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독립운동가 열전 [2021/10] 중국군인도 벌벌 떤 여자광복군 이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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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 제2지대 여군반장으로 맹활약
수많은 남자들 물리치고 산 정상 1등에 올라
글 |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1938년에 열린 중화민국대운동회에서 이월봉 지사는 여자의 몸으로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철인 5종 경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산 정상에서 1등 국기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여자라고 내주지 않자, 이월봉 지사는 남자를 때려눕히고 국기를 가지고 내려와 1등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덩치가 좋고 보통 남자들보다 힘이 셌던 이월봉 지사의 통쾌한 일화다. 이 지사는 이국땅에서 한국광복군에 투신해 활동하다 혼기를 놓치고 광복 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정부에서는 독립운동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안타깝게도 이월봉 지사가 숨진 뒤 13년이 지난 때였다.
“고모님(이월봉 지사)은 참으로 깔끔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오실 때면 언제나 조카들 옷가지들을 말끔하게 빨아주셔서 또래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많이 샀지요. 고모님의 부지런하심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월봉(1915.2.15~1977.10.28) 지사의 조카딸인 이춘화 씨는 그렇게 고모님인 이월봉 지사를 회고했다. 이월봉 지사의 후손을 만나기 위해 2017년 12월 4일, 대구로 내려간 시각이 점심 무렵이라 우리는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이 자리에는 이월봉 지사의 아드님 이충국 씨(58)와 조카따님 이춘화 씨, 그리고 서울에서 필자와 함께 동행한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 문영숙 작가(현 이사장, 이월봉 지사의 조카 며느님) 이렇게 넷이었다.
얼큰한 아구찜을 시켜 놓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우리는 이월봉 지사의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어머님(이월봉 지사)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1938년에 열린 중화민국대운동회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운동회는 장개석이 장학량 군대에 감금된 뒤에 풀려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대회로 이 대회에서 어머니는 여자의 몸으로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지요. 이 대회는 요즘으로 말하면 철인 5종 경기와 같은 것으로 장애물 뛰어넘기, 산악 달리기 등 험난한 코스를 거쳐 산 정상에 펄럭이고 있는 중국국기를 뽑아 내려와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수많은 남성들을 물리치고 산 정상에 1등으로 올랐지요. 그러나 국기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여자가 1등으로 올라왔다고 국기를 내주지 않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그 남자를 때려눕히고 국기를 가지고 내려와 1등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충국 씨는 마치 현장을 본 것처럼 당시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덩치가 좋고 보통 남자들보다 힘이 셌던 이월봉 지사의 고향은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동천리 402번지로 이 일대에서 부농이었던 아버지 이배근(李培根)과 어머니 문근(文根) 사이의 4남매 가운데 둘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집에 일꾼을 30명이나 둘 정도의 부농이었으나 오래 경영하던 농장을 접고 상업의 길로 나가다가 잘못되어 집안은 파산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는 이월봉 지사가 고향 동천리 보통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한국광복군 입대 권유받고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승낙

고향에서 4학년을 마칠 무렵 집에 빚쟁이들이 들이 닥치자 숙부를 따라 이월봉 지사는 만주 제제할제라는 곳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시련은 시작되었다. 부모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숙부의 도움으로 낯선 곳에서 보통학교에 편입되어 1930년 12월 가까스로 졸업한 뒤 이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월봉 지사는 열다섯 살부터 중국 천진(天津)의 한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7년을 지냈다.
나라를 잃고 낯설고 물설은 남의 땅에서 말까지 자유롭지 않은 백화점 점원 노릇을 버텨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헤쳐 나갔다. 억척스럽게 생활하는 동안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가깝게 지내던 조선인 동포로부터 한국광복군에 입대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월봉 지사는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그의 나이 22세 때 일이다.
남자들 앞서는 체력으로
제2지대 여군반장 추대

그 뒤 중국 하남성의 한국청년전지공작대원이 되어 남자들과 똑같은 훈련과정을 거쳤다.
“제가 워낙 힘이 좋고 건강한 편이어서 나중에는 오히려 남자들을 앞설 정도였어. 180명이 함께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성적은 5등 이내였지.”
- 1976년 <주간경향> 2월 29일,
통권 374호, 대담
그러나 전시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1938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원으로 동료 10여 명과 황하강변에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던 이월봉 지사 일행은 그만 일본군에 포위되고 말았다.
죽음의 순간에 맞닥트렸지만 침착하게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졌다. 1939년 1월, 이월봉 지사는 중국군 중앙간부훈련소 학원반을 수료하고 대망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 여군반장이 되었다. 계급은 소위였다.
“당시 광복군에 속한 여군들은 여자라고 해서 특수한 임무가 주어지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남자와 똑같은 일을 했지요. 토치카를 파면 같이 파고, 벽돌을 나르고, 모든 힘겨운 일을 그대로 해냈지요.”
- 1976년 <주간경향> 2월 29일,
통권 374호, 대담
이월봉 지사는 1939년 9월, 서안 한국청년전시공작대입대(韓國靑年戰時工作隊入隊)를 시작으로 1940년 서안 한국광복군 제5지대(韓國光復軍 제 5支隊) 입대, 1941년 중국전시 한청반(中國戰時 韓靑班)을 수료하게 된다. 이월봉 지사가 활약한 서안은 섬서성(陝西省)의 성도(省都)로 군사 중심지이다. 이곳은 적 점령 지구에 대한 초모·선전·첩보·훈련 공작 등을 전개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이곳에 한청반(韓靑班, 한국청년간부훈련반)이 설치된 것은 제5지대 지대장인 나월환 대장에 의해서였다.
나월한 대장은 서안에 집결된 한국전지공작대 대원이 1백여 명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훈련시키고 수용할 병사(兵舍)와 이들에 대한 식량·피복·침구 등의 보급 문제에 봉착했다. 이때 우리 대원들이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단(中央戰時幹部訓練團) 제4단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호종남(胡宗南) 사령 장관에게 이 방안의 협조를 진지하게 요청하였다. 그 결과 우리 애국 청년들의 열렬한 독립정신의 호소에 큰 감명을 받은 호종남 사령 장관의 승낙을 얻어, 제4단 내에 한청반(韓靑班)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제1차적으로 50여 명의 한국 청년을 입교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월봉 지사를 비롯하여 한청반 여성 동지로는 이경녀, 안영희 등을 들 수 있고 황학수·조경환·조시원 등이 전술·역사·정신 교육을 담당하며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후 이월봉 지사는 1942년 서안 한국광복군 제2지대(韓國光復軍 第2支隊)에 편입하여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은 이듬해인 1946년 6월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부모님 등 사랑하는 가족의 일부가 북한 땅에 남아있는 데다가 광복군 시절의 동지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귀국 시에 31세였던 이월봉 지사는 혼기마저 놓쳐버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63세를 일기(1977)로 숨지기 전 남동생의 아들인 이충국 씨를 양아들로 삼아 후손이 없는 자신의 뒤를 이어가게 했다.
이국땅에서 독립운동 투신하다
혼기 놓치고 평생 독신으로
대구 시내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양아드님인 이충국 씨 집으로 옮겨 차를 마시면서 대담을 이어갔다. “제가 13세 때 일이었지요. 그땐 철이 없어 어머님의 독립운동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커가면서 어머님이 광복군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에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머님의 기일 때마다 제사를 모시면서 어머님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하시던 대한민국에서의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곤 합니다.”
이충국 씨는 그렇게 어머님을 회상했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어머니의 훈장을 내려 가슴에 꼭 안았다. 이국땅에서 독립을 위한 광복군에 투신하여 활동하다 혼기를 놓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산 이월봉 지사지만 믿음직한 양아드님이 있어 하늘나라에서라도 든든하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해마다 어머님의 제사를 잘 모시고 있다는 이야기에 코끝이 찡했다.
이월봉 지사는 독립운동의 공훈을 인정받아 1990년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 받았다.
어머니의 활동 모습이 들어있는 광복군 제2지대 앨범과 이월봉 지사의 고향인 황주군지(黃州郡誌) 등의 책자를 빌려달라는 필자에게 선뜻 자료들을 건네면서 책이 무거울 거라고 대구역까지 손수 운전하여 바래다주는 아드님과 칠순의 조카따님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씩씩한 여자광복군, 이월봉 지사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후손된 우리의 몫처럼 여겨져 귀경길의 어깨가 무거웠다.

필자 이윤옥
한국외대 일본어과 졸업, 문학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원,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찾아서』, 시와 역사로 읽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10권),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등 여성독립운동 관련 저서 19권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