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1/09]변방에서 최정상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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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조선체육회 창립부터 2020 도쿄올림픽까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서 시작
세계 최고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글 | 편집부
조선체육회 창립취지서를 보면, “사람은 원래 천지에 흐르는 약동의 생명과 충실의 생명과 웅장의 생명을 받아 태어났지만 우리 민족의 얼굴은 채색(菜色·병들거나 굶주린 사람의 혈색)이고 신체는 버드나무 가지 같이 가늘고 힘이 없으며 정신은 혼미하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것은 개개인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국가의 쇠퇴를 가져와 멸망으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바꾸어 말하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강건한 신체를 가지고 국가의 쇠퇴를 막자는 뜻이 담겨있다.
조선체육회는 창립 첫 대회로 1920년 11월 4일부터 사흘 동안 배제고보 운동장에서 전국체육대회 기원이 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1929년 조선체육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3개 종목(야구, 정구, 육상)을 한데 묶어 처음으로 종합대회인 제10회 전조선경기대회를 주최하는 등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자존감을 드높이는 정신적 구심체로 우뚝 섰다.
일제 압제에서도 피어난
대한민국 체육
하지만 이듬해인 1938년 7월 4일 조선체육회가 일본체육협회의 조선 지부나 다름없는 조선체육협회에 흡수되면서 조선체육회가 주최하던 전조선종합경기대회가 중단되었고 마라톤, 축구, 빙상, 자전거, 역도 등 조선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었던 자생적인 체육단체들도 자연스럽게 해체의 길을 걸어야 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조선체육회는 다시 부활했다. 1945년 10월 27일 서울운동장에서 10종목 4천 100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를 개최했다.
대한민국 이름으로
올림픽 첫 참가

6·25전쟁 중에도 스포츠는 멈추지 않았다. 1951년 10월 제32회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했고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 참가해 동메달 2개를 따내 전쟁 폐허 속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는 해방 후 첫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레슬링 양정모가 주인공이었다. 유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 레슬링·여자배구가 각각 동메달을 획득해 종합 19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특히 여자배구는 구기종목 사상 최초 메달이자 여자 종목 첫 메달을 기록했다.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25개 종목, 22개국 4,839명 참가, 대한민국 2위),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23개 종목, 159개국 8,397명 참가, 대한민국 4위)의 성공적 개최는 단숨에 아시아를 넘어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선 첫 금메달(공기소총 여갑순)과 마지막 금메달(마라톤 황영조)을 모두 따내 ‘스포츠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특히 황영조의 마라톤 우승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 우승 이후 56년 만에 맥을 이어 그 감격이 남달랐다. 같은 해 2월, 알베르빌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동계 스포츠에서도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동·하계올림픽, 월드컵축구, 육상과 수영세계선수권대회 등 세계 메가 스포츠 이벤트들을 모두 유치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루며 단숨에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 박태환,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와 모태범의 금메달은 동양인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