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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 한시준 제12대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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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의 가치를 국민들 가슴에 새기기 위하여 


‘독립운동’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독립정신’이 만들어갈 미래


글 | 편집부  사진 | 독립기념관·편집부


독립운동 분야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한시준 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지난 1월 22일 제12대 독립기념관장으로 취임했다. 그간 독립운동가 후손이 관장을 맡아오던 관행을 깬 파격인사다. 그런 까닭에 한 관장에겐 더 막중한 사명감이 주어진 셈이다. 독립기념관이라는 장소의 상징성에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더 올곧게 담아야 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책무. 그는 소망한다. 독립기념관을 둘러본 국민들 가슴속에 ‘우리가 독립운동으로 세워진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이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어나길…. ‘독립정신’으로 만들어갈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대한민국이 언제 세워졌을까요?”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언제 세워졌는지 몰라요. 단군이 세운 고조선부터 1910년까지 우리는 군주가 주인인 나라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독립운동을 통해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선포했어요. 민주공화제가 드디어 시작된 거죠. 독립운동 시기에 개인의 재산과 가정, 목숨까지 다 희생한 선열들 덕분에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백성이 아닌 국민으로 살게 된 겁니다. 독립기념관에 오셔서 ‘우리가 독립운동으로 세워진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1919년 4월 11일, 국민들에게 낯선 이 날짜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탄생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혹자는 ‘임시정부’라는 단어를 부각시켜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평생 독립운동 분야를 연구해온 한 관장은 논리정연하게 반박했다. 


“우리 민족이 반만년 역사 속에서 많은 나라를 세웠는데 이름이 다 달라요. 단군이 세운 고조선이 망한 후에 부여, 고구려, 고려, 조선, 대한제국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죠. 비로소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했고, 40일 만에 상해에서 독립국으로 대한민국을 세웠어요. 국가와 정부는 달라요. 국가는 변하지 않지만, 정부는 계속 바뀌죠. 문재인정부, 박근혜정부, 참여정부, 문민정부처럼 말이에요. 1919년 세워진 최초의 국가가 ‘대한민국’이었고, 당시 정부 이름이 ‘임시정부’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간단명료한 역사적 사실을 왜 제대로 가르치지 않을까. 광복 후 75년이 흘렀음에도 독립운동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적 왜곡을 바로잡는 일은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독립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펼쳐진 독립운동 

세계 유일의 독립기념관


 “예전엔 독립운동 하면 우리 혼자 일본군과 싸운 것만 부각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동남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일본이 침략한 나라들과 함께 싸웠어요.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합작 작전을 펼쳤고, 일본이 인도 버마 식민지를 공격했을 때 영국군과 함께 대일전쟁을 치렀죠.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이 새롭게 발굴되면서 드러난 사실들입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의미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요.”


한 관장은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역시 전 세계에서 유일한 독립기념관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가 팽창하고 있을 때, 지구상 80% 정도의 나라가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당시 수많은 민족들이 독립운동을 했지만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 만주, 연해주,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나라를 빼앗겼다가 되찾은 국가 중 독립운동을 연구·기록·기념하기 위해 독립기념관을 세운 나라 역시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의 독립기념관을 얘기할 때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난징대학살기념관, 모스크바전승기념관, 이스라엘 홀로코스트기념관을 언급하잖아요.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는 나라를 빼앗겨본 적이 없어요. 독립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죠. 홀로코스트기념관은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 당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기념관이고요. 우리 독립기념관과는 성격이 달라요.” 


일제강점기 전 국민이 참여한 독립운동, 세계 각지에서 펼쳐진 독립운동, 세계 유일의 독립기념관.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역사인가. 너무도 자랑스러운, 앞으로 더욱 자랑스러워해야 할 대한민국 최고의 유산이다. 한 관장은 취임 후 여러 자리에서 ‘독립정신’을 강조해왔다.   


“독립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전정신이에요. 일제강점기 때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에 협력했는데, 독립은 불가능한 일이고 일본에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일이라 생각했을 거예요. 독립운동가들에게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독립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가능에 도전했고, 결국 독립을 이루었죠. 이러한 도전정신이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이후 민주화, 세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한 관장은 독립기념관을 찾아온 국민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독립정신을 새기며 큰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개인의 독립정신이 모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만드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어진 길을 묵묵히 뜨겁게 걸어갈 생각이다. 


임시정부·광복군 연구 최고 권위자

독립운동사 한길을 묵묵히 걷다 


  한 관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명성이 높다. 1993년 발표한 학술서 『한국광복군 연구』는 국내 학계에서 처음으로 광복군 출신 생존자 인터뷰와 미발굴 사료를 집대성해 광복군의 역사적 실체를 밝혀낸 역작으로 손꼽힌다. 


1991년에는 중국 충칭(重慶), 상하이(上海), 시안(西安) 등을 찾아다니며 광복군의 흔적을 쫓았다. 광복군이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미국 OSS(CIA 전신)와 군사훈련을 벌인 중국 시안 내 장소를 밝혀냈으며, 문재인정부가 2019년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1919년 4월 13일에서 11일로 바로잡은 것도 한 관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45년 임시의정원 회의록의 관련 기록 등을 발굴해 임시정부 수립일이 4월 11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이재현 선생과 함께 광복군 제2지대가 있었던 시안으로 현장답사를 나갔어요. 세월이 지나 많이 헐리고 바뀌어서 도통 찾기가 쉽지 않아 반나절을 헤매고 다녔어요. 할 수 없이 근처 마을로 들어가서 그곳에 오래 살았던 어르신에게 물어보기로 했는데, 마침 한 분이 골목에서 나오시더니 첫마디가 ‘갈 때는 아무 소리 없이 가더니 40년 만에 아무 소식 없이 오냐’ 하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당시 2지대에서 청소해주던 분인데, 그때 2지대 대원들이 아침마다 국기 게양식 할 때 불렀던 그 노래를 부르셨죠. 비록 2지대 본부 건물은 없어졌지만 그분 덕분에 위치나마 찾을 수 있었어요. 독립운동 현장답사를 가면 울컥하고 눈물 날 때가 참 많아요.”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극적으로 보존하게 된 역사적 우연에도 한 관장이 함께했다. 1991년 12월 충칭 정부청사를 찾아갔는데, 경제개발특구로 지정되어 3개월 후 헐릴 예정이라 했다. 권력도 없는 학자들로서는 공사를 멈추게 할 방도가 없었다. 참담한 상황이었다. 마침 그곳 담당자가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일행을 불렀다. 


식사자리에서 서로 한 마디씩 하는데 당시 단장이었던 국민대 조동걸 교수가 기막힌 얘기를 했단다. “중국에 와 보니 경제발전이 눈에 보인다. 돈 버는 방법이 돈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있고, 역사를 가지고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 내년에 임시정부 청사가 헐린다는데, 청사를 복원하면 한국 사람들이 그걸 보러 여기까지 올 거다”라고. 


선열들이 도운 탓이었을까. 이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고, 임시정부 청사만 보존한 채 도시개발을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역사의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결과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독립운동사, 현대사라는 과목이 없었어요. 갑오경장, 대한제국까지만 배웠어요. 독립운동은 전혀 알지도 못했죠. 그런데 군대에서 조소앙 선생 조카를 만났어요. 제가 군대에서 책을 많이 읽으니까 그 친구가 조소앙 선생 책을 가져다주었어요. 그때만 해도 그분이 누군지, 독립운동이 뭔지 알지 못했지만 열심히 읽었어요. 제대 후엔 조소앙 선생 막냇동생인 조시원 선생 댁에 가서 독립운동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독립운동사 공부를 하게 된 겁니다.” 

이십 대부터 시작된 운명은 어언 반백년 동안 그를 이끌었다.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백범김구기념관 백범학술원 원장, 한국근현대사연구회장,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원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사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구에 혼신을 다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독립정신 

국가발전 원동력으로 재생산해야 


이제 운명의 화살은 독립기념관에 꽂혔다. 평생 연구해온 독립운동사의 의미와 가치를 국민들과 함께 나눌 차례다. 한 관장은 취임사에서 앞으로 독립기념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역사이며 독립기념관의 존재와 가치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이제는 독립기념관의 존재와 가치를 세계적으로 부각시키는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 독립정신을 재생산해 대한민국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독립기념관 전시들을 하나씩 바꿔갈 계획이다.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 안에 ‘한중 공동항전 기념관(가칭)’을 신설하는 방안도 그중 하나다. 한중 우호관계의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한편,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람객에게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의의를 알리고자 한다. 다만, 대일 관계 등에 부담이 될 가능성을 감안해 미국 OSS의 광복군 지원 내용 등을 추가해 ‘국제관’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코로나19라는 최대 위기를 맞아 새로운 도전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교육에 선제적으로 도입해 ‘내 손안의 독립기념관’ 등 신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교육격차 발생을 해소하고자 국내 역사교육 취약계층은 물론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콘텐츠(교구재)를 배포했다. 전시분야도 상설전시, 계기별 특별기획전을 사이버 전시관으로 구축했다.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웹사전 서비스를 개발하고 144명의 독립운동가 정보를 온라인상에 공개했으며, 한국광복군을 주제로 한 국외사적지 e-book을 발간해 총 40여 개 사적지를 소개했다. 덕분에 기존 방문교육 수혜인원(약 3만 명)의 3.8배에 달하는 10만 2천여 명이 지난해 독립기념관의 비대면·온라인 서비스의 수혜를 받았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가능하다고 믿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독립정신’이에요. 독립기념관은 앞으로도 이러한 ‘독립정신’을 가지고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의 도전과 혁신으로 독립운동사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와 그 속에 깃든 선열들의 독립정신이 온 국민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는 그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바야흐로 희망이 꽃피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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