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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6.25영웅 [2021/01] 김갑태 대한민국 육군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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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전투지휘로 748고지 탈환 성공   

맹렬히 돌격해 ‘피의 고지’ 지켜내다 


글 │ 국가보훈처 제공


김갑태 육군 중령은 6·25전쟁 당시 1952년 10월 육군 3사단의 전초기지였으나, 적에 의해 일시 피탈당한 피의 고지(748고지) 탈환을 위한 기습 공격에서 격전을 벌이다 포탄 파편을 맞고 쓰러져 3일 만에 전사하였다. 


  깁갑태 중령은 부산에서 출생하여 1949년 3월 육군사관학교 8기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1951년 강원 한석산·가리봉 전투 등에 참여하여 공적을 세웠다.


1952년 4월 육군 제3사단 22연대 1대대 1중대장으로 부임하여 강원 인제 서화 북방 등 지역의 방어 임무에 투입되었다.

 

1중대장 겸 1대대장 대리 임무를 부여받은 김갑태 중령은 1952년 10월 2일 당시 3사단의 전초 기지였으나, 적에 의해 일시 빼앗긴 강원도 인제 피의 고지(748고지) 탈환을 위해 격전을 벌였다. 당시 우두산 일대의 748고지(피의 고지)와 572고지(독수리 고지)는 이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단의 주저항선까지 위협받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서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빼앗긴 748고지 탈환을 위해 2개 중대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더 이상의 전진이 어렵게 되자 예비병력인 1개 중대를 추가로 투입하고 선두에서 지휘하며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고지 탈환을 눈앞에 두고 김갑태 중령이 적이 쏜 포탄의 파편을 맞고 쓰러졌는데, 이를 목도한 전 대대원들은 더욱 맹렬하게 돌격하여, 마침내 피의 고지를 성공적으로 탈환했다.


김갑태 중령은 후송된 지 3일 만인 1952년 10월 4일 전사하였다. 정부는 탁월한 전투지휘로 고지탈환에 원동력이 된 김갑태 대위의 공훈을 기려 2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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