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독립운동가 열전 [2022/10] 일제의 여공 착취에 항거한 오뚝이, 이효정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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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넘어 시 창작에 몰두해 시집 두 권 남기고 떠나다
먼 젊음이 이미 다짐해 둔 마음의 약속
글 |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효정 지사는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는데 1933년 9월 21일, 종연방적[鐘紡] 경성제사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나자, 이재유의 지도를 받아 여직공을 계몽하여 총파업을 주도하였다. 광복 후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찍혀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다. 요시찰인물이 된 이효정 지사는 수시로 사찰기관에 연행돼 고문과 취조를 당했다. 칠순이 넘어서 시 창작에 몰두하며 시름을 달랬는데 『여든을 살면서』와 『회상』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남기고 97세로 생을 마감했다.
나라가 없는 판에 시험이 다 무엇이냐
백지동맹 앞장서던 겁 없는 열여섯 소녀
광주학생 만세 함성 듣고
피 끓어 떨치고 일어선 종로거리 만세운동
경성트로이카 열혈 청년들과
노동자 권리 찾다 고등계형사에 잡혀
갖은 고초 당했어도 의연한 자세
죽음을 불사한 민족차별 철폐 운동
후회는 없어
폐병 견뎌가며 쟁취한 해방된 공간에서
안락을 구걸한 적 없다마는
사회주의 남편 빨갱이로 몰려 숨죽여 살던 삶
어린 삼남매 부여잡고
떠돌던 시절을 더는 묻지 말라
영혼 떠나버린 빈 껍질 홀로 추슬러
마산 딸네 집 허름한 뜨락의
이름 없는 들꽃을 사랑하다
두 권 시집 남기고 홀연히 떠난 자리
오늘도 목백일홍 저 혼자 외롭게 피어있네.
좌측의 시는 필자가 이효정(李孝貞, 1913~2010, 2006년 건국포장) 지사의 삶을 돌아보며 지은 시다. 이효정 지사는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 때,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급우들과 만세 시위에 참여하다가 종로경찰서에 구속되었으며 이어서 3학년 때는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을 주도해 무기정학을 당했다.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는데 1933년 9월 21일, 종연방적[鐘紡] 경성제사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나자, 이효정 지사는 이재유의 지도를 받아 여직공을 계몽하여 총파업을 주도하였다. 이 시기에 여성노동자가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방적·고무·식료품공업이 주종을 이뤘다. 1931년 말 방적공업에서 전체 노동자(10인 이상 공장) 중 여성노동자의 비율은 20.7%(동일업종 전체에서 78.8%), 전체 여성노동자의 59.0%, 방적여공 중 15세 이하 소녀여공은 24.2%에 달했다.
노동조합 파업 주도 항일의식 고취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 치러
이효정 지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한 이재유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독립투사로, 1933년 8월, 김삼룡, 변홍대, 안병춘 등과 이른바 ‘경성트로이카’를 결성하여 1935년 ‘조선공산당재건경성준비그룹’을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36년 12월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던 인물이다. 이재유는 출옥 후 종래의 파벌에 의한 운동을 배격하고 조선공산당재건을 위한 ‘경성트로이카’를 조직하여 조선일보사를 통한 언론활동, 공장중심 노동조합 조직, 지방별 농민조합 조직, 독서회를 통한 학생운동 지도 등 부문별 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기반을 조성하고 있었고 이효정 지사는 이들과 함께 독립운동 반열에 섰다.
이효정 지사는 광복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남편 박두복 선생이 납북되자 2남 1녀와 함께 남한에 남아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찍힌 채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다. 요시찰인물이 된 이효정 지사는 수시로 사찰기관에 연행돼 고문과 취조를 당했다. 영장 없이 끌려가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고 고문으로 팔목이 부러지는 장애를 입었을뿐 아니라 억울한 옥살이도 감수해야 했다. 1980년대 ‘6.10 민주항쟁’으로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뤄지자 이효정 지사에 대한 사찰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칠순 넘어 시 창작에 몰두하며 시름 달래
두 권의 시집 남기고 97세의 생을 마감

내 영혼 떠나버린 빈 껍질/ 활활 불태워/ 한 점 재라도 남기기 싫은 심정이지만/ 이 세상 어디에라도/ 꼭 쓰일 데가 있다면/ 주저 없이 바치리라/ 먼 젊음이 이미 다짐해 둔 마음의 약속이었느니.– 이효정 ‘약속’ 『여든을 살면서』 수록
이는 독립운동가 이효정 지사의 철학과 신념이 잘 드러나는 시다. 이육사의 시신을 거둔 이병희(1996년 애족장) 지사의 친정 집안 조카인 이효정 지사는 칠순이 넘어서 시 창작에 몰두하며 시름을 달랬는데 『여든을 살면서』와 『회상』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남기고 97세로 생을 마감했다. 1930년대 경성에서 일제의 착취에 저항하며 궁극적인 독립을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경성 트로이카』를 쓴 작가 안재성 씨는 이효정 지사를 직접 만나본 느낌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2018년 6월 8일, 이효정 지사의 아드님인 박진수 화백은 서울 효자동의 한 화랑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필자도 찾아가 축하하는 자리에서 박진수 화백은 “나에게 있어 그림은 억압과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료로부터의 해방, 색체로부터의 해방, 보이지 않는 끈에 얽혀있는 것으로부터의 해방, 내게 있어 그린다는 행위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날 나는 그가 그린 <밀다> 라는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부동자세로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 그림 속에는 독립투사의 삶을 산 어머니와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낸 모자(母子)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국외대 일본어과 졸업, 문학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원,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찾아서』, 시와 역사로 읽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10권),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등 여성독립운동 관련 저서 19권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