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 Theme 2. 순국선열의 현주소와 국가보훈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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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시대, 목숨 던져 겨레를 지킨 순국선열
최고의 예우 받을 수 있도록 위상 정립과 공정한 정책 추진
글 | 원희복(역사전문 기자, 전 경향신문 부국장)
순국선열은 우리민족의 ‘얼과 혼’이며, 우리가 자손만대에 유지, 계승해야할 최고의 가치이며 덕목이기도 하다. 이에 국가 보훈기본법 제24조(국민의례 및 의전상의 예우)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10조(의식상의 예우)에 의해 주요 행사시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못숨을 바치신 분들게 국민된 도리로 올리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감사의 표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법률상 최상위의 예우를 받아야할 순국선열이, 그만큼 대우를 받고 있는가? 잠시 마음의 옷깃을 새삼 여미며 반문해 본다.
게다가 그 죽음이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나라’를 위해서라면? 한 나라에 살면서 이보다 숭고한 죽음을 제시할 수 있을까. 오는 11월 17일은 바로 나라를 위해 숨진 분을 기리는 순국선열의 날이다. 그러나 이를 기억하고, 그 뜻을 기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식 자리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 애국가 제창(요즘 애국가 작사가의 친일논란 때문인지 공식 자리에서 애국가 제창은 종종 생략되기 일쑤다) 다음 순서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다. 그만큼 순국선열이 대우를 받고 있는가.
국가 최상의 예우 대상인 순국선열, 55평 초라한 공간에 모셔져

바로 이곳이 순국선열 위패를 모신 곳이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봉안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최고 공식 추념기관인 국립현충원에는 순국선열 묘역조차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순국선열에 대한 예우의 극명한 현실이다. 우리는 행사 때 마다하는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에서 그냥 형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지, 진정 순국선열을 생각하고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함을 다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구분돼 있다. 1895년 을미사변(명성왕후 살해사건) 이후 항일투쟁을 하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전에 돌아가신 분이 순국선열이고, 살아있던 분은 애국지사다. 목숨을 내 놓으며 항일투쟁을 한 사람이 마땅히 더 숭고한 가치로 존중되고 높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죽은 순국선열보다 산 애국지사 위주로 이루어진 보훈정책

류관순·윤봉길·안중근 등 유명 순국선열 19분은 별도 기념사업회로 정부가 지원하지만, 그 외 무명의 순국선열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국가원수가 다른 나라를 예방하면 반드시 가는 곳이 ‘무명용사 묘역’이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항일투쟁 의병이고, 군적이 없던 학도병이다. 우리 순국선열 바로 그들이다. 유명 순국선열과 유명 애국지사도 숭고한 일을 했지만 ‘무명의 헌신’에 대해 아예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이해가 됐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세계 10~11위권 경제강국이 됐다. 500조원이 넘는 정부예산을 쓰고 있다. 이제 민족정기도 일깨우고, 순국선열에 대해 최소한의 자긍심을 줄 수 있는 예산을 충분하다. 당장 필요치 않는 F-35전투기 한 대 안사고, 전투함정 하나 건조하지 않으면 순국선열의 위패를 이리 ‘방치’하지 않고 유족을 위무할 수 있다. 오히려 현대전에서 중요한 것은 재래식 무기보다 ‘순국을 각오할’ 정신력이다.
이제 통일시대, 남북화해시대를 위해 보훈정책도 달라져야

이제 통일시대, 남북화해시대 보훈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군인과 경찰 등 원호대상자를 위한 지원사업은 국방부로, 독립유공자나 민주유공자 선양 사업은 행정안전부나 문화관광부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순국선열유족회의 대표적 요구사항 하나만 검토해 보자. 현재 정부의 미온적인 발굴로 3500여 분만이 순국선열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쓰면 1,000여 분을 추가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순국선열 수를 약 1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근거에 따라 순국선열유족회는 위폐 봉안 대상으로 현 서훈자 3,500명과 향후 1,000여명, 그리고 북에서 발굴할 인원 3,500명을 합해 8,000명의 위폐를 봉안하고 추모할 ‘순국선열추념관’(가칭) 건립을 요구하고 있다.
순국선열유족회는 한때 현재 위패가 모셔진 위패봉안관을 ‘순국선열추모관’을 건립, 확장하기로 하고, 예산까지 확보했지만 장소를 제공할 서울시와 사업을 결정할 보훈처, 광복회 등이 얽혀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이다. 독립공원 부지의 대안으로 용산공원 안에 위폐봉안실과 전시실 등을 마련하자는 요구도 했지만 10년째 결실이 없었다. 그나마 올해는 보훈처로부터 ‘순국선열추모관’ 건립을 위한 기초설계비 예산을 배정받아 놓았다고 하니, 그 첫 걸음이 가지는 의미를 기대해 본다.
순국선열 정신, 꽉 막혀있는 현 남북관계 열 돌파구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한 가지 제언을 해본다. 올해가 봉오동 청산리 전투 100주년 되는 해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는 우리가 일제에 무력으로 항거한 최대 규모 사건이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대한독립군 총사령은 남북이 인정하는 최고 무장 투쟁가로 해방 전 숨진 순국선열이다. 홍범도 장군은 현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있다. 우리 정부는 카자흐스탄 정부와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작업을 추진해 왔다.

그래서 하나의 대안으로 군사분계선(DMZ) 안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여기에 순국선열추념관을 만드는 것을 어떨까 제안해 본다. 앞으로 북측의 순국선열 3,500분 위패도 여기에 모실 수 있다. 심지어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했던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 만약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았다면 어디에 모셔야 했을 것인가. 그리고 넒은 부지에 남북이 같은 목적으로 순국했던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좋다. 항일투쟁과 순국처럼 남북이 공감하는 역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것은 꽉 막혀있는 현 남북관계를 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전쟁의 파괴와 피랍, 학살의 역사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증오가 아닌 화해이고 평화다. 세계 여러 나라를 가보면 전쟁을 기념하지 않는다. 전쟁의 잔인함을 반추하고, 증오심을 부축이지 않는다. 전쟁을 잊지 않는 가운데 평화를 다짐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많은 희생자가 난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현지에 있는 캉 기념관의 다른 이름은 평화기념관이다. 30만 명이 죽은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의 마지막 화두는 ‘평화’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일본(상당수 조선인까지) 30만 명이 숨진 현장 오키나와에 있는 것은 전쟁기념관이 아닌, 평화기념관이다. 순국선열추념관은 남북을 하나로 엮을 평화의 가교 역할로도 손색이 없다. 이는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한 단계 더 승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