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1/07] 세계 최고의 경전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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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도 따라잡지 못한 과학·예술의 놀라운 결정체
숱한 국난에도 기적처럼 살아남아
국민통합과 희망을 지켜내다
글 | 편집부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이 6월 19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건물인 장경판전의 창 사이로 멀리서 관람하는 것만 가능했지만, 이젠 건물 안에 들어가 관람할 수 있다. 1521년 팔만대장경이 완성된 이후 일반인에게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해인사 관계자는 “팔만대장경 조성을 통해 국민통합과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호국애민(護國愛民) 정신을 되새기며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제공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공개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해인사에는 두 개의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바로 팔만대장경으로도 불리는 고려대장경과 이를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藏經板殿)이다.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 대장경은 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대장경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을 집대성한 것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은 대장경을 나무에 새긴 목판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대장경은 물론이고,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송나라와 거란에서 만든 대장경에 비해서도 완성도가 뛰어난 걸작이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자연환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과학적인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장경판전 덕분에 대장경을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보관할 수 있었다. 자연과 과학을 완벽하게 활용한 건축물 장경판전과 8만 장이 넘는 대장경판은 예술성이 뛰어난 대한민국의 최고 보물이다. “사람이 아닌 신선이 쓴 것 같다” 추사 김정희 극찬 최초의 대장경은 1011년에 새기기 시작했다.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자 당시 왕이었던 현종은 불심으로 거란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초조대장경)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거란 군대가 고려에서 물러났다. 불교를 믿던 고려 사람들은 이를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생각했다.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군 침략 때 안타깝게도 소실되었다. 팔만대장경의 원래 명칭은 ‘고려대장경’이다. 경판의 수가 8만여 개에 달한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으로도 부르게 된 것이다. 팔만대장경의 경판 수는 모두 8만 1,258장이다. 경판을 쌓아올린 높이는 백두산이나 63빌딩보다 높다. 새겨진 글자 수는 무려 5천 2백만 자다. 한자에 능한 사람이 하루 8시간씩 읽어도 30년이나 걸릴 만큼의 양이다. 놀라운 건, 이렇게 많은 글자 중 오탈자는 딱 158자로, 비율로 따지면 0.0003%에 불과하다. 게다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새긴 것처럼 판각 수준이 일정하고 글씨체도 수려하다. 이유는 약 1년간의 연습을 통해 한 사람의 글씨처럼 글씨체를 맞췄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명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는 경판에 새겨진 글씨를 보고 ‘사람이 쓴 게 아니라 신선이 내려와서 쓴 것 같다’고 평가했다. 나무는 조금만 환경이 변해도 썩어버린다. 이를 막기 위해 고려인들은 추운 겨울에 나무를 벌목한 다음, 바닷물에 2년간 담가두었다. 소금에는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서 나무의 뒤틀림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일곱 번의 화재에도 무사했던 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에서도 당대의 과학기술을 엿볼 수 있다. 스스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도록 창문의 크기와 위치를 설정해, 아주 더운 여름에도 장경판전 안은 선선한 온도가 유지된다. 1970년대 정부에서 과학자들을 동원해 장경판전과 똑같은 현대건물을 지었지만, 장경판전에선 멀쩡하던 경판이 그곳에서는 썩거나 뒤틀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현대 기술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건물인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장경 보관용으로 만든 건물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해인사는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일어난 화재로 많은 건물이 잿더미로 변했다. 그런데도 장경판전만은 유일하게 500년이 넘도록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장경판전이 화재 속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건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목조 건물이 모여 있는 곳은 한 건물에서 불이 나면 바람을 타고 곧 주변 건물로 불이 옮겨 붙는다. 이를 막기 위해 장경판전은 주변 건물보다 훨씬 높은 곳에 짓고, 사방으로 완벽한 담장을 설치했다. 덕분에 화재 속에서도 장경판전이 무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완벽한 팔만대장경에도 여러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팔만대장경 주위에서 불이 난 것만 7번, 그러나 다행히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에는 불길이 미치지 않았다. 화재보다도 더 위협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팔만대장경을 갖고 싶어 했던 일본이었다. 일본은 조선 초기부터 80여 회에 걸쳐서 팔만대장경을 줄 것을 요청했다. 사신이 단식투쟁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협박도 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이천도국’이라는 이름의 가짜 나라를 하나 만들어 개국기념으로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속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차례 경판을 가져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해인사 승려들이 이를 막아냈다. 6·25전쟁 때도 위기는 찾아왔다. 해인사로 인민군 세력들이 모여들자, 상부에서는 ‘해인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 명령을 받은 김영환 대령은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이 명령에 불복종했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770년 동안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팔만대장경은 존재만으로도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