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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 Theme 4. 3·1운동에 대한 인도의 시선
한국과 인도는 고대로부터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켜 서로 상호 교류해 왔으며, 4세기경 불교가 인도에서 한국으로 전파되어 한-인도 관계의 초석을 이루었다. 20세기 아시아 식민국가에 영감을 불어준 간디, 네루와 타고르 등 추앙받는 인도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한-인도 상호간의 인식은 재조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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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 Theme 3. 3·1운동에 대한 중국의 시선
중국 매체들의 3·1운동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자, 중국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혁명운동이 오히려 한국보다 뒤처진 사실을 자각하면서 “혁명운동의 신기원을 열었다”, “가장 약자인 피식민지 조선의 인민들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혁명을, 가장 위대한 방식으로 해냈다”고 경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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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 Theme 2. 3·1운동에 대한 일본의 시선
한국근대사상 전무후무한 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의 언론들은 3·1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해 무지·미신·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절하하고, 조선왕실과 한인 대중을 이간질했으며, 한국인이 민족자결주의를 오해하고 있다는 기사를 반복적으로 게재하는 등 왜곡보도를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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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 Theme 1. 외국·외국인이 본 3·1운동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의 사건이자 세계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그 사실은 3·1운동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타난다. 자신들의 지배 권력에 무력했고, 외세의 침탈에 더욱 무력감에 빠져 있었던 중국인들은 3·1운동에서 빛을 찾고 길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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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 Theme 4. 대한독립선언서와 만주지역 무장항쟁
올해 2월은 중국 동북(만주)지역의 지린에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지 102주년이 되는 달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선언서가 1919년 2·8독립선언서나 3·1독립선언서보다 빠른 1918년(무오년)에 작성, 배포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무오독립선언서’라는 별칭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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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 Theme 2. 미주 한인사회 독립운동
한국인들은 1903년 하와이 이민을 통해 공식적으로 미주지역에 첫발을 내렸다. 미주로 이민을 온 한인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1910년 망국이라는 통한을 당하고 말았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면서 미주 한인사회에는 독립을 위한 활동들이 폭풍같이 휩쓸고 나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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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 Theme 4. 학교 밖 역사교육 활성화 방향 모색
학교 교육의 테두리에서 학교 밖의 현장은 교과 중심적 교육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대부분 인식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문화시설이 빠르게 증가했고 이에 따라 박물관도 전국적으로 1,000여 곳에 이르는 성장세를 보였다. 게다가 테마를 내세운 각양각색의 박물관들이 들어서면서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급증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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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 Theme 2. 역사교육에 비친 한국근대사
한국근대사가 한국사 교육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다. 1960년대 민족사관과 내재적 발전론에 기반한 한국사 연구의 성과에 힘입은 결과다. 1970년대 말 간행된 국사 교과서에는 의병항쟁과 일제하 무장독립투쟁의 내용이 크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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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 Theme 3. 재일 조선인의 사회 형성과 귀국1
조국을 떠나 산다는 것은 힘겹고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닌데 강제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면 그 아픔은 굳이 말이 필요치 않은 일이다. 그렇게 이 땅을 떠나 일본으로 간 사람들이 바로 재일조선인이다. 그들은 낯선 일본 땅에서 ‘조센진’으로 극심한 고통과 차별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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