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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 겨레 앞에선 그대, 순국선열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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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 우리의 역사 바로 세우기 (3)


보훈정책 제대로 실현될 때

진정한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


글  |  이종정(한양대 정부혁신정책연구소 소장, 전 보훈처 차장) 


‘국가보훈’이란 국가를 하나로 단결시키고 세계화 속에서 민족의 안보와 직결되는 기본 국정과제이자 국민적 양심이기도 하다. 선진국일수록 국가보훈은 정정당당하고 객관적이며 명예로운 국가 보훈 보상을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집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훈정책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처럼 나라가 위급하거나 어려울 때 전 국민이 애국·애족하는 마음으로 자발 헌신하는 국가관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요즘 세상은 온통 코로나바이러스 극복 문제로 뒤숭숭 하기가 이를 때 없다. 오죽하면 의료전쟁이나 바이러스와의 전쟁 얘기가 나올까. 세계 각 나라별로 다양한 반응을 보이지만, 그 중에서도 자국민 보호를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외국인들의 출입국을 단속하는 게 가장 먼저 눈에 뜨인다. 외국인들의 출입국을 거부하고 자국민은 우선해서 입국시킨다. 또한 우리나라의 해외 유학생이나 교민들이 서둘러 귀국하는가 하면, 귀국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도 TV화면을 통해 보게 된다.  

어쨌건 이번 바이러스사태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나라의 존재를 새삼스레 느낀다. 물과 공기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있기에 평소에는 존재감이나 그 고마움에 대하여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없어지면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되고 그 때서야 비로소 귀중함을 깨닫게 된다. 국가의 존재가 이러하다. 평소 정치권에서 여야가 다투고 부정부패한 뉴스나 나오고 할 때는 정부라는 게 뭔지,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처럼 위기가 닥칠 때는 어쩔 수 없는 국가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과 후손들의 눈물

국가보훈업무에 30여 년간 종사하면서 실현코자 했던 보훈사업은 국가 즉 대한민국을 있게 하는 데 기여하고, 희생하였던 분들을 돌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일신의 한 몸은 물론 가정과 친척을 모두 버리고, 오직 나라 하나만을 염두에 두고 살아오셨던 분들에 대한 예우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순국선열은 그 단어의 정의에서부터 일제의 국권상실 시기에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하시다가 그 현장에서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던 선열들을 일컫는다. 그 분들이 희생을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는가? 풍찬노숙하며 이역만리 타향에서 그리운 가족을 그리면서 눈을 감으신 분들의 한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며 후손들의 곤궁한 생활상들은 어떠하였을까?

보훈사업의 현장에 있을 때 여러 가지 곤혹스런 일 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잊혀 지지 않는 사건들이 있다. 그 중 북만주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손분이 이런저런 주선을 통해 어렵게 우리나라에 들어와 국가보훈처에 와보니, 훈장증 한 장을 주고 그만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분하고 원통한 심정은 토로한 사건이 있었다. 중국에서 서울까지 오기까지 많은 경비를 사용하며 왔고, 정부에서 인정한 만큼 큰 부상과 생계지원 등 많은 기대를 안고 왔는데, 훈장과 증서에 부상으로 시계 하나 주고 그만이니 돌아갈 여비도 없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심정이더라나. 

언론계에 계시는 분으로부터 그 사연을 전해 듣고 보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그 유족 분을 새로 보훈처 청사로 들어오시게 해서 정식으로 훈장 전수식을 거행하였고, 기관운영비에서 일부를 염출하고 광복회 지원금 등을 모아서 약간의 금액을 마련하여 당장 경비에 보태어 쓰게 하고, 국내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일자리를 주선하여 귀국 경비를 마련하고 이후 국내에서 자리 잡고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되도록 조치하였던 기억이 난다.

다른 에피소드로는 지방청장 시절에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훈장증을 전수할 때였다. 지방청 회의실에서 나름대로 최대한 엄정한 전수식을 한 후 참석한 유족 분들과 조촐한 오찬을 함께하면서 보훈혜택에 대한 안내나 국후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유족으로 등록 되는 분들께는 보훈연금과 다른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독립운동 초기단계에서 순국하신 경우 자손들이 증손자대에 내려온 유족들에게는 보훈 혜택은 이른바 그림의 떡이었다. 지방청장으로서도 뭐라 말로 위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유족 분 말씀이 “산업훈장을 받으면 상금은 물론이고 세무조사를 몇 년간 면제해 주는 등의 실질적인 혜택이 있는데 선조들의 목숨 값이라 할 수 있는 건국훈장을 수여하면서 훈장 증서와 메달, 그리고 부상으로 시계 하나 정도에 불과하니 도무지 형평에 맞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보훈정책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순국선열의 자손이 증손자에 이를 경우가 많은데 국가보훈법령에 의한 제도적인 지원은 안되더라도, 일시금 지급을 통해 최소한 일가친척들이 조상의 희생과 업적에 대해 기리는 집안 잔치를 베풀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정책 건의를 하였던 기억이 난다. 국가 행정의 우선순위가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순국선열들과 그 후예들에게도 실질적 보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어왔지만 그 이후 2000년 초반까지도 이러한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던 것 같다. 

솔직히 보훈정책을 입안하는 정책부서에서 대부분의 공직 생활을 하면서 독립유공자나 국가유공자의 경우 그 후손에게 어느 대까지 보훈혜택을 드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친 적이 많았다. 정해진 틀대로 라면, 국가유공자의 경우 본인과 자식에게, 애국지사나 순국선열의 경우 손·자녀 대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유로 2000년대 이후에 독립유공자로 비로소 인정받는 순국선열의 경우 후손들이 손·자녀 대를 넘어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명예만 드리고, 그 분들의 생활상을 외면한다면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의문도 든다. 그렇다고 3대 4대 내려가며 국가가  계속 지원해야 하는가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장증서 수여 하나만으로 끝내는 것은 합당한 예우와 보상을 하는 옳은 제도는 더욱 아니다. 일제 후기에 독립운동 활동한 관계로 유공자 본인과 자녀, 그리고 손·자녀까지 보훈혜택이 주어지는 집안과 비교하면 더욱 형평이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그 순국선열의 집안에 일정기간 이상의 보훈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여진다. 아울러 자손의 대가 3, 4대로 이어져 오면 자손의 숫자도 많아지고, 그분들 중 살림살이에서도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 할 것이다. 최근 정부가 후손의 범위를 수직적으로 증손자까지, 또한 방계 후손의 경우 생활상을 고려하여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한 것은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훈처를 떠난 지도 이미 10년이 넘어선 지금 되돌아보면, 1980, 90년대에는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기 위해 독립운동사를 각론까지 세부적으로 정리하는 일에다가, 그와 더불어 발굴되는 독립유공자를 포상하고, 그 후손들을 유족으로 등록받아 지원하는 일, 또한 1990년대 이후 중러수교가 이루어지고 해외 거주하던 후손들을 찾아서, 영주귀국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했고, 무엇보다도 3. 4대에 이르는 순국선열과의 후손을 확인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가슴아픈 사연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2000년대 이후는 독립유공자의 범위를 포장자 표창자까지 확대하도록 기준을 완화하는 제도정비를 해왔다. 국외 거주하는 후손들과의 네트워크 유지 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내외에서 31절, 광복절, 순국선열의 날 등 국가기념일 행사는 물론이고, 각종 독립운동기념일 마다 크고 작은 행사를 하고, 그 분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부대사업들도 개발해 왔다. 


순국선열 정신, 반드시 계승하고 배워야할 정신적 덕목 

역대 정부마다 국가보훈처의 가장 큰 과업으로 내려오는 안중근 의사님 유해발굴사업과 관련된 일이다. 우리가 여순감옥 현장에서 유해를 발견할 경우에 대비해서 후손과의 DNA 확인 작업이 필요해서 미국거주 후손 분께 협조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정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유족 확인 작업을 도와 달라고 하느냐”고 거절을 당해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독립유공자 가계 출신인 보훈처장들의 설득 노력도 있었고, 그 분이 안중근의사기념관 재건축과정을 와서 보고는 마음을 돌리셔서 적극적인 협조를 받았다고 전해 들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겼다. 

우리 보훈정책 중 순국선열에 대한 정책들은 무엇보다도 그분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귀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그 유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적절한 보상과 예우 등의 지원책들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순국선열의 정신이야 말로 우리민족의 ‘얼과 혼’이며, 민족정기라는 점을 되새기고자 한다. ‘나라가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민족정기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다시 나라를 찾을 수 있고 민족의 유구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던 선열들의 정신을 떠올리면서, <순국정신>은 정의의 정신이며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반드시 계승하고 배워야할 정신적 덕목임을 강조해 본다. 그동안 유족들의 숙원사항이었던 순국선열추념관 건립, 순국선열 추모제전의 확대 거행, 유족들에 대한 보상 확대 등의 시책들이 하나씩 실현되어 왔으나 아직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러한 보훈정책들이 제대로 실현될 때, 비로소 국민정신이 바로서고 우리 대한민국이 21세기 세계강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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