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 신용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페이지 정보
본문
독립운동사 체계화와 독도 연구를 이끌어온 선구자
대한민국 발전의 뼈대와 근간은 독립정신
남북은 자주독립의 중심 굳게 세워야
신용하 교수는 ‘민족과 국가의 사회학’이 전공이다. 민족·국가·사회, 이 거대한 담론을 가슴에 품고 평생 책을 읽고 쓰고 공부하며 살아왔다. 40여 년간 서울대학교에 몸담으면서 독립운동사 연구와 독도 연구를 이끌었다. 조선총독부 행정사를 중심으로 기록된 일제강점기 역사를 독립운동사 중심으로 체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역사적 증거를 토대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독도연구보전협회, 독도학회 등 민족과 국가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힘을 보탰다. 오직 학문에만 정진해온 여든다섯 살의 노학자는 오늘도 오래전 그날처럼 책을 읽고 쓰고 공부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민족과 국가를 향한 변함없이 푸르른 열정과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실에 나가서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독서와 집필, 자료수집과 조사를 하고 있죠. 최근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어요.”
근황에 대한 설명은 간략했다. 체력적으로 힘드시지 않은지 물었더니 “전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열정으로 가득한 얼굴, 카리스마 넘치는 맑은 눈, 크고 단단한 손까지 세월이 무색했다. 1937년생보다는 1973년생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삼십여 분의 짧은 인터뷰였지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민족과 국가와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신문을 보면 아직도 피가 끓는다”고 말한 부분이 기억나 그 까닭을 물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 정의와 진리를 위해 한 길을 걸어왔던 석학의 분노에서 나라사랑의 큰마음이 읽혔다. 그 분노가 삶의 원동력이 되어 학문을 이끌고 행동하게 했으리라.
신용하 교수는 평생 연구하고 책을 쓰며 살았다. 배우고 가르치며 민족과 국가와 역사의 수레바퀴를 쉼 없이 굴렸다.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이 없다. 흔한 취미 하나 없다. 취미가 일이요, 일이 취미인 삶을 살아왔다. 시간을 아끼고 쪼개 책 한 장이라도 더 읽으려 애썼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6·25전쟁 직후여서 나라가 완전히 폐허 상태였어요. 열심히 일해 건설하지 않으면 자원도 없는 나라에 미래가 없다 생각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어요. 회사원들은 아침 8시면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했고, 저 역시 8시 전에 학교 나와서 밤 11시까지 공부하고 책을 쓰고 연구했어요. 우리 세대들은 놀 줄도 모르고 일만 할 줄 아는 세대가 됐지요. 전혀 후회는 없어요. 보람 있는 청춘을 보냈어요.”
부지런한 열정은 학문의 영역을 넓혔고, 새로운 방향을 개척했고, 수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연구와 독도 연구에 큰 획을 그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독립운동사 중심으로 체계화했고, 역사적 증거를 토대로 독도가 한국 땅임을 증명했다.
“전공이 민족과 국가의 사회학이에요. 왜 우리 민족이 분단됐는가, 그걸 연구하면 일제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럼 왜 막지 못했나. 19세기 조선왕조 시대 국력이 약해서였어요. 그렇게 해서 19세기 한국 근대민족운동사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근대사회사상사와 독립운동사 연구로 이어졌어요. 또 1905년 일제가 독도를 침탈해갔기 때문에 독도가 연구 주제 안에 포함되어 함께 공부하게 되었죠.”
학문이 가야 할 길을 이끌었고, 그는 매일매일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열정과 사명감이 발길을 재촉했기에 매순간 전력 다해 뛰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그 세월이 60년이 넘는다.
“갑오개혁 이후에는 우리나라 역사가 체계적으로 기록된 게 없었어요. 그래서 역사를 체계화하는 데 전심전력했어요. 특히 일제강점기는 조선총독부 행정사를 써왔기 때문에 윤병석, 조동걸 그리고 저도 주축이 되어 분발해서 독립운동사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역사를 체계화하는 데 하나의 역할을 했던 게 가장 보람이 있어요.”
다가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하여
신용하 교수는 1970∼80년대 윤병석·조동걸·박영석 교수 등과 함께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를 이끌었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립기념관 부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4년부터 십여 년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을 맡았었다. 『독립협회 연구』, 『한국민족독립운동사 연구』, 『백범 김구의 사상과 독립운동』, 『의병과 독립군의 무장독립운동』, 『도산 안창호 평전』 등 많은 명저들도 남겼다.
“우리나라는 독립운동을 세계적으로 가장 완강하게, 가장 활발하게 한 민족이에요. 오늘날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도 나라와 겨레의 자주독립 수호에 대한 철저한 정신, 의지, 독립정신이 강해서 그것이 바탕이 되어 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독립정신을 국민들 속에 잘 배양할 필요가 있어요. 독립정신 속에서는 동포에 대한 사랑, 공동체 정신, 동포나 나라에 대한 희생정신이 포함돼 있어요. 이런 정신도 배양해야 해요.”
민족과 국가를 평생 연구주제로 삼아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그에게 독립정신 계승의 종착점은 통일이다. 그는 누구보다 한민족의 저력을 믿고 있으며, 다가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낙관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남북분단이 열강에 의해 강요당했어요. 그래서 평화통일도 성취해야 합니다. 유일하게 우리가 통일을 아직 못했지만, 선진국으로 날아오른 민족이기 때문에 분명 해낼 수 있어요. 취약한 약소민족에 대해 협조도 하고, 우리 민족을 세계 정상의 민족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 뼈대와 근간이 독립정신이에요. 통일을 이루려면 남북이 함께 자주독립의 중심을 강하고 꿋꿋하게 세워야 해요. 미국, 중국, 일본 등 열강의 대결 속에서 남북이 희생당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통일, 통일만 외치지 말고 평화를 정착시켜서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해요. 분단 상태는 선의의 경쟁, 선의의 협력관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해온 통일방안도 제시했다.
“대한민국이 북한을 포용하면서 영세중립국으로 남북이 합의하면 통일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자유·민주·복지 체제를 갖춘 ‘동방의 스위스’처럼 되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살고 부강한 나라가 될 거예요. 만약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무력 위협이 있어도 영세무장중립국이 되면 아무도 우릴 건들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은 한국전쟁의 여파로 원수가 된 사람들, 가족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 후손들의 합리적 선택에 의하여 영세중립국이 검토되고 반드시 통일이 되리라 믿습니다.”
한국의 독도영유권은 명명백백한 진실

“정부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 못하고 있었던 것을 공동연구를 통해 증명했어요. 국가적 지원은 없었어요. 그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독립운동사도 연구하고 독도도 연구했죠. 일본 측 반발이 굉장히 강해서 일본에는 못 가요. 한번은 일본에 갔더니 ‘요경계인물’로 간주하는지 일본 경찰 두 사람이 근거리에서 붙어 다녀요. 돌아와서 왜 감시하느냐 항의했더니, 날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웃음)”
평생 독도 문제를 연구해온 신용하 교수는 한국의 독도영유권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지리적 위치로나 명백하게 한국 영토이고 과학적 실증적 증거가 매우 많아요. 가득 차요. 그런데 일본은 전혀 없어요. 일본은 침탈 야욕은 백(100)이고 증거는 영(0)인 반면, 한국은 증거가 백인데 독도를 지키려는 노력과 정책은 일본 정부보다 약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 객관적 진실을 일본이 인정하고 침탈 야욕을 버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오래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일본이 쉽게 침략 야욕을 버리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은 독도 보존을 영토주권으로 생각하고 이걸 지키기 위해 장기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세계 평화에 공헌하는 세계 정상의 자랑스러운 민족성을 기억하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경험한 민족이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고, 6·25전쟁과 분단이라는 통한의 세월 속에서도 반세기만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내며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기적을 만들었다. 신용하 교수는 그러한 기적을 만든 우리 민족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한민족의 가장 큰 장점은 교육열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거예요.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총력의 에너지가 나라와 민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왔어요. 또 자부심이 굉장히 강해요. 외국인들은 잘사는 미국, 영국, 일본 사람들을 우러러보는데 우리는 전부 미국 놈, 영국 놈 그래요. (웃음) 구한 말 어려운 시기에는 민족 문화 속에 프라이드가 강하게 나타나요.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진취성도 뛰어납니다. 예능에 탁월한 소질이 있어서 문학, 예술, 영화, 음악, 무용, 드라마 등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해요. 무엇보다 정이 많아요. 정서적인 민족이죠. 경쟁심이 상당히 있어서 지기 싫어하는 민족이에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봐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책과 논문 등의 집필을 계속할 거라는 예상된 답변이 돌아왔다.
“내 책은 어려워서 많이 안 읽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도 뜻 있는 사람은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쓰고 있어요. 나는 평생 우리 민족과 국가의 과거, 현재, 미래에 어떻게 유익한 책을 쓸까를 고민하면서 써왔기 때문에, 그러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류와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오직 학문의 길에서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쫓았던, 역사적 진실 앞에서 누구보다 강하고 꿋꿋하게 중심을 지켜왔던 스승의 담담(淡淡)한 생이 변함없이 푸르른 소나무를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