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초대석

[2020/12] 황준성 숭실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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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특별 초대석 | 만나고 싶었습니다


역사로 미래로 열어가는 최고 항일 민족사학

독립유공자 88인 기리는 추모비 건립

 

미래사회에 가장 중요한 건 ‘민족과 역사’


글 | 편집부


숭실대학교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분연히 맞서 자진 폐교하며 항일운동에 앞장선 ‘민족대학’이다. 독립운동 정신은 실용주의적 문명교육과 합을 이루어 민족의 근대화에 핵심 역할을 했다. ‘국내 최초 4년제 대학’으로 시작해 국내 최초 컴퓨터 교육 도입, 국내 최초 전자계산학과·정보과학대학·IT대학 설립 등 수없이 많은 ‘최초’의 기록을 써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시기에 숭실대는 또다시 큰 획을 그었다. 국내 최초 AI 선도대학을 선포했으며, 숭실 출신 독립유공자 88인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웠다. ‘역사로 미래를 열어가는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멋진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숭실대학교에서 황준성 총장을 만났다.   



  “도탄에 빠진 동포들을 구하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민족정신과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한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항일독립투쟁 DNA는 지금도 민족의 내일을 열어가는 인재교육에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을 기리고 널리 선양해나가며 그분들이 걸어가신 나라사랑, 민족사랑, 애국애족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지난 11월 20일 열린 ‘독립의 반석’ 제막식에서 황준성 총장은 결의에 찬 어조로 말했다. 독립의 반석은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헌신한 숭실 출신 독립유공자 88인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만든 추모비이며, 1897년 개교 이래 조국독립에 앞장서 온 숭실대의 역사를 현재와 미래로 잇는 의미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항일민족운동 근거지…숭실 출신 88명 서훈받아


  미국인 선교사들의 기독교 정신과 평양주민들의 민족정신이 결합해 설립된 숭실대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항일민족운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숭실의 학생들은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다. 2020년 10월 기준, 숭실인 88명이 공훈을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으며, 이 중 13명은 하나뿐인 목숨을 나라에 바치며 순국했다. 


본격적인 항일운동의 역사는 1905년으로 거슬러간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숭실 학생들은 저항의 의미로 수업을 전폐했으며,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신민회 활동, 105인 사건, 조선국민회와 광복회 등에서 활약하며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3·1운동 당시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원은 114명에 달하며, 56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 이 중에서는 민족대표 33인으로 활약한 김창준과 박희도가 포함되어 있다. 


1920년대에 이르러서도 항일투쟁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광주학생운동, 신사참배 거부 운동 등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광범위한 민족운동을 펼쳤다. 물산장려운동·신간회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조만식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임시의정원 부의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한 윤동주 시인도 숭실 출신이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민족대학의 역사와 최고 항일명문사학의 증거들이 그야말로 차고 넘친다.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당시 모든 대학이 학교 존립을 위해 신사참배를 받아들였어요. 그러나 숭실대는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라는 결단을 내렸어요. 기독교 민족대학의 정체성을 위해 스스로 대학 문을 닫은 유일한 학교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는 4·19혁명과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왔고, 2017년 개교 12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 발굴 사업에 나서면서 여든여덟 분이 서훈을 받는 결과를 이끌어냈죠.”

황준성 총장의 눈빛에서 자신감이 넘쳐났다. 굴곡진 근현대사 속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걷고자 노력해온 숭실인의 힘이 느껴졌다. 


대한민국 근대화에 앞장선 국내 최초 IT대학


  항일독립운동이 숭실대의 정신적 뿌리라면, 실용주의는 숭실대의 학문적 토양이었다. 

“숭실은 ‘실(實)을 숭(崇)하는 학교’에서 출발했어요. 이름에 걸맞게 1897년 평양에 숭실학당을 설립할 당시부터 조선시대에는 없었던 서양학문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만들어졌어요. 실사구시(實事求是)에 기반한 실용주의가 학문적 배경이 된 것이죠.”


황 총장의 말처럼, 숭실대는 정신적 가치에만 매몰되지 않고 실용주의적 학문으로 대한민국 근대화에 큰 공을 세웠다. 1908년 대한제국 황실로부터 인가받은 한국 최초 근대 대학으로 시작해 1969년 국내 최초 컴퓨터 교육 도입, 1970년 국내 최초 전자계산학과 설립, 1983년 국내 최초 중소기업대학원 설립, 1996년 국내 최초 정보과학대학 설립, 2005년 국내 최초 IT대학 설립 등 수많은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국내 대학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최초’의 기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7년 개교 120주년을 맞아 ‘숭실 4.0’을 선포했으며, 올해는 ‘AI(인공지능) 비전 선포식’을 열며 국내 최초 AI융합학부 설립이라는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앨빈 토플러가 ‘19세기 강의실에서 20세기 교수들이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패러다임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어요. 이제 간판주의는 종말을 고하고 있으며, 교육도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ABC(AI, Big data, Cloud)’가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어요. 우리 대학은 ‘숭실의 모든 교육은 AI로 통한다’는 슬로건 아래 숭실대가 갖고 있는 IT의 힘을 바탕으로 AI의 미래로 나아갈 계획입니다.”


숭실대는 내년까지 모든 학과에 AI 융합과목을 개설한다. 숭실대에는 48개 전공과목이 있는데 현재의 커리큘럼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게 황 총장의 판단이다. 어떤 전공을 하든 AI를 적용해 경쟁력을 키워나가게 할 방침이다. AI에 기반을 둔 국문학이나 철학처럼 인문학 분야에서도 AI와의 융합을 시도한다. 앞으로 5년간 AI 융합 분야 육성을 위해 교수 영입과 시설투자에 350억 원을 쓸 계획이다. 


국내 유일의 이산(離散) 대학에서 통일의 꿈 키워   


  서울 상도동 숭실대 캠퍼스 본관 앞에는 세 개의 깃발이 펄럭인다. 중앙에는 태극기, 그 좌우에는 평양 숭실대와 서울 숭실대 깃발이다. 


숭실대는 국내 유일의 이산(離散) 대학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 선교사 베어드(W. M. Baird) 박사가 1897년 평양에 설립한 숭실학당이 모태다. 1908년 4년제 대학으로 인가받았으나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했다가 1954년 서울에 다시 뿌리를 내렸다. 숭실대가 세 개의 깃발을 게양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은 민족대학을 넘어 통일대학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었다. 숭실대는 통일부 주관의 통일교육 선도대학에 5년 연속 선정되며 통일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대학의 비전은 당초 숭실대가 건립됐던 평양에 숭실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전제가 ‘통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2014년 국내 대학 최초로 신입생 교양 필수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 과목을 개설했어요.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합니다.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과 기독교통일지도자 훈련센터, 숭실평화통일연구원을 만들어 학생들이 통일의 중요성을 체득하고, 통일시대를 선도할 창의적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황 총장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분단’과 인연이 깊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국내 유일 이산학교인 숭실대에서 공부했고, 분단의 상징인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리고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베를린 장벽은 대학 기숙사에서 불과 800~9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요란한 함성이 들려 뛰쳐나가 보니 사람들이 장벽 위로 올라가 곡괭이로 깨고 있더라고요. 순간 38선과 북한 동포가 어른거렸어요. 통일이 이렇게도 올 수 있구나, 우리도 항상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분단의 인연이 통일로 이어지길 바라며, 황 총장은 그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순국선열 기리는 것은 강건한 국가를 세우는 길


황준성 총장은 1974년 숭실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베를린자유대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박사학위 받았다. 1993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해 2017년 2월 총장으로 취임할 때까지 모교에서 후배이자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인재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개인사에서 비롯되었으리라.  


“21세기 인재는 4C를 갖추어야 해요. 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소통능력(Communication), 협업능력(Collaboration)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역사입니다. 역사를 잊은 국가는 미래가 없다고 해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세상의 패러다임이 기술만능주의로 갈 수밖에 없지만, 더 중요한 건 민족과 역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려면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예우하고, 최우선순위에 두고 지원해야 학생들이 저절로 역사를 배운다고도 했다.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강건한 국가를 세우는 길입니다. 하버드대 교수들이 한국의 경제성장 모티브를 분석했는데 ‘대한민국의 독특한 정신이 대한민국을 일으켰다’고 했어요.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국가가 바로 서려면 애국애족의 한길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을 기리고 민족정신을 더욱 강조해야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살아온 황 총장은 부끄럽지 않게 노력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삶을 살아왔다. 아울러 데살로니가전서 5장‘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를 순간순간 몸에 새기며 살아왔다. 뼛속까지 새겨진 두 개의 문구 덕분일까.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엔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본관 앞에 태극기와 평양 숭실대 깃발과 서울 숭실대 깃발이 파란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사이좋게 펄럭이고 있었다. 교문 앞에는 ‘독립의 반석’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역사로 미래를 열어가는 대학’ 숭실대학교가 대한민국의 통일시대와 4차 산업혁명시대를 슬기롭게 이끌어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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