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 세대갈등, 그 간격 어떻게 좁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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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 우리의 역사 바로 세우기
2-4.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 바로 세우기, 어디부터 출발해야 하나?
노인은 죽고, 젊은이는 늙는다
나눔과 섬김으로 함께 가는 길 모색
글 | 이시형(정신과 전문의,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세대 간의 갈등은 결국 가치관의 갈등이다. 4050에서 느꼈던 중요한 가치가 2030에서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그 갈등은 결국 윗세대에서 풀어야 한다. 노인이라고 무조건 존중하던 경로(敬老)시대는 분명히 지나갔다. 살아온 세대, 정치, 경제, 사회적 이해관계가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들이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들의 갈등을 불러왔고, 그 파급효과로 노인에 대한 혐오와 경시가 생겨났다. 노인들이 시대의 변화를 읽고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노인이 가졌던 경험과 경륜이, 어른에 대한 대접과 존경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스마트폰과 인터넷 뱅킹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옛날 사람’ ‘석기시대 인간’ 취급을 받는다. 과학의 발달,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행동은 노인을 새로운 시대의 부적응자로 바라보게 한다. ‘꼰대’를 넘어, 노인이 무슨 벼슬이냐는 ‘노슬아치(노인+벼슬아치)’, 그리고 이제는 ‘틀딱충(틀니딱딱+벌레충(蟲) 준말)’으로 불리고 있다. 노인이 존경은 고사하고 비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지나간 시대의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꼰대질’이라고 한다. 그러자 참다못한 노인들이 “그래, 나는 이 나라의 자랑스런 꼰대다!”며, 오늘의 풍요를 만들어 온 자신의 헌신과 희생을 말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젊은이들이 데모하면 진보세력의 주장이고, 노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애국을 이야기하면 그건 ‘태극기 부대’가 되는 게 답답하다. 인생을 돌아보면 처자를 굶기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그것이 이제는 젊은이에게 조소의 대상이 된 것 같아 억울하다.
대한민국은 왜 ‘갈등 공화국’이 되었을까?
갈등은 “서로 생각이나 처지 등이 달라서 맞부딪치는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그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를 적대시하거나 불화가 일어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왜 ‘요즘 것들’과 ‘늙은 것들’의 싸움터가 된 것일까? 대한민국의 갈등은 세대 간의 갈등뿐이 아니다. 지역갈등, 남녀갈등, 빈부갈등, 노사갈등, 이념갈등 등 갈등의 종류도 유형도 많다. 갈수록 갈등이 커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서로의 입장을 잘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그만큼 ‘관용이 적은 사회’다.
서로의 관점이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나와 다름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고, 그것이 선진국인 것이다. 기성세대(노인)들은 오늘의 풍요는 자신들이 끼니도 먹기 어려운 시대를 견디며 열심히 일하고 희생해 온 결과라고 말한다. 노인을 비아냥거리는 것은 풍요는 누리면서 자신들의 희생을 부정하는 것 같아 젊은 층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IMF를 겪으면서 자신들로 갑자기 급격한 변화로 생활이 어려워졌고, 학교공부 부터 취직까지 엄청난 경쟁을 거쳤다. 기성세대가 대충 공부해 진학하고 직장을 가졌지만, 이들은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쌓고도 기회가 적어졌다. 우리 사회가 갑자기 성장, 팽창사회에서 수축되었기에 과거와 달리 자신들에게는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연애도, 결혼도, 집도 자동차도 포기했는데,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배려해 주지 않고 잔소리만 퍼붓는 기성세대에게 냉소와 함께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세대 간의 갈등은 결국 가치관의 갈등이다. 4050에서 느꼈던 중요한 가치가 2030에서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그 갈등은 결국 윗세대에서 풀어야 한다. 노인이라고 무조건 존중하던 경로(敬老)시대는 분명히 지나갔다. 살아온 세대, 정치, 경제, 사회적 이해관계가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들이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들의 갈등을 불러왔고, 그 파급효과로 노인에 대한 혐오와 경시가 생겨났다. 노인들이 시대의 변화를 읽고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시대가 달라졌다. 요즘은 구태여 나이 든 사람에게 정보를 얻을 필요가 없어졌다. 농경사회가 아닐뿐더러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매체를 이용해서 원하는 정보를 너무나 손쉽게 그것도 풍성하게 얻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노인의 지식과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는 의미다.
기성세대는 가정과 엄숙한 분위기 속에 성장했고, 직장에서도 칭찬보다는 질책을 받으며 일했다. 젊은 세대는 자유스럽게 성장했고, 칭찬과 참여 없이는 직장에서도 무조건 참지를 않는다. 직장도 과거와 달리 이미 평생직장이 아니다. 바뀐 문화를 이해해야 계층 간의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성공을 과거에는 성실과 인내의 결과로 보았다면, 요즘 젊은 세대는 성공을 기회포착과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것으로 본다.
80대가 된, 석학 이어령 교수가 유튜브를 한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거기에서 보낸 메시지도 놀랍다. 그는 ”노인은 죽고, 젊은이는 늙는다“는 말을 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실제로 생활하면서 이걸 잊고 산다.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면서 관용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세월이 가면 누구나 늙지만, 성숙한 사람이 되는 건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눔과 섬김’이 세대 갈등을 해소시킨다
우린 지난 반세기 치열한 경쟁 속에 많이 벌어 많이 모았다. 한데 문제는 다음이다. 대체로 베푸는 데 인색하다. 더구나 남에게.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남이 누구냐? 우리는 모두가 하나로 이어져 있지 결코 남이 아니다. 우리 앞에 차려진 밥상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수만리 떨어진 농장에서 이름 모를 농부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묻어있다. 이걸 모아 운반, 까다로운 수입절차를 거쳐 우리 시장으로. 동네 가게를 그리고 따뜻한 아내의 손길을 거쳐 지금 내 눈앞에 밥상이 차려진 게 아닌가. 한없는 감사가 절로 난다.
우리는 남이 아니다. 내 회사가 이 만큼 큰 것도 직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다. 구멍가게를 해도 다르지 않다. 고개들이 있었기에 오늘 이만큼이나 살게 되지 않았는가. 생각할수록 고마운 사람들이다. 농업, 공업 무슨 일을 하던 업(業)이란 빚을 지는 일이다. 이젠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것도 나이 듦의 슬기요 지혜다. 그리고 이것은 축복이요 행복이다. 감사의 마음이 안에서 솟구쳐 오르면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베풀고 나누고픈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잘 산다는 것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는 것도 자각하게 된다. 베푼다는 것에 더해져야 비로소 내 인생이 꽉 찬 충실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명예다. 참으로 귀한 선물을 받게 된다. 물질이던 슬기든, 지혜든 내가 쌓아온 모든 건 다시 사회로 되돌려 주게 된다. 이게 덕(德)이다. 인생은 그때, 비울 때 완성이 된다. 노인은 입을 여는 것보다 지갑을 열어야 한다. 그 나눔과 섬김의 모습이 인생을 성숙하게 하고, 노인의 품격을 보여주고, 우리 사회를 열리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