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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 Theme 4. 해방 이후 동남아·태평양지역 한인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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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광복 후, 해외동포의 귀환

그대 곁에 모국이


일제 침략전쟁 수행 위해 강제동원 정책 실행 

적도 무더위와 질병 가득한 ‘죽음의 지역’  

강요된 노동과 성적 수탈로 다수 숨져  


글 | 김도형(독립기념관 연구위원)


  일제는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과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후 전쟁물자와 인력자원 부족 때문에 한국인들을 강제로 끌고 갔던 것이다. 일본군이 동남아시아 각지와 태평양지역으로 침략을 확대하면서, 필연적으로 부족한 인적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인을 동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징용, 징병, 위안부 등의 명목으로 ‘인간공출’을 당하여 동남아와 태평양지역으로 끌려갔다. 태평양전쟁 당시 이른바 남양군도와 남방이라 불리는 태평양 제도(諸島)와 동남아 밀림지대는 치열한 격전지로 ‘죽음의 지역’이었다. 동남아와 태평양지역에 끌려간 한국인 병사와 군속, 위안부들은 적도하의 찌는 듯한 태양아래서 강요된 노동과 성적 수탈을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죽어가야만 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외에서 독립투쟁을 하였던 독립운동가들도, 일제의 경제적 수탈 때문에 만주와 일본 등지 떠났던 사람들도 해방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지역으로 강제로 끌려갔던 수많은 한인들도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해방 이후 자의든, 타의든 국외로 나갔던 한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우리 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귀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귀환’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곳으로 떠나 있던 사람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한다.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해방 이후 남한에 진주한 미군들은 ‘귀환’을 ‘repatriation’이라고 하여, 해외로 나갔던 한국인들을 ‘본국으로 송환’ 한다고 보았다.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60년간 약 6백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국내를 빠져 나갔다. 물론 그 가운데는 일제말기 강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있기는 하지만, 단기간에 다수의 사람들이 집중호우 식으로 국외로 간 것이다. 이같은 급격한 인구이동은 인류사상에도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해방 당시 전체 인구를 3천만 명으로 보았을 때 1/5이 이동한 것이다.


 해방 이후 귀환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는 일제에 의해 징용·징병을 당해 중국, 일본, 동남아, 태평양 등지로 끌려갔다가 해방과 동시에 귀환하였다. 다시 말해, 해방 이후 ‘귀환’의 대부분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한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 이후 해외 한인의 귀환은, 일제의 강제동원로 인해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동원된 한국인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한 이후,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인에 대해 강제동원 정책을 실행하였다. 일반적으로 ‘동원’(Mobilization)이라는 용어는 군대가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고, 현재에도 군대가 명령으로 움직인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일제하에 ‘동원’이란 말의 의미는 군대를 전시체제로 이행시켜 임전태세를 만든다는 것으로, 한국인을 ‘평시’에서 ‘전시’로 이행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일제는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과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후 전쟁물자와 인력자원 부족 때문에 한국인들을 강제로 끌고 갔던 것이다. 일본군이 동남아시아 각지와 태평양지역으로 침략을 확대하면서, 필연적으로 부족한 인적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인을 동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징용, 징병, 위안부 등의 명목으로 ‘인간공출’을 당하여 동남아와 태평양지역으로 끌려갔다. 태평양전쟁 당시 이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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