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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1/03] 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한국의 전통무술 택견·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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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나란히 등재


함께 즐기며 

단결과 평화를 익히다


글 | 편집부  사진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대한씨름협회 


첫 남북 공동 등재된 

유네스코 문화유산, 씨름 


씨름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무형유산으로, 사상 최초로 남·북한이 공동 등재했다. 2018년 11월 26일 모리셔스 포트루이스에서 열린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남·북한이 각각 등재 신청한 씨름을 하나로 묶어 ‘한국 전통 레슬링, 씨름(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으로 공동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유산에 등재될 당시 유네스코는 “씨름은 한반도 전 지역에서 널리 행해지는 운동 경기로 예로부터 한민족은 노동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때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씨름을 즐겼다”고 밝혔다. 


씨름은 5세기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 벽화에 남아있을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경기다. 벽화에는 짧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오른쪽 어깨를 맞대고 상대의 허리띠를 움켜쥔 씨름 경기 장면이 생생히 담겼다.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조선 후기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린 ‘단원풍속도첩’에도 씨름 경기를 감상하는 모습이 소개됐다. 씨름이 평범한 저잣거리 백성들에게 사랑받은 놀이문화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씨름은 대한민국 전역에서 폭넓게 즐기는 대중적인 놀이다. 씨름은 2명의 선수가 샅바(허리에 두른 천으로 된 띠)를 찬 상태에서 서로의 샅바를 잡고 상대를 바닥에 넘어뜨리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쓰는 레슬링의 종류다. 성인대회의 우승자는 풍요로운 농사를 상징하는 황소를 상으로 받으며, ‘장사’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대회가 끝나면 장사가 우승을 기념하며 황소를 타고 마을을 행진한다. 씨름은 부상의 위험이 거의 없고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연령대의 공동체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다.


씨름의 전승은 한국의 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 중부와 남부의 제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역에서 나타나는데, 공통적인 기본형식을 바탕으로 지역의 지리적 여건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여러 형태로 발달했다. 각 지역별로 놀이 방식이나 용어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공동체의 단합과 활력을 주는 사회적 기능과 의미는 전국적으로 차이가 없다.


씨름의 전통은 해외 거주 교민들에 의해서도 이어져왔다. 재외 동포들은 특별한 행사 때 씨름을 즐기고, 현지 전통에 스며들어 창의적인 방식으로 향유되기도 한다. 씨름은 중국, 일본, 미국, 우즈베키스탄 등 재외한국인들 사이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1980년대 이만기, 강호동 등 스타를 배출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씨름은 2000년대 이후 긴 침체기를 겪다가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체중이 무거운 선수들의 힘겨루기 대신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박진감 넘치는 씨름을 펼치면서 대중들의 호응이 높아졌다. 백두급이나 한라급이 주목받던 과거와 달리 경량급인 금강급(90㎏ 이하), 태백급(80㎏ 이하) 선수들이 탄탄한 몸매와 빼어난 외모, 그리고 화려한 씨름 실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전국장사 씨름대회 영상은 유튜브에서 100만 뷰를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지난해 젊은 경량급 씨름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 예능 ‘씨름의 희열’(KBS)은 젊은 씨름 스타들을 대거 탄생시키며 씨름 열풍을 일으켰다. 


상대를 배려하는 법 

가르치는 무예, 택견


  택견은 우리나라 고유의 무술이자 민속놀이다. 주도권을 장악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 상대를 배려할 것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무술이며 자신보다 상대를, 개인보다 집단을 배려하도록 가르치는 경이로운 스포츠다.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택견은 공격보다는 수비 기술을 더 많이 가르친다. 숙련된 택견 전수자는 부드럽고 물결치는 듯한 움직임으로 신속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지만, 진정한 고수는 상해를 입히지 않고도 상대를 물러나게 하는 법을 안다. 이러한 점은 격투 스포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다. 


택견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첫째, 외적인 동작은 부드러우나 내적으로는 강한 무술이다. 둘째, 우아함과 품위를 강조하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무술이다. 셋째, 걸고 차는 다양한 기술을 통해 공격과 방어의 조화를 이루는 실질적이고 통합된 무술이다. 부드러운 인상을 풍기지만, 가능한 모든 전투 방법을 이용하며 다양한 공격과 방어 기술을 강조해 효과적이다.


택견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사회적 통합에도 크게 기여했다. 원래 생존을 위한 무술과 마을 단위의 여가 활동으로 발달했는데, 이후 농업 문화의 계절적 전통으로 보급되어 대보름, 단오, 백중, 추석과 같은 특별한 민속 행사에서 행해졌다. 일반적으로 마을 간의 시합은 계절마다 열려 공동체 구성원 간의 결속을 증진하고 자연스럽게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했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택견을 수련해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택견과 유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이미 행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무용총 벽화에는 두 남자가 마주서서 택견의 견주기 동작을 취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삼실총 벽화에는 품밟기의 굼실거리는 걸음걸이로 활갯짓을 하는 동작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신라에서도 택견과 유사한 신체활동을 볼 수 있다. 경주 석굴암 입구에 있는 금강역사상이 택견의 주먹질 막기와 견주기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분황사 층탑 출입문 좌우에 부조된 인왕상의 택견 자세는 신라 택견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고려시대 『고려사』에서는 택견을 수박(手搏, 手拍)이나 수박희(手搏戱)라 기록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대중들의 경기로 널리 확대되어 무인뿐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보급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택견을 금지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일제는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어린아이들이 장난삼아 하는 애기택견마저 순사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말렸다고 한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집안 어른들까지 위협했으므로 결국 택견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택견이라는 용어는 1920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에서 유래한다. 이후 1933년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에 ‘태껸’이라고 표기하면서 표준말이 바뀌었다가, 1983년 문화재 지정 당시 택견으로 정해졌다. 현재 택견과 태껸이 혼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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