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 박병석 21대 전반기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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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위상 정립 위해 국회 역할에 충실할 것
잊혀진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의무
글 │ 편집부 사진 │ 박병석국회의장실
2000년 16대 국회에 입성해 내리 6선을 했으며, 2020년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저력은 화려한 언변이나 강력한 리더십은 아니었던 듯하다. 여야 통틀어 유일하게 ‘최다선’ 의원임에도 큰 소리를 내거나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돋보였다. 정치적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감, 서두르지 않고 정도를 걷는 소신, 타고난 성실성과 친화력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났다. 코로나19와 경제난국, 남북관계 경색, 수해, 태풍 등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회의장직을 맡아 소통의 정치를 위해 분투해온 박병석 의장을 만나 2020년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소통과 협치’ 위해 달려온 2020년
소통과 협치를 중시하는 박 의장이 여당 단독 개원으로 21대 국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찌 흔들리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정치적 판단이 아닌 오로지 국회를 위해 일한다는 소신으로 결단을 내렸다. 코로나19와 경제난국, 남북관계 경색, 수해, 태풍 등 그야말로 산 넘어 태산인 상황에서 국회는 국민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 여겼다. “소통의 정치를 위해 달려온 2020년이었습니다. 정치의 기본은 소통이에요. 소통이 잘되어야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공감대가 이루어지면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것이 평소 소신이지요. 파종을 열심히 해 이제 싹이 트기 시작했어요. 이는 많은 다수의 언론에서 ‘협치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와도 궤를 같이합니다.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 당대표 월례회동, 중진의원 간담회까지 정례화했어요. 대화의 채널이 넓고 다양해졌지요.” 박 의장은 취임한 날부터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로 만났고, 심지어 야당 의원 면담 요청은 100% 수용했다. 덕분에 16대 국회 이후 20년 만에 법안 처리율이 22.3%(2020년 12월 10일 기준)로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지난 12월 2일에는 법정시한을 지키며 2021년도 예산안을 처리해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까지 여야가 합의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박 의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예산을 헌법시한 내에 처리하는 것은 2014년 이후 6년 만의 일”이라며 “21대 국회가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임무를 준수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11월 30일 여야 원내대표에게 서한을 발송해 법정시한 내에 여야 합의로 예산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당부하며 협치의 물꼬를 텄다. “여야 소통과 정책 경쟁을 통해 법안 처리율을 증가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내일을 여는 국회의 소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오로지 국민과 국익을 기준으로 국민의 신뢰를 1%라도 올릴 수 있다면 앞으로도 무엇이든 할 생각이에요. 천둥은 멈췄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어요. 해가 비출 수 있도록 더욱 소통하겠습니다.” 박 의장은 갈등으로 시작했던 21대 국회를 조금씩 화해와 협력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그의 강점인 정치적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감, 서두르지 않고 정도를 걷는 소신, 타고난 성실성과 친화력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간 까닭이다. 돌아보면, 2020년은 다양한 사회계층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 해였다. 국민적 기대가 높았던 21대 국회가 그러한 갈등을 현명하게 조율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했던 부분은 뼈아픈 대목이다.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존재할 수 없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헌법기관이에요. 국회가 사회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언론을 통해 오히려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이미지가 형성된 측면이 있어요. 또한 SNS를 통해서도 개별 의원의 게시물이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 전달된 면도 있고요. 단기간에 만들어진 국회에 대한 불신이 아닌 만큼, 이를 극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뚜벅뚜벅 나아가야지요.” 박 의장은 국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일하는 국회 TF’를 만들어 제도개선을 추진해왔으며, 정기회 마지막 날에는 ‘일하는 국회법’이 통과되었다. 지난 11월 29일에는 의장 명의로 의원들이 소속 상임위에 선임될 경우 사적 이해관계가 있으면 배제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국회를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항 속 물고기’라는 자세로 20년 공직생활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인 진정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초선 당선인들에게 손수 쓴 편지를 보내고 책을 선물하는 등 공을 들였다. 또 국회 선배로서 멘토링을 자처했다. 박 의장은 원내대표 등 선출직을 맡은 적은 없지만 정책위의장 등 입법을 다루는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당내에서 중도·온건적 성향으로 평가되며 동료 의원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계파색이 옅어 여당은 물론 야당도 아우르는 포용력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20년 동안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한 번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아 ‘깨끗한 정치인’의 대명사로 불린다. “제 정치철학 중 하나가 ‘공직자는 어항 속 물고기’라는 거예요. 1999년 서울시 정무부시장 재직 때부터 ‘24시간 누가 나를 보고 있다’는 자세를 잃지 않았어요. 그 결과 지금까지 공직자로서 금전 문제 등 한 번도 구설이나 잡음이 없었어요. 충청권에서 당적을 옮기지 않고 한 지역구에서 내리 6선이 가능했던 것 역시 주민들께서 깨끗한 정치인으로 기억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의장으로서 하는 모든 일들이 국가와 민족의 역사 진전에 부합하게 해달라고. 열심히만 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는 희망이 있는 세상, 설령 인생이 한 번 실패했다 하더라도 다시 딛고 설 수 있는 나라, 어느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꿈의 크기가 달라지지 않는 나라,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의 강을 함께 노 젓는 세상을 만들게 해달라고. 독립운동사 지속적·체계적으로 복원해야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해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후손들이 발굴해내고 기려야 합니다. 작년이 3·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어요.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뿌리이며, 임시정부 수립은 대한민국 건국의 시작입니다. 기념사업을 비롯한 여러 방법을 통해 법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 의장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앞으로도 발굴과 기록을 통해 선열들을 기리는 보훈 활동에 국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힘을 보탤 계획이다. 박 의장은 지난 11월 12일 황희 국회의원의 주최로 열린 ‘순국선열 위상 정립을 위한 국회 공청회’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조국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순국선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은 잊혀진 순국선열을 찾고 기록해서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현재 15만 명으로 추정되는 순국선열 중 보훈 혜택을 받고 있는 서훈자는 2% 수준인 3,500명 정도이고, 이 중에서 유족 보상금 수혜자는 885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공청회를 통해 헌법 전문에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담을 것, 순국선열추념관(가칭)을 조속히 건립할 것, 순국선열유족회를 공법단체로 법제화할 것 등이 주로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러한 내용뿐 아니라 순국선열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추가적인 방안들이 발굴되고 기록되는 데 있어 국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입니다.” 개헌은 정치적 쟁점 아닌 시대적 사명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급격한 변화에 직면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만큼 국회와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1987년 이후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바뀌지 못한 헌법은 2020년의 시대상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헌법뿐 아니라 정치 전반을 넘어,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것에 맞춰가기 위해서는 유연한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정치의 방식도, 지형도 모두 바뀔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지역구 유권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 했던 과거의 정치 방식이 이제는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면서 만날 수 있는 유권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갖는 무게감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되겠지요. 단순히 대면·비대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생활 방식이 쉽게 바뀔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해요. 유권자들의 생활이 바뀐다는 것은 문화와 제도도 그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회는 비대면 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등 차근차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21대 첫 정기회에서 원격영상회의를 도입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의결되기도 했다. 박 의장은 남은 임기 동안 ‘협치’라는 방향에 집중할 계획이다. 국회를 운영함에 있어 국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여야 협치가 최대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장의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이것이 곧 민생입법 등의 성과를 내는 가장 올바른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년까지 개헌, 선거법 개정, 대통령·지자체 선거 일정 조정 여부 등을 합의하지 못하면 21대 국회 역시 또 흘러갈 겁니다. 개헌은 정치적 쟁점이 아닌 시대적 사명입니다. 코로나 위기를 한 고비 넘기고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격변하는 국제 정세와 주요 우방국들의 리더십 교체로 발생하는 변화의 공간과 시간을 국익 확보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의회외교에서 역할을 해 나갈 계획이다. 남북국회회담 개최도 중요한 목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남북문제와 민족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남북 당국 차원의 대화·협력 노력도 지원하는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에 기여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