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 Theme 2. 역사교육에 비친 한국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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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한국근대사 인식체계 재구조화
식민지배 저항만이 아닌
독립운동 속 내재된 가치와 의미 다뤄야
글 |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한국근대사 연구의 활성화와 역사교육 1960년대까지 한국근대사 교육은 한국사 교육의 중심이 아니었다. 물론 개항 이후 외세의 침탈 민족운동과 일제하 독립운동이 일부 서술되기는 하였지만, 양적으로 부족하였으며 내용도 체계적이 아니었다. 일제의 식민사학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한국근대사 연구도 미진하였다. 그렇지만 1960년대 민족사관과 내재적 발전론에 기반한 한국사 연구의 성과에 힘입어 1970년대 한국근대사 교육이 강화되었다. 1970년대 말 간행된 국사 교과서에는 근대사에 의병항쟁과 일제하 무장독립투쟁의 내용이 크게 늘어났다. 이는 근대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연구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난극복사관을 앞세운 박정희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시련과 극복이라는 중·고등학교용 한국사 보조교재를 만들어 학교에 보급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대외항쟁사였다. 1979년 국정 국사 교과서를 개정하면서 시련과 극복을 없애고 그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때 시련과 극복에 있던 내용이 국사 교과서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이때 포함된 한국근대사의 사실은 제한적이었다. 2003년에는 고등학교에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도입되었다. 근현대사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회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었다. ‘한국근·현대사’는 근현대사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과목인데다가, 수업시수도 ‘국사’보다 많았기 때문에 근대사를 훨씬 더 자세히 다루었다. 다만 모든 학생이 배우는 필수과목이 아니라 선택과목이었으며, 그 대신 ‘국사’에는 근현대사 내용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오히려 근현대사 교육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한국근·현대사’ 과목은 다음번 교육과정 개정 때 없어졌지만, 이후 고등학교 ‘한국사’를 근현대사 중심으로 구성하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2020년 간행된 중학교 ‘역사’의 한국사 내용은 전근대사 중심인 반면, 고등학교 ‘한국사’는 근현대사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한국근대사 교육을 둘러싼 논란 첫째는 세계사 및 동아시아사의 관계 속에서 한국사를 이해하는 문제이다. 한국근대사는 세계사의 흐름, 동아시아 국가 간의 상호관계에 영향을 받으면서 다층적으로 진행되었으므로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 교육과정의 학습내용이나 교과서는 으레 근대 세계의 상황을 서술하는 것에서 한국근대사를 시작한다. 제국주의의 성립과 세계 정책이 한국근대사를 이해하는 핵심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근대사 교육의 이런 접근방식은 1990년대부터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세계사를 그저 한국근대사의 배경으로만 다루거나, 단순히 세계사를 한국사보다 먼저 학습하는 데 그친다는 비판을 받는다. 둘째로 틀에 박힌 한국근대사 인식체계와 학습의 문제점이다. 학교 역사교육의 한국근대사 인식체계와 학습방법은 1970년대 이후 별다른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개항부터 국권피탈까지는 ‘제국주의의 침탈과 민족운동의 전개로’, 대일항쟁기는 ‘일본의 식민정책과 독립운동’이라는 도식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일제의 식민통치는 무단통치(1910년대) → ‘문화정치’(3·1운동 이후~1930년대 중반) → 민족말살 정책(1930년대 후반~1945년)의 세 단계로 나눈다. 1910년대 민족운동은 비밀결사 조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1919년에는 거족적인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다룬다. 1920~1930년대 국외 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 봉오동 전투 → 청산리 대첩 → 자유시 참변 → 3부의 성립 → 3부 통합운동 → 국민부와 혁신의회로 도식화되어 있다. 3·1운동 이후 국내의 민족운동도 기본적으로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 신간회 운동 → 문맹퇴치 운동으로 정리된다. 이 밖에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개별 사건으로 추가된다. 문제는 한국근대사의 기본구조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보다는, 역사 전개를 특정 사건들에 좌우되는 고정된 틀로 이해한다는 점에 있다. 위의 사실들은 한국근대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 요소이다. 그러나 이처럼 고정된 근대사 내용체계는 제국주의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한국인의 다양한 대응방식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또한 학생들이 역사의 흐름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한국사 이해와 역사적 사고의 폭을 좁히게 된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까지 암기 대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또한 역사교육은 한국근대사를 제국주의 침탈과 민족운동, 일제의 식민통치와 독립운동이라는 틀로 이해하면서도 정작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학생들은 독립운동이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 이념이 한국현대사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독립운동을 단지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선 저항으로만 인식하고, 그 속에 포함된 인권존중이나 평등의식, 사회적 약자의 배려 같은 기본 가치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역사교육의 방향과 한국근대사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바람직한 한국근대사 인식을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는 한국근대사의 새로운 인식체계이다. 이제까지 한국근대사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근래에 간행되는 한국근대사를 보는 관점이나 다양한 측면을 다루는 역사책을 여기에 참고할 수 있다. 물론 한국근대사 인식체계를 재구조화하는 것은 학교 역사교육뿐 아니라 한국 역사학계의 과제이기도 하다. 둘째는 한국근대사 학습 내용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학교 역사교육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 중 하나는 지나치게 많은 사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근대사와 독립운동사도 그 대표적 영역 중 하나이다. 그래서 학교 역사교육이 개편될 때마다 계속해서 학습량을 줄였다고 내세웠다. 그러나 그 효과는 별로 없었으며, 오히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제까지 역사교과서를 내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구체적 사실을 빼고 요점만을 정리하여 서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까 내용 요소는 그대로 둔 채 구체적 사실을 생략하고 결론만 추상적으로 제시하여 서술 내용은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는 개항 이후 외국 문물 도입을 위해 일본에 수신사와 조사시찰단, 청에 영선사를 파견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서술하면서, 사절단의 이름과 구체적인 활동 내용만 생략했다. 이를 서술할 경우 학생들의 암기 부담이 되리라고 우려한 것이지만, 역사 흐름이나 역사적 사실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셋째로 분야사적 접근 방식이다. 민족운동이나 독립운동까지 기계적으로 분야사로 나눈 나머지, 밀접하게 연결되어 상호 관련 속에서 다루어야 할 역사적 사실을 별개로 다룬다. 예를 들어 1920년대 민족주의자들의 대표적 실력양성운동인 조선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인위적으로 분리한다. 조선물산장려운동은 경제사, 민립대학설립운동은 문화사로 나눔으로써 일제하 민족운동의 전개 과정 속에서 두 운동이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을 가졌음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근대사의 내용 체계를 구조화하고 근대사 이해를 위한 스토리라인을 마련한 다음, 이를 이해하는 데 적합한 사실을 선정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근대사 연구 성과와 동향에 비추어 보완해야 할 내용들도 있다. 근래 근대사 교육에서 강조되는 생활사, 민중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사회적 소수의 역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근래 학교 역사교육에서도 근대와 대일항쟁기 서구 문물의 도입과 이에 따른 사회생활 변화, 일제하 대중운동, 사회주의계 독립운동을 다룬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보완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여성사 교육이 대표적이다. 독립운동에서 여성의 활동이 재조명되면서 독립운동의 개념과 범주가 새롭게 설정되고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가 소개되고, 이들의 회고록이나 수기가 자료의 형식으로 포함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성의 주체적 삶과 활동은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의 독립운동을 하나의 토픽으로 다룰 뿐이지, 이들의 활동을 역사의 흐름을 만드는 주체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도 나열식 서술과 암기 중심의 역사교육에서 탈피하여 학생들이 사고의 경험을 제공하는 내용 구성이 되어야 한다. 특히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역사교육이 필요하다. 근대사의 많은 사실들은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판단과 동기, 목적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역사적 사실이 상황 판단을 바탕으로 한 인간 행위라는 점에서 근대사의 여러 사실들에 적용할 수 있다. 역사적 상황에 대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경험하게 하는 내용과 학습활동도 비판적 사고를 유도하는 데 적합하다.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하거나 여러 입장으로 평가하는 다중시각과 다원적 관점이 비판적 사고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