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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1/12] 잊혀진 역사의 강 압록강(鴨綠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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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의 발원지


독립투사의 통한과 분단의 슬픔 안고

민족사의 강은 오늘도 흐른다


글 | 최범산(작가) 


백두산에서 서해로 흘러가는 압록강 건너 서간도 일대 항일독립전쟁 유적지를 십여 년 동안 답사하고, 그 기록과 사진들을 묶어 서간도 항일유적 답사기 『압록강아리랑』을 출간하였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만주지역으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이 독립전쟁을 전개했던 유적지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낸 뒤에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압록강 줄기를 따라가며 우리 민족의 꿈과 희망,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 길로 가는 단초라도 찾아보고 싶다는 작가의 간절함이었다. 그것이 비록 실낱 같은 희망찾기가 될지라도 70여 년 동안 몸서리쳐지는 남북분단 상황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소명의식이 나로 하여금 십여 년 동안 압록강 이천리 길에 천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압록강은 한반도의 젖줄이며 민족사의 강이다. 백두산 줄기가 남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우뚝 솟은 명당봉(明堂峰: 1809m) 기슭에서 발원한 압록강은 지경천, 웅이강과 합류하여 양강도 혜산시 강구동에 이른다. 그리고 백두산 장군봉 남서계곡에서 발원한 보혜천과 합류한 후 머리를 서쪽으로 돌린다. 다시 장백현 13도구촌, 양강도 김정숙군에서 장진강과 합류하고, 후창강이 합쳐지면서 한반도에서 가장 기온이 낮은 중강진(中江鎭)에 이른다. 자강도 만포와 운봉에서 남서쪽으로 굽이굽이 흘러가며 수많은 침식곡류를 이루며, 길림성과 요녕성 경계에서 혼강(渾江: 비류수)과 합류하여 강폭을 넓히고 압록강 최대 담수호, 수력발전소 수풍댐에 이른다. 


압록강은 평안북도 의주에 이르러 애하(曖河)와 합류하고 단동시와 위화도 사이를 흐르다가 압록강 철교, 신압록대교를 지나 압록강 하구 용암포에서 서해바다로 합류한다. 압록강의 전체 길이는 925㎞, 대한민국 영토에서 길이가 가장 긴 강으로 경치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강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한반도 산하를 적시며 서해바다로 이어지는 한반도 북단의 젖줄이다. 압록강이라는 명칭은 물빛이 오리머리의 색과 같아 압록수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마자수, 염난수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아리수라고 기록되어 전한다.

오늘도 압록강은 흐른다


배낭 하나 메고 압록강 이천리 길을 자유롭게 오가며 산굽이, 강마을마다 서린 이야기, 우리민족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정경을 마음껏 탐사해 보고 싶은 작가의 바람. 그것은 세월에 할퀴고, 이념에 묻히고, 남북분단에 막혀 한낱 꿈으로 끝나버릴 것만 같은 시간들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서해 5도 중 하나인 연평도를 북한군이 선전포고 없이 포격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전쟁 정전 협정 이래 최초로 발생한 민간인 거주구역에 대한 공격이었다.


6·15와 7·4 공동선언 이후 남북해빙무드가 조성되어 남북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간들은 언제 그랬느냐 싶을 정도로 남북한의 관계는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설상가상 민간인 지역에 폭격을 가한 북한의 도발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었다.


꿈꾸는 자의 출발은 불가능을 여는 것, 곧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 했던가. 2012년 『압록강아리랑』을 출간한 후 나는 인천항에서 국제여객선을 타고 중국 단동항으로 향했다. 압록강 종주를 향한 나의 첫걸음이었다. 북한정권이 잠시 열었던 백두산과 압록강 길마저 막혀버렸기에 나는 다른 나랏길로 가서라도 기어이 압록강 종주를 해내고 말겠다는 결심으로 중국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딛었던 첫발이 십 년 동안 40회가 넘는 서간도 지역 답사로 이어졌고, 백두산 압록강 발원지에서 장백현, 집안시, 단동시를 거쳐 압록강 하구 용암포까지 압록강 줄기를 따라 종주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강 건너에서 북한땅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에 절반의 종주에 그쳐 몹시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남북분단의 처절하고 냉혹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작가로서 차선의 선택이었다.


나의 눈앞에 펼쳐지던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 발원지, 굽이치는 압록강 물줄기의 경이로움, 역사를 머금은 마을들, 북녘동포들의 삶의 현장들을 수없이 지나 압록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용암포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 그 기쁨과 환희를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압록강 발원지, 천지에서


압록강 발원지는 백두산 남파산문(南坡山門)에서 천지로 오르는 길에서 시작된다. 백두산 남파산문은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서 북쪽으로 3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산문에서 천지를 향해 오르는 길이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며 그곳에 우뚝 솟은 명당봉이 압록강 발원지이다. 


나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장엄하고 거룩한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을 보았다. 압록강 발원지는 철조망 너머 북한경비병의 차가운 눈초리에 막혀 비록 가볼 수는 없었지만, 민족의 영산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족의 인중(人衆) 가운데 한 사람임을 스스로 환호하고 감격했다.


아! 백두산이여. 얼마나 장엄한 이름인가. 나는 오늘도 백두산에 올라 산천지, 물천지, 사람들 천지 호사를 마음껏 누리고 있으니 이 감동을 어찌 누를 수 있으랴.


거룩한 백두여! 영광(靈光)의 천지여! 감격에 겨워, 호사에 겨워, 영험에 겨워 목이 메여오는 사람들, 어찌 감동 없이 바라볼 수 있겠는가. 


분단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나의 응어리진 가슴에 빛으로 다가서는 영봉들, 이념에 찌들고 끝없이 자기검열 하느라 검게 타버린 마음들에 찰나로 다가와 보듬고 정화시켜주는 바람, 바라는 것이 많아 혼탁해진 영혼들을 청잣빛 물로 깨끗이 씻어주는 천지, 하느님의 호반을 아무 주저 없이 그냥,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이 마냥 바라볼 수 있는 영광은 얼마나 거룩한 은총인가.


압록강 뗏목군


천지의 장관에 넋 잃고 취해 있다가 불현듯 여행자로 깨어나 압록강 최상류지역인 장백현 23도구로 향했다. 중국인들은 압록강 줄기가 악화쌍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백두산 천지의 맑은 물이 깊고 깊은 땅속으로 흐르다가 샘물로 변하여 지상으로 솟아오르고, 악화쌍폭에 이르러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린 물이 장백현 23도구에서 보혜천과 합류하며 비로소 하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인들의 헛소리를 귓전에 흘리며 백두산을 내려와 23도구촌과 양강도 사이를 흘러가는 압록강 최상류에 이르렀다. 한반도 젖줄이 되기 위해 이제 긴 여행을 시작하는 압록강 줄기를 따라 서해바다를 향해 떠나는 나의 길고 긴 여정도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장백현에서 압록강 줄기를 따라 임강시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뗏목들. 아무리 교통과 물류가 발달한 세상이라 해도 압록강에는 지금도 뗏목으로 목재를 나르는 사람들이 있다. 뗏목은 날씨가 좋으면 하루에 1백 리를 간다고 한다. 북한 중강진에서 아침에 떠나면 저녁나절이면 평안도 만포의 강마을에 닿는다. 뗏목군은 늘 사자밥을 등에 지고 다닌다고 했으니 그 만큼 위험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뗏목꾼들이 압록강 거친 물결을 헤치며 노를 저어 흘러갈 때마다 불렀던 노랫말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뗏목꾼 서럽네. 

고생이 막심하네. 

마소처럼 일하건만, 

상하고 죽으면 그만이라네.

강가에 버린 시체는 승냥이가 먹고, 물속에 버리면 고기밥 신세라네


압록강 굽이굽이 넘실대는 물결 따라 흘러가는 나룻배와 뗏목을 보며 우리가 사는 인생사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문명의 거센 강물에 휩쓸려가는 나룻배에 올라탄 듯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압록강 뗏목군의 삶을 자신보다 낮고 더 위태롭게 바라보며 살고 있지 않을까. 그들의 도전과 용기, 강인한 정신을 무시한 채 말이다. 압록강 거친 여울에 생명을 맡긴 뗏목군의 삶에서 나는 대자연과 함께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강인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압록강 이천 리 물굽이가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기에 물돌이마다 뿜어내는 절경들, 폭과 깊이마다 다른 빛깔로 옷을 갈아입는 물줄기. 햇살이 빚어내는 눈부신 윤슬들, 급류, 완류의 여울이 번갈아가며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순간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압록강의 이야기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은 압록강은 우리의 정신적 고향이며 지주로서, 모든 우리의 감성과 사고가 비롯되는 근원의 강으로 그리고 있다. 그의 가슴 속에 항상 흐르고 있는 조국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의 발원지로서의 의미를 압록강에 부여하고 있다. 


압록강변 길을 따라 달려가는 차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들, 북녘 산등성이 마다 꽃을 피운 옥수수가 익어가는 산밭들. 차창에 부딪힐 듯 가까이 달려들다 이내 멀어지고 다시 다가서는 압록강변에 북녘동포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차를 멈추고 강가로 달려가 하염없이 그들의 삶을 훔쳐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물놀이에 푹 빠져 자신들의 삶의 하루를 맘껏 즐기고 있었다. 아이도 엄마도 아빠도. 평화, 그것은 압록강의 평화로움이었다. 


백두에서 서해로 가는 길에 만난 도시, 요녕성 단동시는 북한 신의주시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국경도시이다. 내가 압록강 철교에 올랐을 때 신의주시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다. 전쟁으로 끊어진 다리 위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강 건너 슬픈 동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닭 모를 눈물이 흐른다. 강물을 아무리 움켜 마셔도 배가 고픈 사람들, 나의 동포들의 소리 없는 통곡이 하늘을 때리며 눈물구름들이 하늘을 덮는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그저 바라볼 뿐, 남녘의 작가는 이내 무능한 이가 되어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냥 동포의 슬픈 눈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경술국치의 울분과 통한을 안고 압록강을 건너 간도로 건너가는 독립투사와 그 가족을 바라보던 압록강은 그때에도 오늘처럼 구슬프게 울었으리라. 백년이 흘러간 오늘도 동강난 국토에 가로막혀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찾는, 분단의 아픔을 되풀이 생각해야 하는 작가의 눈물은 언제쯤 마를 수가 있을 것인가.


신압록강대교에서 동강항까지 35킬로미터를 달려서 도착한 압록강 하구에서 북한의 용암포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갈매기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용암포 갯벌에는 북한주민들이 나와 조개를 캐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힘들고 무거워 보이는 것은 서해갯벌의 질퍽거림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나는 동강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국제여객선 선상에서 압록강 건너 북한마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서울에서 자유롭게 기차를 타고 평양을 지나 압록강을 거닐 날이 올 것인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이천 리를 달려온 압록강은 아무리 작은 개울물도, 하천도, 강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어찌 그뿐이랴. 더러운 물, 혼탁한 물, 온갖 쓰레기, 오물을 품은 물이라도 모두 포용하며 거대한 강줄기를 이루지 않는가. 우리는 왜 압록강의 가르침을 외면한 채 서로 손가락질하고 자기 자랑, 남 탓만 하며 70여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 세상(전쟁과 분단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말살시키는지를 그저 모른 척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질고 척박한 세상)을 끝장내 버릴 수가 있을까. 정녕 우리민족의 역사의 강, 압록강에서 다시는 이 땅의 후손들이 흘리는 피눈물을 보고 싶지 않다. 오늘도 압록강은 백두에서 서해로 흘러가고 있다.  


필자 최범산 

1986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및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등으로 있다. 최 작가는 우리들로부터 잊혀지고, 훼손되고, 버려진 북간도 지역 항일독립전쟁의 유적을 십여 년 동안 답사하며 독립투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새겨진 유적들을 찾아 기록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역사가 바로 서고, 진실하고 올바른 사람들의 세상을 위해 그는 간도지역 항일유적의 생생한 기록과 현장사진을 묶은 항일독립전쟁 유적답사기 『압록강 아리랑』 『두만강 아리랑』 두 권의 책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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