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1/11] 감나무에 까치밥 남겨두는 조선의 마음 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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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과 메주 쑤기로 바빠지는 아낙들 일손
아무리 가난해도 ‘치계미’ 대접
혹한 이겨내는 훈훈한 인정
글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입동(立冬) 즈음의 정경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손짓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홀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째며, 이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덜고 한숨 돌리는 때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입동 전후
소중한 먹거리 ‘김장’

“입동이 지나면 곧 김장철로 접어든다. 가난한 주부들은 한시름 늘었다. 기온도 입동을 경계로 급격히 떨어져 올겨울 들어 첫 추위를 보일 것 같으니 요모조모로 걱정만 앞선다.” 이는 동아일보(1961.11.8) 기사로 손수레에 배추를 잔뜩 싣고 가는 모습의 흑백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입동 앞뒤에 가장 큰 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때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예전에는 큰집, 곧 대식구를 거느린 집에서는 김장을 몇 백 포기씩 담그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집 여성들이 모두 함께 모여 김장에 매달렸다. 우물가나 냇가에서는 부녀자들이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겨울 반찬용으로 무청시래기, 무말랭이. 호박, 가지 등도 잘 말려두는 등 일손이 바쁘다.
메주 쑤기도
입동 무렵 중요한 행사
메주는 말장(末醬), 밀조(密祖), 훈조(燻造), 장국(醬麴), 며조, 메조, 며주 등으로 불렸으며 김치 못지않은 겨레의 종요로운 먹거리다. 메주는 보통 10~12월에 쑤며, 특히 입동 무렵인 음력 10월 또는 동짓달에 많이 쑨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1월령에서는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라고 하였다.

한편, 1924년 이용기(李用基)가 쓴 조리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메주 쑤는 법에 대하여 “처음에 콩을 삶을 때에 물을 넉넉히 부어 솥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하고 콩을 작은 그릇에 불리면 그릇이 터지오, 조리로 일어 가마나 솥에 붓고 끓어 넘치거든 뚜껑을 열지 말고 그냥 물만 넘기고 삶으라. 뚜껑을 자주 열면 콩도 넘어 나올 뿐 아니라 콩이 덜 무르나니라. 뜸 들여 잘 무르게 한 후에 퍼내어 물이 빠지거든 깍지가 없도록 잘 찧어서 메주를 보사기만 하게 조금 납작하게 만들어 하나씩 펴놓고 하루 동안 안팎을 말린 후에 겉이 꾸덕꾸덕해지거든 멱서리나 섬이나 둥구미에 띄우되 솔잎을 깔고 한 켜씩 메주를 늘어놓아 (가운데 줄임) 잘 살펴 띄우라”라는 식으로 서술하여 마치 비디오 화면을 보듯 상세히 기록해놓고 있다.
입동날에 즐기던 민속 풍습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점을 친다. 경상남도 여러 섬에서는 입동에 갈까마귀가 날아온다고 하고, 밀양 지방에서는 갈까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목화가 잘 될 것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지독하게 분다고 점을 쳤다.
입동을 즈음하여 점치는 풍속이 여러 지역에 전해오는데, 이를 ‘입동보기’라고 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속담으로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있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친다.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다. 또 이때에는 추수를 무사히 끝내게 해준 데 대해 감사의 고사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음력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외양간 등에 고사 지낸 뒤 한해 집안의 무사 안녕에 감사하고 또 이웃집과도 떡을 나누어 먹는다.
어르신 잘 봉양하는
‘치계미’ 풍속

또한,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여러 지역의 향약(鄕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섣달 그믐날에 나이가 드신 노인들에게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하였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였는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온 풍속인 듯하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한해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금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추어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입동 추위에는
토목공사 중지시키자는 상소
입동은 말 그대로 겨울로 들어서는 계절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입동 추위에 대한 기록이 제법 눈에 띈다.
“눈앞의 시사(時事)가 매우 위태로운데, 천재가 거듭 이르러 천둥과 우박의 변이 심지어 입동 뒤에 나타났습니다. 남북에 근심스러운 점이 많고 변방의 대비는 무너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의 고통을 힘써 없애고 인심을 진정시키는 것입니다. 안팎에서 벌이고 있는 공사와 관청을 수선하는 일은 백성을 병들게 하기에만 족할 뿐 현시기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무익한 것입니다. 맡은 이에게 명하여 안팎의 토목공사를 일절 중지하도록 명을 내려 백성들의 조그만 어려움이나마 덜어주소서.”
이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71권, 광해 5년(1613년) 10월 2일 기록으로 입동 전후하여 ‘천둥과 우박’이 내렸으며 이러한 추위에 백성들에게 토목공사를 시키는 것은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라고 도승지 이덕형(李德泂) 등이 상소를 올리고 있다.
蕭蕭落木聲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를
錯認爲疎雨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呼僧出門看
동자승 불러 밖에 나가보라 했더니
月掛溪南樹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
-송강 정철,
‘산사야음(山寺夜吟)’
겨울로 성큼 들어서는 입동(立冬)! 계절이 바뀌는 소리가 낙엽 떨어지듯 후드득 들린다. 이런 때일수록 시골집 낮은 담장 넘어 매달린 메주 모습에서 어머니의 따스한 정이 느껴진다.

필자 김영조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