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 Theme.2 그들은 왜 한국의 독립을 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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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의 호소에 대한 서구 외국인들의 응답
인류 보편적 가치 추구
불의한 상황에 분노하며 진정한 ‘정의’ 보여줘
글 | 이명화(국가보훈처 연구원)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한국민은 ‘정의’와 ‘인도’의 인류 보편의 가치를 주장하며 독립운동 현장의 현지인들에게 당당히 외쳤다. 제국주의 시대, 한국민의 호소는 번번이 외면당하였고 국제사회는 냉혹하였다. 한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전 세계를 향해 인간의 양심과 자유와 정의, 그리고 인류애라는 보편적 대의를 호소하였고 그 응답이 기독교인들과 언론인,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국민에게 진정한 용기와 정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외국인들이 늘어갔다. 한국의 독립운동과는 별반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서구의 외국인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의 독립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의 출발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서양인 중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비롯한 종교인들의 활약과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한 각국의 한국친우회 회원들의 활약이 대표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지구상에는 한때 번영했으나 다른 민족과 혼혈되거나 사라져간 종족들이 많다. 한국민은 일제 식민지통치 시대에 나라 없는 망국민이 되어 생존을 위해 만주, 연해주, 미주로 떠돌아다니며 전쟁과 폭압적 통치와 인종 및 민족차별을 당하고, 수탈로 인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배척과 멸시, 혐오와 편견의 대상으로 수난의 시대를 보냈다. 그리고 인종, 민족, 이데올로기 등 인류사회가 직면하는 온갖 문제에 시달리며 점차 강인한 내면을 키워왔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한국민은 ‘정의’와 ‘인도’의 인류 보편의 가치를 주장하며 독립운동 현장의 현지인들에게 당당히 외쳤다. 그네들이 정의롭다면 한국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한국독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돈독한 협력관계를 만들어내고자 힘썼다. 전 세계 열강들에게 일본이 어떻게 한국을 침략했는지 폭로를 멈추지 않았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이 조만간 세계평화를 위협할 것임을 예언하고 경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군사 및 경제 부국이며 문명국임을 자처하는 세계 열강에게 시종일관 당신들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를 힐책하고 정의롭다면 한국민의 호소에 귀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하였다.
제국주의 시대, 한국민의 호소는 번번이 외면당하였고 국제사회는 냉혹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된 이래 한국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고 국제적인 승인 받고자 했지만 그 어떤 제국주의 열강들의 지지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전 세계를 향해 인간의 양심과 자유와 정의, 그리고 인류애라는 보편적 대의를 호소하였고 그 응답이 기독교인들과 언론인,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한국민에게 진정한 용기와 정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외국인들이 늘어갔다.
기독교 선교사를 비롯한 종교인들의 활약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한국 독립을 지원한 외국인들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고 있다. 이들 외국인 독립유공자들 중에는 중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영국인, 캐나다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국적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 중국인들의 한국 독립 지원은 중국 또한 일본의 침략에 놓인 위기 상황에서 중국 땅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한인독립운동가들과 반일연대동맹을 맺어 공동으로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고자 한 실리적인 계산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한국의 독립운동과는 별반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서구의 외국인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의 독립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의 출발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서양인 중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비롯한 종교인들의 활약과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한 각국의 한국친우회 회원들의 활약이 대표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엽에 조선에 온 선교인들은 근대의 길목에 들어선 한국사회를 크게 변화시켜 주었다. 당시 한국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비기독교 지역과 마찬가지로 문화와 문명이 없는 미개한 곳, 우상을 섬기는 곳으로 구원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들은 한국사회에 근대 서양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마련해 주어 낡은 봉건사회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독교사상과 자유사상을 전파해 주었다. 학교와 교회를 자치 운영할 수 있는 방법도 열어 주었으며, 현대 병원 제도와 서양 의술을 소개하여 많은 의료적 문명 혜택을 베풀었다.
선교본부로부터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을 지켜줄 것을 언제나 요구받았던 선교사 중에는 철저히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며 한국 민족운동에 대해 지지를 표하기보다는 전교활동에만 전력한 이들도 많다. 그러나 또한 많은 선교사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간도와 시베리아에까지 가서 한국 민중을 상대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이들은 일제의 부당한 통치와 일본인들의 불법행위를 목도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불쌍한 한국민들이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약자이며 순결한 한국인 편에 서라는 주님의 응답을 받았다.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활약한 한국 독립운동은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와 평화, 인류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되찾고자 하는 정의로운 운동이었음이 외국인들의 활동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함경도와 북간도와 시베리아지역이 그들의 복음과 교육, 의료선교의 대상지였다. 북간도 용정 지역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선교사들이 함경도 지역인 원산, 함흥, 성진, 회령, 원산 등지와 북간도 용정을 오가며 복음과 교육, 그리고 의료선교에 전력하며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모범적인 신앙공동체를 이루었으며 북간도 지역은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한국 독립운동의 메카가 되었다.

미주와 유럽에서 ‘한국친우회’ 결성
미주와 유럽에서는 ‘한국친우회’와 같은 비정치적 민간 차원의 조직이 결성되었다. 정계·언론계·학계 및 종교계 인사들에 의해 조직된 한국친우회는 필라델피아에서 조직된 이래 미국 각지에서 조직되어 한국민의 독립 열망을 전파하고 일제 만행을 규탄하였다. 이들 외국인 친우들은 국경의 벽을 넘어 한국민과 우호 관계를 맺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선전 홍보하고 임시정부의 승인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국제연맹과 미국 의회 등에서 한국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외국인들 중에서 피치 일가는 2대에 걸쳐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아버지인 조지 필드 피치(George Field Fitch)와 아들 조지 애쉬모어 피치(George Ashmore Fitch), 애쉬모어의 부인 제랄딘(Geraldine Townsend Fitch) 모두 상하이 한인 기독교인들과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음양으로 후원하였다. 아들 피치 부부는 체포 위기에 몰린 김구를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켜 상하이를 벗어나 무사히 자싱(嘉興)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1937년 남경 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국제안전지대를 설정하여 학살에 처한 중국인들을 구제하였다.
홍익인간과 독립운동이 추구한 인류공영
한국인의 고대 사상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정신이 있다. 독립투쟁 과정에서 좌우익의 모든 독립운동 진영은 독립을 찾은 후에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제 한국민은 역사상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은 후예답게 국가건설의 꿈을 이루었고 우리의 힘으로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

한국인은 ‘정의’에 대해 관심이 높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를 묻곤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에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함은 우리 국민이라면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인 대한민국에 충성할 의무가 있음을 선언하였다. 국민이 충성을 다하는 이 대한민국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여야 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소중한 가치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우리와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준 정의롭고 공정한 이들의 도움으로 한국은 6·25전쟁 당시 지구촌 최하위 빈국에서 이제는 세계 10위의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 그 저력의 바탕에는 독립운동 시기에 자신과 인류를 향해 우리는 자유롭고 정의로운가를 묻고 성찰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도산안창호기념관 초빙연구원과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서훈공적심사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국가보훈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 『도산 안창호의 독립운동과 통일노선』, 『김규식의 생애와 민족운동』, 『최광옥의 삶과 위대한 유산』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