 ‘서울백병원·국가인권위’ 정류소에 ‘안중근 활동 터’가 병기된 이유다.
종로 쪽으로 넘어가면 ‘종로5가·효제동·김상옥 의거 터’ 정류장이 나온다. 김상옥 의사는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인물이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일본 식민통치의 상징이었다. 거사 후 잡히지 않고 은신했으나 발각되어 효제동에서 일본 경찰과 접전 끝에 자결로 순국했다. 정류장에서 혜화역 쪽으로 걷다 보면 마로니에 공원이 나오는데 이곳에 김상옥 의사를 기억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혜화동로터리로 가면 여운형 선생이 반겨준다. ‘혜화동로터리·여운형 활동 터’는 광복 후 좌우합작 운동에 힘쓰던 여운형 선생이 암살된 장소다. 우리나라 최초 독립선언서인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조소앙 선생을 기념하는 정류소도 있다. ‘삼선교·한성대학교·조소앙 활동 터’가 그곳이다. 조소앙 선생은 삼선교에 거주했는데 1950년 총선 때 서울 성북구에서 당선되어 제2대 국회에 진출한 바 있다.
성북구에는 또 다른 독립인사가 있다. 바로 만해 한용운 선생이다. ‘임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서울다원학교·한용운 활동 터’ 정류장 근처에는 유택 심우장이 있다. “남향 하면 바로 돌집(조선총독부)을 바라보는 게 될 터이니 차라리 볕이 좀 덜 들고 여름에 덥더라도 북향하는 게 좋겠다”고 집의 방향을 바꿨다는 일화로 유명한 곳이다. 만해는 이 춥고 더운 집에서 십 년을 넘게 지내며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애국지사들과 교류했다.
용산구 숙명여대 근처에는 독립인사가 병기된 정류소가 두 곳 있다. ‘효창공원삼거리·윤봉길 의사 등 묘역’과 ‘숙명여대후문·이봉창 활동 터’다. 1932년 윤봉길 의사는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및 전승 기념식에, 이봉창 선생은 일본에서 일왕에게 각각 수류탄을 투척했다. 현재 서울효창공원에는 ‘삼의사’라 불리는 윤봉길과 이봉창, 백정기와 임시정부 요인 김구,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를 기억하다

권기옥 선생과 김마리아 선생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도 재조명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선생은 학생시절 비밀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해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고 평양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임시정부의 추천을 받아 중국 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해 10여 년간 비행사로 복무했다. 결혼 후에도 독립운동가였던 남편과 함께 여러 활동에 가담했으며, 이후 전 재산을 기부하고 장충동 낡은 건물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장충문화체육센터·권기옥 활동 터’라는 정류소 명칭이 붙은 이유다.
김마리아 선생은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를 국내로 밀반입해 3·1운동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고문과 옥고를 치르다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 최초 여성 대의원으로 활약했으며, 미국 유학 중에도 항일운동을 계속했다
정류장 ‘김마리아 활동 터’에서 조금만 걷다 보면 선생이 졸업하고 교사로 일했던 옛 정신여고 교정 터가 나온다. 현재 서울보증보험 본사가 들어서 있는 이곳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활동한 자리이며, 독립운동 당시 태극기와 비밀문서를 숨긴 회화나무(서울시 보호수 지정)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서울보증보험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김마리아 선생 흉상을 제작해 회화나무 옆에 모셨다.
현재 이 사업은 100주년을 기념해 총 100개의 버스정류장 명칭을 바꿀 계획이란다. 꼭 그리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덧붙여 한마디 하자면, 버스정류장에 초라하게 붙어있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설명은 무척 민망했다. A4용지에 성의 없이 뽑은 인쇄물이며, 인터넷에서 대충 퍼온 내용 역시 그러했다. 좀 더 품위 있게 그분들을 기려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형식적 명분보다는 그분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진정성을 담아낼 때 버스를 타고 오가는 시민들의 감동도 한결 배가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