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 Theme 1. 역사교육(독립운동사) 현주소와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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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발전 출발점은 애국선열 희생
이념적 편향성 지양
항일운동에 대한 객관적 연구 필요
글 | 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올해로 우리는 일제강점으로부터의 민족해방 76주년,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또는 대한민국정부 수립 73주년을 맞이한다. 특히 후자에 초점을 맞춰 볼 때, ‘취약국가’로 출발한 대한민국이 위태로웠던 여러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계적으로 실현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의 많은 나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가슴 뿌듯하다. 그러면 이러한 성취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의 고귀한 투쟁과 희생이었다. 국내외적인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조국의 해방과 복국(復國)을 위해 수십 년에 걸쳐 강인하게 싸운 선열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일제를 포함한 파시스트 전범국을 패망시킨 연합국의 승전이 기여한 몫은 결코 부인될 수 없다. 2차대전의 역사를 보면, 그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가시밭길을 걸었던 한민족의 항일독립투쟁이 없었더라면 연합국은 한민족을 아예 잊어버리고 내버렸을지 모른다. 항일독립운동사 연구와 교육을 제약했던 요인들 첫째, 신생정부로서 안보와 경제건설을 비롯한 국가건설의 여러 다른 과제들 수행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된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무려 3년에 걸쳐 국토 전체가 유린되는 전쟁이라는 국난을 겪다 보니 생존 자체에 전념하게 됐던 것이다. 둘째, 항일독립운동의 주요한 무대였던 구소련은 물론이고 만주와 중국대륙이 모두 공산권에 속했기에 자료 접근에 제약이 컸고, 또 그곳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이거나 ‘좌익’으로 보게 되어 철저한 반공국가였던 대한민국에서 그들에 대해 연구하거나 교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쉽게 말해, 냉전시대의 이념적 제약이 항일독립운동 연구와 교육에도 일정한 한계를 설정했던 것이다. 셋째, ‘친일’의 부담을 안고 출발했던 어떤 집권세력은 독립운동 연구와 교육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는 정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투철한 역사인식으로부터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개척자적 학자들에 의해 시도됐다. 이 점에서 우리는 박영석 교수, 윤병석 교수, 조동걸 교수, 신용하 교수 그리고 이정식 교수, 김정명 교수를 비롯한 몇몇 해외 학자들의 역할과 학문적 업적을 잊을 수 없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전반 이후의 전환 상황의 변화는 대체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전반 이후 이뤄졌다. 바로 앞에서 말한 개척자적 학자들이 뿌린 씨가 이 시기에 서서히 결실을 보아 이 주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확대되고 이것은 다시 연구자들을 자극함으로써 그 이전 시기에 비해 연구성과는 훨씬 풍성해졌다. 예컨대,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그리고 ‘민중혁명을 통한 전면적 항일투쟁’ 노선을 제시한 신채호에 대한 연구는 이 시기에 이르러 훨씬 심화됐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3·1운동에 대한 연구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연구 역시 심화됐다. 이것은 3·1운동을 폄하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무시하는 북한 관영사학의 해석과 대조된다. 필자로서는 3·1운동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 우리 민족사의 큰 분기점이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독립기념관과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개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그 이전 시기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전문가 그리고 박사학위논문을 볼 수 있고, 이 주제에 관해 참으로 많은 저술에 접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강영심, 권오영, 김도형, 김상기, 김영범, 김희곤, 박민영, 박환, 신주백, 윤민재, 이명화, 이민원, 이정은, 이태룡, 장석흥, 장세윤, 장영민, 최기영, 한상도, 한시준, 황선익 (가나다순) 교수 등을 예시할 수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 후계세대의 육성 이것을 대학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현실이 대학에 대해서도 ‘기업적 운영’, ‘경영학적 운영’을 요구하고 있는 터에 대학이 이 주제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아 전임직을 신설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결국 정부가 독립운동사에 관한 전임직을 국가예산으로 전국적 수준에서 신설해주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독립기념관은 물론이고 산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최소한 자기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를 자극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연구소를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에 대해서도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의 논점 마지막으로, 항일독립운동사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의 몇 가지 논점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념적으로 어느 한쪽에 쏠리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좌편향’의 경향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자들의 항일독립운동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관련해서다. 그들만이 진정으로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우파’ 또는 민족주의자들은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해석을 둘러싼 논점이다. 이와 관련해,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훨씬 더 객관적인 연구가 요청된다. 그가 중국공산당이 이끌었던 동북항일연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것은 사실이고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지만 그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과장과 심지어 조작이 있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은 교육에 있어서도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출판된 연변지역 작가 유순호의 김일성, 1912~1945 전3권은 이 주제에 대한 새로운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승만의 항일독립운동은 훨씬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외교와 선전을 통한 독립’ 노선이 소극적 항일독립운동으로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탁월한 국제정치적 안목을 지녔으며 반생을 조국의 광복을 위해 국제연맹과 미국정부를 상대로 일관되게 투쟁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항일독립운동은 참으로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구한말부터 조국과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노(老)애국자의 활동이 제대로 교육되기를 바란다. 위기일수록 애국선열의 발자취 일깨워야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이 쇠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조용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의 교육은 나라가 위기에 처한 경우에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정신으로 일어났던 애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일깨워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