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 Theme.3 우리가 기억해야 할 외국인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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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략에 항거하며 한국 도운 이방인들
독립운동 생생하게 증언
적극적 지지와 성원 보내 내란죄 체포·옥사(獄死)도
글 | 홍선표(나라역사연구소 소장)
일본의 침략과 압제로부터 항거하며 독립하기 위한 투쟁은 한국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보편적인 인류의 양심을 가진 외국인들 가운데는 한국 독립운동이 가진 참뜻을 깨닫고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인 헐버트는 대한제국시기 외국인 최초로 고종황제의 특사로 임명되어 한국의 외교주권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며, 캐나다인 멕켄지는 한국에서 일어난 3·1운동에 크게 감명받아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을 출판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 영국인 조지 쇼우는 중국 단동에 이륭양행을 운영하며 수많은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거나 편의를 제공했다. 중국인 진과부는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며 임정 활동을 도왔다. 일본인 후세 다쓰지와 가네코 후미코는 한국을 위해 목숨 건 투쟁을 벌였다.
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야 하는가

일본의 침략과 압제로부터 항거하며 독립하기 위한 투쟁은 한국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한국 독립운동은 지리적으로 한반도를 비롯해 러시아, 중국 만주와 본토, 일본, 미주(하와이, 미국 본토, 멕시코, 쿠바), 유럽 등 전 세계 어디서든 한국인들이 있는 곳이면 일어났다. 독립운동 참가자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 뿐만이 아니었고 한국과 한국민족을 동정하고 지지하는 모든 외국인들까지도 확산되었다. 이로 볼 때 전 세계에서 일어난 한국 독립운동을 한국인들에게만 초점을 두고 천착하려 한다는 것은 한국 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한국 독립운동은 독립과 독립된 자주국가 건설이라는 한국인의 민족적 과제로만 국한해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에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인권의 가치가 엄중히 내재되어 있다. 이 같은 가치와 이념 때문에 보편적인 인류의 양심을 가진 외국인들 가운데는 한국 독립운동이 가진 참뜻을 깨닫고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억하고 선양해야 할 외국인 독립운동가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어느 한 명 한 명도 소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한국인들에게 소중하며, 항상 기억하고 선양해야 할 분들이다. 하지만 지면의 한계상 이들 모두를 일일이 다 언급할 수 없는 사정임을 감안해 어쩔 수 없이 몇몇 분들만 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소개하지 않은 분들이라고 해서 지면으로 소개하는 분들보다 덜 위대하거나 덜 기억해야 할 분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독립을 위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은 우리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똑같이 동등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한결같이 이들 모두를 존경하고 늘 기억하고 선양해야 할 분들이라는 점에서 결코 어떤 차별이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오해 없이 받아주길 바란다.

조선 말부터 한국 땅에 와서 교육자로, 선교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주권과 독립을 도운 외국인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중 한 분은 미국인 헐버트(H. B. Hulbert)이다. 헐버트는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편찬하면서 한글 사랑에 빠져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렸고, 한국인의 혼이 담긴 아리랑에 서양 음계를 붙여 널리 알림으로써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또 『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라는 역사서를 저술해 한국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린 역사가이기도 했다. 헐버트는 대한제국시기 외국인 최초로 고종황제의 특사로 임명되어 한국의 외교주권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란 점에서 여타 다른 외국인 독립운동가들과 구별된다.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을 가장 생생하게 목도하고 이를 널리 알린 사람은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 멕켄지(Frederick A. McKenzie)다. 그는 러일전쟁의 종군기자로 활동한 바 있고 1907년 일본에 대항해 항거하는 의병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후 『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라는 책자를 저술해 일본의 한국 침략과정을 폭로했다.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크게 감명받아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을 출판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한국 독립을 위한 그의 열정은 1920년 10월 영국 최초로 한국친우회를 결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전 세계적인 화두로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3·1운동 당일 만세시위운동의 생생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수촌리와 제암리에서 자행한 일본의 만행을 직접 조사해 이를 보고서로 남겼다. 그의 업적은 3·1운동을 은폐 축소하려 했던 일본정부의 계획을 어긋나게 만들어 한국인의 독립운동이 국내에서 일어난 단순한 소요사건이 아닌 일본의 폭압통치에 항거한 전 민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인에게 알렸다.
프랑스인으로 아주 드물게 한국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인물은 루이 마랭(Louis Marin)과 로베르트 살레(F. Robert Challaye)다. 파리강화회의를 대비한 외교활동을 위해 파견된 김규식이 한국통신부를 설립해 파리를 중심으로 선전외교활동을 강화할 때 루이 마랭은 파리한국친우회 창립에 앞장섰다. 살레는 1919년 3~4월 한국 방문 때 직접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목도한 인물로 프랑스로 돌아간 후 파리한국친우회에서 활동하며 자신이 목격한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협력해 한국 독립을 도운 인물로는 조지 쇼우(George L. Shaw)가 있다. 그는 중국 단동에 이륭양행을 설립, 운영하며 자신의 회사를 임시정부 교통국의 연락사무소로 쓰도록 제공하였고, 이를 통해 수많은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거나 편의를 제공했다. 이 일로 일본은 그를 ‘내란죄’ 명목으로 체포해 약 4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시키기도 했다.
중국인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도운 인물로는 널리 알려진 손문과 장개석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진과부, 우빈, 손과가 있다. 진과부(陳果夫)는 신해혁명 직후 설립된 신아동제사에 참여해 신규식을 비롯한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상하이에 설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며 임정활동을 도왔다. 또 김구가 추진한 한국독립군 간부 양성계획을 성사시키는 데 실질적으로 뒷받침했고 중경에 정착한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을 적극 지원하였다. 우빈(于斌)은 천주교 신부로서 중국 내 천주교 신자들로 하여금 한국 독립운동을 돕는 데 기여한 특별한 인물이다. 손과(孫科)는 중국 국민당정부의 입법원장으로 중국정부로 하여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촉구하였고 중경에 한중문화협회를 창립해 한중 간의 우의를 증진시킨 인물이다.
일본인으로 한국 독립을 도운 인물로는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와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가 있다. 후세 다쓰지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의열단원의 일원으로 의열투쟁에 나선 김시현과 김지섭을 비롯해 일본의 귀족과 고관들을 폭살할 계획을 세우다 적발된 박열을 변론한 인물이다. 그 외 나주에서 전개된 농민항쟁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여 동양척식회사의 부당한 착취를 고발했고,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권오설과 강달영 등이 옥중에서 당한 가혹한 고문 만행을 폭로하였다. 박열의 부인으로 잘 알려진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에서 흑도회와 불령사에서 박열과 함께 무정부주의 선전활동을 전개했고 박열의 소위 대역사건에 연루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옥사(獄死)했다.
제주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아일랜드인 천주교 신부들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암울한 시기에 한국인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성원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은 도슨(Patrick Dawson), 라이언(Thomas D. Ryan), 스위니(Austin Sweeney)이다. 이들 세 명은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을 규탄하고 한국인들에게 향후 일본의 패전으로 한국이 해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이 일로 도슨 신부는 징역 2년 6개월을, 스위니와 라이언 신부는 금고 2년형을 선고받았다.

서재필·이승만·정한경이 필라델피아에서 주관한 ‘제1차 한인회의’에 참여해 한국인의 3·1운동정신을 목도한 톰킨스(Floyd W. Tomkins) 목사는 한국의 독립문제를 미국사회에 확산시킨 인물이다. 철저한 기독교정신의 발로에서 출발한 그는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 싸우는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자유와 정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투쟁으로 보고 필라델피아에 처음으로 한국친우회를 설립하였고 그 이념을 미국 전역에 뿌렸다. 그 결과 미국 20여 곳에서 한국친우회를 결성시켰다. 그의 활동은 미국 언론에 한국 독립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미 의회에 한국 문제를 정식 의제로 삼는 데도 큰 힘이 되었다.
한국에서 의료선교사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1920년 미국으로 돌아온 화이팅(Harry S. Whiting)은 미국 전역에 266회나 되는 강연활동을 펼쳤다. 그의 활동으로 수많은 미국 교회와 단체들은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을 동정하고 성원을 보내주었다.
최근 들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작업이 늘어나는 때에 호주인 독립운동가들이 새로 발굴되었다. 2022년도에 포상된 데이지 호킹(Daisy Hocking), 마가렛 데이비스(M. S. Davies), 이사벨라 멘지스(Isabella Menzies)는 모두 부산의 일신여학교를 운영한 호주인 교육자들인데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전개할 때 그들을 인솔하고 보호하였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 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들의 숫자는 현 통계상으로 볼 때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2022년 3월 현재 독립운동으로 정부 포상이 이루어진 수는 17,285명이고 그 가운데 외국인 포상자는 75명이다. 외국인 포상자의 수는 한국인의 것에 비해 매우 미미한 편이다. 향후 더욱 발굴하고 포상해야 할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수는 한국인 수에 비해 적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수가 아닐 것이다. 그 수가 많든 적든 간에 한국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고 도움을 준 인물들이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단 한 명이라도 한국과 한국인을 도운 외국인이 있다면 그들의 업적을 발굴해 기억하고 선양하는 것은 우리 한국인의 신성한 의무이자 마땅한 도리이다.
현재 정부 포상을 받은 외국인 독립운동가를 국적별로 보면 중국(34명), 미국(21명), 영국(6명), 캐나다(6명), 호주(3명), 아일랜드(2명), 일본(2명), 프랑스(1명)이다. 이 같은 분포는 한국 독립운동이 해외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이 중국 지역이라는 사실과 대체로 일치한다. 나머지는 자국 현지에서 활동한 외국인들 외에 적지 않은 수가 식민지 조선 땅에서 거주하며 활동했던 외국인들로 포함되어 있다. 이 정도의 수가 채워질 수 있었던 데는 2014~2015년부터 정부가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발굴, 포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수가 현재 이런 정도의 수준에 있는 것에 대해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조사하고 연구하여 새로 발굴해야 한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음으로 양으로 한국인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미발굴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여전히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활동을 내세우지 않으려고 했을지라도, 나라 잃은 망국인이던 한국인들에게는 생명을 보전하고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준 소중한 은인들이었다.
이제는 모두가 고인이 되어버렸겠지만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과 그 후손들이 사는 나라와 사회에 해방 후 한국인들은 결코 그 헌신을 잊지 않고 여전히 깊은 감사와 후의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 같은 심정으로 새로 발굴하는 노력을 결코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러한 은인들을 발굴하고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향후 국제관계에서 대한민국의 신의를 더 높이는 일이 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게 될 것이며 고락을 함께했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유지를 잘 이어받는 일이 될 것이다.

필자 홍선표
한양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연구교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나라역사연구소 소장,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대한민국 공군 역사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공·저서로 .서재필 개화 독립 민주의 삶., .자주독립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재미한인의 꿈과 도전., .대한민국 국방사.(공저), .Koreans in Central Europe.(공저), .3·1운동과 국제사회.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