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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2/01] 2022년, 호랑이해(壬寅年) 설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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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미 깃든 세배 예절부터 재미난 설날 풍속


덕스럽고 희망적인 덕담 건네고

‘구정’이란 말은 쓰지 마세요


글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덕담은 덕스럽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게 좋으며 지난해 있었던 나쁜 일이나 부담스러운 말은 굳이 꺼내지 않는 게 미덕이다. 좋은 예가 조선시대의 ‘마침형(완료형)’ 덕담이다. “고모님께서 새해는 숙병(宿病)이 다 쾌차(快差)하셨다 하니 기뻐하옵나이다.” 이는 숙종임금이 고모인 숙희공주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있는 말이다. 숙종은 고모의 오랜 병이 완쾌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숙병이 쾌차했다 하니 기쁘다”라며 아직 병중이건만 마치 병이 다 나은 것처럼 표현했다.  


2022년 임인년 호랑이해가 밝았다. 그동안 2년 넘게 끌어온 코로나19로 국민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곧 다가올 겨레의 큰 명절 설날, 올해는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웃어른께 세배를 올릴 수 있게 되길 빈다.


설날의 말밑(어원)들 


우리말 ‘설날’을 뜻하는 말로 한자로는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와 같은 말도 있다. 어느 경우나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는 설날을 “달도일(怛忉日)”이라고 해서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했다. 한편, ‘설다. 낯설다’라는 말에서 ‘설’의 유래를 찾는 이들도 있다. 처음 가보는 곳은 낯선 곳이며,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사람이다. 따라서 새해는 정신적, 문화적으로 낯설다고 생각하여 ‘낯선 날’이 되었고, 이 ‘선 날 ’이 ‘설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밖에 나이를 말할 때 쓰는 “몇 살(歲)”이라고 하는 말의 ‘살’(산스크리트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연세설과 한 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의 “서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침형(완료형) 

덕담을 나누는 세배


설날의 가장 대표적인 명절풍습은 뭐니 뭐니 해도 세배다. 부모님이나 집안 그리고 마을 어른들께 드리는 이 새해 인사도 격식에 맞춰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자의 세배는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양손을 어깨 폭만큼 벌리고 손가락은 모은 채 약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한 뒤 서서히 몸 전체를 굽힌다.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포개는 것이 바른 세배법이다. 손을 잡는 법을 ‘공수법(拱手法)’이라 하는데 남녀가 반대이고, 절을 받는 사람이 산 사람인가 아니면 죽은 사람인가에 따라 공수법이 달라진다. 


세배를 드리면서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와 같은 명령 투의 말을 건네는데 이는 예법에 맞지 않는다. 세배한 뒤 일어서서 고개를 잠깐 숙인 다음 제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세배를 받은 이가 먼저 덕담을 들려준 뒤 이에 화답하는 예로 겸손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다. 덕담은 덕스럽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게 좋으며 지난해 있었던 나쁜 일이나 부담스러운 말은 굳이 꺼내지 않는 게 미덕이다. 좋은 예가 조선시대의 ‘마침형(완료형)’ 덕담이다.

“고모님께서 새해는 숙병(宿病)이 다 쾌차(快差)하셨다 하니 기뻐하옵나이다.” 이는 숙종임금이 고모인 숙희공주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있는 말이다. 숙종은 고모의 오랜 병이 완쾌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숙병이 쾌차했다 하니 기쁘다”라며 아직 병중이건만 마치 병이 다 나은 것처럼 표현했다. 이것이 ‘마침형 덕담’이다. 그런가 하면 정조 때 한경(漢經)은 하진백(河鎭伯) 집안사람들에게 문안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 보면 하진백이 과거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을에 있을 과거에서 급제했다며 미리 축하의 덕담을 보내고 있다. 


이 밖에 명성왕후(明聖王后, 현종비)가 셋째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에게 보낸 편지, 인선왕후(효종비)가 숙휘공주(딸)에게 보낸 편지, 순원왕후(순조비)가 김흥근(재종동생)에게 보낸 편지 등도 모두 이렇게 미리 좋은 일이 있다는 예견의 ‘마침형 덕담’을 하고 있다. 


첨세병에 ‘꿩 대신 닭’

그리고 세주불온 


설날이 되면 가래떡을 썰어 끓인 떡국을 꼭 먹었는데 떡국에 나이를 더 먹는 떡이란 뜻의 ‘첨세병(添歲餠)’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떡국을 겉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白湯)’,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餠湯)’이라고도 했다. 보통 설날 아침에 떡국으로 조상제사의 메(밥)를 대신하여 차례를 모시고, 그것으로 밥을 대신해서 먹었다. 


떡국의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로는 원래 꿩고기가 으뜸이었다. 고려 후기에 원나라의 풍속에서 배워 온 매사냥이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놀이로 자리를 잡으면서 매가 물어온 꿩으로 국물을 만든 떡국이나 꿩고기를 속으로 넣은 만두가 고급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일반 백성이 꿩고기를 구경하기란 어려운 일이라서 대신 닭고기로 떡국의 국물을 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생겼다. 그러나 요즘 떡국의 국물은 꿩고기나 닭고기로 만들지 않고 주로 쇠고기로 만든다. 


설날에는 ‘세주불온(歲酒不溫)’이라고 하여 찬술을 한 잔씩 마셨다. 이는 옛사람들이 정초부터 봄이 깃들었다고 보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또 설에는 산초·흰삽주뿌리·도라지·방풍 등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서 만든 ‘도소주(屠蘇酒)’를 마셨는데 이 술을 마시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설날의 재미난 풍속들 


설날에는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있다. 안사돈들이 새해 문안을 드리려고 하녀 곧 문안비(問安婢)를 사돈집에 보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설날 꼭두새벽 거리에 나가 맨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 청참(聽讖), 장기짝 같이 만든 나무토막에 오행인 금·목·수·화·토를 새긴 다음 이것을 던져서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보는 오행점(五行占)도 있었다. 


또 남녀가 한 해 동안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설날 해가 어스름해지기를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치는 ‘원일소발(元日燒髮)’이 있고,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고 해서 잠을 자지 못하게 했는데 아이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깜박 잠이 들면 잠든 아이들의 눈썹에 떡가루를 발라 놀려주던 ‘해지킴(守歲)’ 풍속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양괭이 곧 야광귀(夜光鬼) 풍속도 있다. 양괭이는 섣달그믐 밤, 마을 사람 집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그 신의 주인은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양괭이를 두려워하여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놓고 잠을 잤다. 그리고 체를 마루 벽이나 장대에 걸어 두었다. 그것은 야광귀가 와서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체의 구멍이 신기하여 구멍이 몇 개인지 세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섣달그믐 밤에 쌀을 이는 조리를 새로 만들어 복조리라 하여 붉은 실을 꿰매어 부엌에 걸어 두는 복조리 걸기 풍습도 있다. 한 해 동안 많은 쌀을 일 만큼 풍년이 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예전에는 새해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복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니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이때 산 복조리를 부뚜막이나 벽에 걸어 두고 한 해의 복이 가득 들어오기를 빌었다. 또 복조리로 쌀을 일 때는 복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일었다. 남정네들은 복을 갈퀴로 긁어모으라는 뜻으로 복갈퀴를 팔고 사기도 했다. 


설날을 구정이라 부르면 

안 되는 까닭 


수천 년 내려오던 우리 겨레의 큰 명절인 설은 《고려사》에 설날·대보름·한식(寒食)·삼짇날·단오·한가위·중양절(음력 9월 9일)·팔관회(음력 10월 15일)·동지를 ‘구대속절(九大俗節)’로 지낸다 했고, 조선시대에도 설날·한식·단오·한가위를 4대 명절로 꼽을 만큼 설날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오래된 전통이었다. 중국 사서인 《수서(隋書)》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도 신라인들이 설날 아침에 서로 인사하며, 임금이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도 설날을 ‘구정’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구정(舊正)이란 신정(新正)과 대칭을 이루는 말로 이는 조선을 강제병합한 일본제국주의 영향이다. 일제는 명치유신 이후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정(양력설)을 강요하면서 조선인들이 조상 누대로 이어온 음력 설날을 이중과세라 하여 중지시켰다. 조선총독부는 1936년 《조선의 향토오락》이란 책을 펴낸 이후 우리말, 우리글, 우리의 성과 이름까지 빼앗고 민속놀이도 금지했다. 이와 함께 민족정신을 없애고자 우리 고유의 설날을 ‘구정’이라고 깎아내리고 쇠지 못하게 했다. 광복된 뒤에도 우리 겨레의 명절인 설날은 줄곧 양력설에 눌려 기를 못 폈다. 


그러다가 정부가 198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쳐 설날인 음력 1월 1일을 앞뒤로 사흘을 공휴일로 정함에 따라 이젠 설날이 완전한 겨레의 명절로 다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처럼 고유의 명절 이름 ‘설날’이 자리 잡았건만 여전히 일제강점기 찌꺼기인 ‘구정’이란 말을 쓰는 이들이 있다. 올해 호랑이해(임인년) 이후부터는 구정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길 바란다. 기쁜 우리 ‘설날’에 ‘구정’이 다 무엇인가?  


필자 김영조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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