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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1/05] 빛고을 광주 5·18 기억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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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여 따르라! 살아있는 민주화운동 역사박물관     


금남로에 서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다


글 | 편집부        사진 | 광주광역시·한국관광공사·국가기록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은은하게 5·18민주광장을 울렸다.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본다.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시계탑에선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연주된다. 그날을 기억하라는 역사의 울림이리라. 시민들이 빙 둘러앉아 밤샘 토론하고 독재타도, 계엄령 해제를 외쳤던 분수대가 보인다. 전일빌딩245가 헬기사격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고 했던가. 2021년 5월 금남로에 서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었다. 


1980년 5월, 그날들의 진실을 기억하고 있는 시계탑은 전두환 정권의 지시에 따라 농성광장으로 옮겨졌다가 30년만인 2015년 1월 27일 제자리를 찾았다. 당시 신군부는 5·18 무력진압을 규탄하는 집회가 시계탑 주변에서 자주 열리면서 시계탑이 ‘5·18 상징물’로 부각되자 아예 없애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탑 상부 시계 2개가 사라졌고, 대리석으로 만든 몸통 일부가 파손됐다니 한탄스럽다.


  옆에 있는 분수대 역시 광주의 참상이 어려 있는 곳이다. 1980년 5월 시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당시 금남로는 광주의 중심지였다. 울분을 토할 만한 장소가 없었던 시민들은 분수대 주위에 둘러앉아 밤샘 토론하고 독재타도, 계엄령 해제를 외쳤다. 분수대는 각종 집회의 연단이고 본부석이었다. 인적 드문 광장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그날을 기억해본다. 열띤 목소리와 뜨거운 눈빛들…. 


분수대 우측을 지나면 옛 도청 별관이 나온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의 항쟁 본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담장 안쪽에는 회화나무가 있었다. 대형 스피커를 달아놓고 안내 방송을 하고 집회가 열릴 때는 나무 위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기도 했던 나무다. 2013년 태풍 피해로 생을 마감했지만, 한 시민이 채취한 자식 나무로 회화나무 작은 숲 공원을 조성했다. 지금은 자식 나무들이 푸른 잔디 위에 굳세게 자라고 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함께 통곡했던 그곳


상무관 앞에 도착했다. 원래 과거 전남도경 경찰들의 무술연습과 훈련을 하는 곳이었는데,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시신을 임시 보관했던 통한의 장소다. 이후 희생자들은 청소차에 실려 망월동 옛 묘역에 묻혔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영화 <택시운전사>의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눈물이 아른거렸다. 산 자도 죽은 자도 함께 통곡하며 울부짖었던 그날들…. 잠시 원혼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해본다. 


  ‘민주의 종각’ 지나 건너편에 있는 전일빌딩은 지난해 5월 11일 ‘전일빌딩245’로 거듭났다. 헬기에서 소총으로 발사한 탄흔이 245발이어서 전일빌딩과 245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주소도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번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흔이 여전히 그날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민 문화공간인 시민플라자(지하1~지상4층), 문화산업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을 위한 광주 콘텐츠 허브(5∼7층), 5·18 기념공간인 19800518(9∼10층), 전망·휴게공간인 전일 마루와 굴뚝 정원(옥상, 8층) 등을 갖췄다. 특히 5·18기념공간은 총탄 흔적 원형 보존과 함께 1980년대 당시 금남로와 전일빌딩 중심의 도심과 헬기를 각각 축소 모형으로 제작·설치하고, 헬기사격 당시의 증언을 토대로 한 헬기사격 장면 등을 영상으로 제작해 상영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금남로에는 1980년 5월의 흔적들이 곳곳에 박제되어 있다. 살아있는 현대사 박물관이라 불릴 만하다. 1980년 민주화운동 집회가 있을 때는 광주은행, 한국은행, 화니 백화점, 중앙교회 인근까지 시민들로 꽉 찼다. 한국은행은 금남로 공원으로, 광주은행 건물은 SK빌딩으로 바뀌었다. 


YMCA는 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지도부가 자주 옥내집회를 열었던 곳이다. 5월 26일에는 계엄군의 무력진압을 막기 위해 자위적 수단으로 시민군에게 총기훈련을 실시했으며, 항쟁 이후에도 광주항쟁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수많은 집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광주 YWCA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5월 24일부터 그 건물 안에 있던 신용협동조합 관계자들과 들불야학 청년들은 ‘민주시민회보’를 제작해 광주항쟁 소식을 전국에 전했으며, 민주인사들은 이곳에서 시민의 희생을 막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수시로 가졌다. 이곳은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을 공략하던 계엄군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어 최후의 항전에서 많은 시민군이 희생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까닭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은 민주화 과정에서 실시한 진상규명 및 피해자 대상 보상 사례가 여러 나라에 좋은 선례가 되었다는 점, 5·18민주항쟁이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룩하도록 영향을 끼쳤다는 점 등 세계적 가치가 인정되어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 바로 5·18민주화운동 기념관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학생들이 연좌시위를 벌인 것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이 전개됐던 가톨릭센터에 들어섰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의 전시는 크게 항쟁, 기록, 유산, 보존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항쟁의 기록을 담은 1층의 1전시실은 1980년 5월의 항쟁을 시간대별로 구성했다. 아울러 항쟁의 주요 사건들을 재연했다. 시민군에게 줄 주먹밥을 담은 함지박, 길가에 나뒹구는 주인 잃은 신발 등의 소품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미디어 아트나 전시 연출을 통해 사실감을 극대화하면서 광주항쟁의 중심에 내가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전시실 앞 1층 로비엔 계엄군의 총탄이 관통했던 옛 광주은행 본점 유리창이 전시되어 있다. 


2층 2전시실에는 5·18과 관련한 직접적인 기록물(일기장, 취재수첩, 사진자료, 정부기관·군사기관 자료 등)과 이를 계승한 기록물(악보, 문학작품, 포스터, 만화 등)이 전시돼 있다. 여기 전시돼 있는 기록물들은 모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이다. 


3층의 3전시실에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동유럽 혁명의 신호탄이 된 폴란드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의 ‘21개 요구사항’을 적은 벽보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투쟁 기록을 담은 자료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6층에 올라가면 옛 광주가톨릭센터의 모습을 남겨둔 4전시실을 만날 수 있다. 


이제 발길은 금남로 5가로 향한다. 예전의 번화한 거리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름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던 시절에 그저 ‘망월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국립 5·18 민주묘지’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34번지에 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평가 작업 및 5·18 희생자 묘역을 민주성지로 가꾸려는 움직임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광주광역시가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완성한 곳이다.


한쪽에 모셔져 있는 행방불명자의 묘역에서 두 손을 모아본다. 5·18 당시 행방불명되어 현재까지도 시신을 찾지 못한 분들의 영을 기리는 곳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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