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 양섭 국립서울현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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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사랑받는 호국추모공원의 가치와 품격 만든다
묘비 하나하나에 역사 숨 쉬고 있어
우리 모두 후손이란 생각 잊지 말아야
글 | 편집부
사진 | 편집부·국립서울현충원
현충일을 2주 정도 앞둔 국립서울현충원은 몹시 분주했다. 건물 외벽을 청소하고 무성한 나뭇가지를 자르고 웃자란 풀을 베는 손길들이 정성스러웠다. 눈길 가는 곳마다 아름답고 푸르렀다. 짙은 초록의 향기를 음미하며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업무로 분주한 속에서도 직원들의 태도가 여유롭고 친절했다. 담당 주무관이 예의바르게 말하길, 원장님께서 현충일 행사를 앞두고 바쁘셔서 답변서를 미리 준비하셨다 했다. 인터뷰를 빨리 끝내야 할 상황인 거다. 그런데 우리의 우려는 기우였다. 양섭 원장은 밤샘 작업하면 된다며, 한 시간 이상이나 이야기를 이어갔다. 게다가 빗길을 마다하고 직접 독립유공자 묘역까지 안내해주었다. 선열을 모시는 국립서울현충원장의 충정과 정성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였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묘비 하나하나에 마음을 기울이는 소소한 일상에서 국립서울현충원장의 책무가 시작되는 듯했다. “세상에 태어나 이십 년도 안 되는 짧은 생을 살다 가신 분들이 많아요. 이름도 유해도 없이 떠나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셨던 무후선열이나 후손이 없는 6·25전쟁 전사자 분들의 경우에는 묘역을 찾는 유가족이나 친지, 생존 전우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쓸쓸하고 외로운 묘소가 늘어가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후손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가족, 친구와 함께 서울현충원에 방문하셔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참배 드리고 감사한 마음을 되새겨 보셨으면 해요.” ‘우리 모두가 후손’이라는 말에 뭉클했다. 종종 찾아와 다정한 말벗도 되어드리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는 것,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받은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리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보훈 행정 구현 직접 발로 뛰는 현장 전문가 양섭 원장은 2019년 9월 23일 취임해 2년째 국립서울현충원을 이끌고 있다. 1990년 7급 공무원에 임용되어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국방부 군수감사담당관, 시설제도기술과장, 국유재산과장, 방위사업청 회계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국방정책, 기획, 인사, 법무, 시설, 감사, 회계 등 그야말로 안 해본 업무가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무엇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일처리가 최대 강점이며, 공직자로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행정을 펼친 이력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립서울현충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이러한 업무 방식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충혼당은 2006년 개관한 납골당인데, 국립묘지 특성상 통일성을 강조하다 보니 획일적인 느낌이 들어요. 사실 유가족 입장에서는 봉안함에 있는 내 가족을 보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공간이잖아요. 보관소 같은 분위기다 보니 유가족들의 만족도가 떨어지죠. 현재 봉안함 내부에는 유골함과 명패만 두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가족사진이나 고인의 유품, 꽃 등을 비치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어요. 추모 음악방송도 만들고 충혼당 전체 분위기를 추모공간에 걸맞게 리모델링할 계획이에요.” 이러한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양 원장은 직접 발로 뛰면서 현장조사를 했다. 민간 납골당을 두루 찾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폈다. 무엇보다 30년 공직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 마인드로 매순간 고민하고 노력했다. “서비스라는 게 받는 사람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내 입장에서 ‘이만큼 하면 되겠지’ 하는 건 서비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철학 덕분에 채 2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그는 많은 변화를 이루어 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시스템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국립서울현충원의 온라인 참배서비스, 사이버 추모관, 헌화참배 전송 서비스 등 참신한 시도는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온라인으로 참배하는 ‘사이버 추모관’에서는 유가족이 고인의 사진을 직접 올리고 헌화와 분향도 하고 추모의 글도 남길 수 있어요. 설 명절 기간에는 사이버 참배 시스템을 보완해 차례상을 올릴 수 있도록 ‘온라인 차례상 차리기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해드렸고요. 코로나19로 참배가 제한되면서 ‘참배 대행 서비스’도 새롭게 시도해 보았어요. 현충원 직원이 안장되어 계신 유공자의 묘역이나 봉안함에 직접 가서 헌화와 참배를 드리고 현장 사진을 전송해드리는 방식으로요. 유가족 분들이 사진으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며,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셨어요.” 봄비가 메마른 땅에 스며들어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하듯,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스며들어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에게 사랑받는 호국추모공원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국난극복 역사와 민족의 얼이 서린 곳 나라사랑 정신계승과 국민통합에 기여 “서울현충원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해 계신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의 추모시설로 연간 300만 명이 방문하는 민족의 성역입니다. 국내외 국가원수를 비롯해 주요인사와 보훈단체 및 학생 등 각종 단체에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참배를 드리고 있어요. 현충원의 상징인 현충탑에서 경건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참배 드리면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고 결의를 다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현충원은 국가원수부터 학생들까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열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되새기고, 통합과 화합을 약속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동시에 굴곡진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면서 국난을 극복해온 자랑스러운 민족의 얼이 서린 곳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잖아요.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혼연일체가 되어 헌신했던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국립서울현충원의 역할과 가치라고 생각해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18만 5천여 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213위, 배우자 애국지사 9위가 안장되어 있고, 임시정부요인 묘역에는 주요 직위를 역임한 임시정부요인 18위와 배우자 애국지사 3위가 있다. 오랫동안 애국지사 묘역으로 불리다가 2019년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무후선열제단에는 유해도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34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후선열제단에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웠던 분들이 많이 계세요. 유관순 열사, 홍범도 장군, 헤이그 특사 이위종·이상설 열사 등 순국선열의 이름을 마주할 때마다 그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대에 어떻게 교육하고 계승해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함께 가보시죠. 독립유공자 묘역 소나무가 아주 장관이에요.” 그는 십여 분 남짓 국립서울현충원이 걸어온 길과 주요 시설물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정성과 사명을 다해온 자부심이 느껴졌다. 마음 힘들 때 현충원 둘러보길… 선열들 삶 생각하면 희망과 용기 얻어 현충일 행사로 몹시 바쁜 그는 한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리고 독립유공자 묘역을 안내하겠다며 앞장 섰다. 밖은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 다다르니, 그의 말처럼 소나무들이 더없이 푸르고 싱그러웠다. 절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선열들의 영령과 대자연이 전하는 특별한 위로에 가슴 뭉클했다. 독립유공자를 추모하고 참배하는 합동제단인 충열대에서 묵념을 하고, 무후선열제단에 들러 분향을 했다. 모든 시설물 하나하나에 품격이 느껴졌다. 후대의 정성어린 손길을 바라보며 선열들도 흐뭇하셨으리라. “마음이 울적하고 힘들 때 현충원을 꼭 한번 둘러보세요. 내가 지금 아무리 힘들고 죽을 것 같아도 일제의 총칼 앞에서 대한독립을 외치고 6·25전쟁 때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웠던 분들에 비하겠어요. 선열들의 삶을 생각하면 힘든 시간을 견뎌낼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선열들이 남긴 고귀한 유산은 현충원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묘역 사이사이를 한참 동안 거닐었다. 신기하게도 걸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발길이 가벼워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선열들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거창한 역사의 교훈이 아니라,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꿋꿋하게 힘내서 살아가라는 위로와 응원이 아니었을까. 더없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은 봄날보다 더 아름답다. 그 이유는 직접 와봐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