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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2022/09] 이육사 시신을 거두며 맹세한 독립의 불꽃, 이병희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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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청포도’가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까닭 


맞선 보러 가는 날도 육사 유골 품에 안고 다녀


글 |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1944년 1월 11일 석방된지 5일 만인 1월 16일 이육사가 옥중에서 죽었다는 연락을 간수로부터 듣고 달려가 유품과 사체 수습을 이병희 지사가 맡게 된다. 당시 육사의 시신을 화장하여 가족에게 넘겨줄 때까지 유골 단지를 품에 안고 다녔으며 혹시 일제가 훼손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서 심지어는 맞선을 보러 가는 날도 육사의 유골을 품에 안고 나갔다고 했다. ‘광야’ ‘청포도’ 같은 육사의 주옥같은 시는 이병희 지사가 없었더라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경성감옥 담쟁이 

서로 손잡고 올라가는 여름

요즘 아이들 밀랍인형 

고문실에 멈춰서 재잘대지만 

차디찬 시멘트 날바닥 거쳐 간

독립투사 그 얼마더냐


지금은 공부보다 

나라 위해 일하라던

아버지 말씀 따라 

일본인 방적공장 들어가

오백 명 종업원 일깨운 

항일투쟁의 길


밀폐된 감옥 속에서 

고춧가루 코에 넣고 

전기로 살 태우던 일제 순사들

잡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 죽어라

동지를 팔아먹지 마라 

결코 팔아먹지 마라

혼절 속에 들려오던 

아버님 말씀 새기던 나날  


광야의 육사도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갔으리

뼈 삭는 아픔 

숯 검댕이 영혼 부여잡으면서도

그러나 결코 비굴치 않았으리


먼데 불빛처럼 들려오는 

첫닭 우는 소리를 

어찌 육사 혼자 들었으랴.



위는 필자가 이병희(李丙禧, 1918.1.14.~2012.8.2.) 지사를 떠올리며 쓴 시다. 그 시절,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들어가면 으레 참혹한 고문이 기다렸는데, 고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동지들의 이름’을 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이병희 지사 아버님은 독립운동하는 딸에게 ‘잡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 죽어라, 동지를 팔아먹지 마라 결코 팔아먹지 마라’고 신신당부의 말씀을 건넸다.

필자가 이병희 지사를 만나러 부평 갈산동에 있는 <사랑마루요양원>에 찾아갔던 날은 2011년 7월 19일로 그날은 막바지 장맛비가 쏟아져 우산을 써도 바짓가랑이가 젖을 만큼 강하게 퍼부어대고 있었다. ‘사랑은 마주 보며 이루어진다’라는 예쁜 이름의 사랑마루 요양원 4층 창가 침대에서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던 이병희 지사는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듯 몸이 많이 수척해 보였다. 그러나 정신만은 새벽녘 맑은 별처럼 또렷했다. 이병희 지사는 필자가 내민 명함의 작은 글씨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또렷하게 읽어 내려가면서 ‘돋보기 없이 글을 읽는다’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1918년생이며 95살이라는 것과 칠십여 년 전의 항일독립운동 이야기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씀해주시는 모습이 마치 지리산 도인을 만난 듯했다.

요양원 방문 전에 며느님과 나눈 전화 통화에서 “어머님(이병희 지사)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간혹 앞뒤가 안 맞을 때도 있을 겁니다”라며 자신들이 모셔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아 요양원에 계시다면서 상냥한 목소리로 이병희 지사님의 여러 근황을 알려주었다. 

북경 건너가 의열단 가입
문서 전달하는 연락책 맡아

이병희 지사는 1918년 1월 14일 서울 봉익동 29번지(당시 경기도 경성부 봉익동)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원식(李元植,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은 비밀결사 조직인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안희제, 남형우, 윤세복, 김동삼, 신팔균 등의 독립투사들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아버지 이경식(李京植,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 역시 1925년 9월 대구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암살단 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어린시절부터 민족의식이 투철한 집안에서 자랐다.

이병희 지사는 열다섯 살에 서울 동덕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여자상업학교(현 서울여상 전신)에 다니다 중퇴하였다. 경성여상은 1926년 구한말 참정대신이었던 한규설이 여성을 위해 세운 최초의 실업학교로 이곳을 졸업하면 일본기업이나 은행 등에 취직할 기회가 많았지만 평소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공부보다 나라를 위하는 일에 힘쓰라’는 말을 따르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종연방적주식회사(鍾淵紡績株式會社)에 여공으로 들어갔다. 당시 방적공장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종연방적 외에도 동양방적, 대일본방적, 경성방직 등이 설립되어 수많은 여공의 일손이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1930년대 여공 노동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는데 방적·고무·식료품공업에서 두드러졌다. 1931년 말 방적공업에서 전체 노동자(10인 이상 공장) 중 여성노동자의 비율은 20.7%(동일업종 전체에서 78.8%), 전체 여성노동자의 59.0%이었으며 특히 방적공장 여공 중 15세 이하 여공만도 24.2%를 차지하던 때였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임금인상은 물론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 곧 일본인 남성 감독에 의한 폭행·구타·희롱·강간 등에 반대 투쟁은 물론 봉건 허례 타파, 인신 매매금지, 공창 금지, 미성년 남녀의 결혼 금지, 여성 청소년에 대한 차별철폐와 같은 여성의 노동문제에까지 접근하게 되었고 이러한 노동운동은 독립운동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1936년, 이병희 지사는 동료 김희성, 박인선 등 여성동지들을 모아 노동운동을 펼치다 일경에 체포되어 1937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으로 2년 4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출옥 후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끊임없는 감시대상이 되어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그러자 이병희 지사는 1940년, 북경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드는데 의열단 가입이 그것이다. 의열단에서 이병희 지사는 동지 박시목·박봉필 등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아 활동하던 중 1943년, 북경으로 건너온 이육사와 만난다. 이육사는 집안의 친척 오라버니였다. 그러나 그해 9월 일경에 잡혀 이육사와 함께 이병희 지사는 북경 감옥에 구금되었다. 하지만 이병희 지사가 1944년 1월 11일 석방되기가 무섭게 5일 만인 1월 16일 이육사가 옥중에서 죽었다는 연락을 간수로부터 듣고 달려가 유품과 사체 수습을 이병희 애국지사가 맡게 된다.

“그날 형무소 간수로부터 육사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어. 저녁 5시가 되어 달려갔더니 코에서 거품과 피가 나오는 거야. 아무래도 고문으로 죽은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이병희 지사는 자신이 출옥할 때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증언했다. 당시 이병희 지사는 육사의 시신을 화장하여 가족에게 넘겨줄 때까지 유골 단지를 품에 안고 다녔으며 혹시 일제가 훼손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서 심지어는 맞선을 보러 가는 날도 육사의 유골을 품에 안고 나갔다고 했다.

‘광야’ ‘청포도’ 같은 육사의 주옥같은 시는 이병희 지사가 없었더라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병희 지사는 지난 50여 년간 자신의 독립운동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이른바 ‘사회주의계열’ 여성독립운동가로 낙인 찍혀 조국 광복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그늘진 곳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병희 지사는 1996년에 가서야 겨우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되는데 이렇게 숨죽이며 살았던 여성 애국지사로는 이효정 지사도 있다. 이효정(李孝貞, 2006. 건국포장) 지사는 이병희 지사의 친정 조카다. 

“젊은이들이 독립운동 정신을 잊지 않고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이병희 지사를 찾아뵙고 나오려는데 구순의 애국지사는 푸른 실핏줄이 또렷한 앙상한 손으로 필자의 손을 꼭 쥐고는 “나도 젊었을 때 화장을 했으면 예뻤을 거야”라고 하시면서 “젊은이들이 독립운동 정신을 잊지 않고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라는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았다. 이병희 지사는 필자가 찾아뵌 지 1년 뒤 안타깝게도 2012년 8월 2일,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 별세하셨다. 요양원에 찾아갔을 때 곱게 색칠해 그린 예쁜 꽃을 보여주면서 소녀처럼 해맑게 웃으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필자 이윤옥
한국외대 일본어과 졸업, 문학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원,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찾아서』, 시와 역사로 읽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10권),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등 여성독립운동 관련 저서 19권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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