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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일진회, 매국의 길을 걷다 1909년 12월 4일, 일본의 꼭두각시 일진회는 한·일합방성명서를 발표하고, 황제와 총리대신, 조선통감에게 합방청원서를 전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합방론을 합리화하려고 유령단체까지 만들었다. 더 꼴사나운 행태는 군부의 비호를 받던 일진회와 통감부의 지원을 받던 이완용 내각이 한·일 합방을 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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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 규암 김약연의 삶과 민족교육운동 1899년 규암은 가족을 거느리고 중국 땅 간도로 이주하여 동지들과 힘을 모아 명동촌을 건설하고, 1901년 민족교육의 요람 규암재를 열어 청년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서전서숙의 숙장 이상설이 고종황제의 헤이그 특사로 떠나자, 명동서숙을 설립하여 서전서숙의 교육정신을 이어갔다. 1909년에는 명동서숙을 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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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 우양 허정의 삶과 자유민주주의의 실천 우양은 열다섯 살 어린 나이였지만, 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병탄된 것은 지도자들이 국제정세에 어둡고, 파벌싸움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면 공부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양은 1915년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3·1독립운동이 있은 직후 해외(海外)로 나가서 새로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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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되돌아본다 1976년 8월 18일 공동경비구역에서 일어난 ‘도끼만행사건’으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토마스 배럿 중위가 사망하고, 미국 병사 4명과 한국군 4명이 부상을 입는 결과를 낳았다. 1983년 10월 9일에는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으로 아웅산묘역(墓域) 테러를 일으켜 부총리 서석준을 비롯한 대통령 수행원과 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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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 갑오변란, 조선침략을 위한 길닦기였다 1894년 농민봉기가 확대됨에 따라 조정에서는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다. 이때 동학농민봉기가 진압되었지만, 청·일 두 나라 군대가 철수를 거부하면서 조선의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으로 번졌다. 일본은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1894년 7월 23일 갑오변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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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 젊은 특사 이위종의 ‘한국의 탄원’ 일본의 방해공작으로 위기에 몰린 헤이그 특사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7월 9일,이위종이 신문기자단 국제협회에서 「한국의 탄원(호소)」(A Plea for Korea)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 이위종은 젊고 귀족적인 외모를 가진 청년으로서, 프랑스어·러시아어·영어를 자유자재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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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 지조의 시인, 조지훈의 삶과 지조의 큰 울림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인 조지훈이 세상을 떠난 지 5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의 가문은 ‘삼불차’(三不借)의 가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 ‘삼불차’란 남으로부터 재물(돈)·사람·문장(글)을 빌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수백년 이어온 ‘삼불차’의 가훈은 일제강점의 창씨개명을 거부할 수 있는 강인한 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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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 저항시인 이상화의 삶과 항일문학 작가,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번역 문학가이며, 교육자, 권투 선수이기도 한 시인 이상화는 1921년 현진건의 소개로 월단 박종화와 만나 ‘백조’ 동인에 참여하면서 박종화의 소개로 홍사용, 나도향, 나혜석, 박영희 등 문인들을 만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1926년 조국의 독립을 바라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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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 도산 안창호의 삶과 민족부흥운동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면서 기울어져가는 나라와 운명을 걱정하며 국내외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조국독립을 위해 싸웠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60년 삶은 우리나라 근대사와 맥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협회에서 시작해 만민공동회, 샌프란시스코친목회, 공립협회, 대한인국민회, 흥사단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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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 민족운동의 선구 신간회 철폐, 생존권의 수호, 우리 말과 글의 사용, 학원(學園)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노동자의 단결권·파업권의 확립 등의 투쟁을 전개한 신간회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두 갈래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던 것을 하나로 통합하여 민족의 역량을 총결집했다. 창립 후 꾸준히 세력을 확장한 신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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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 애국청년 이봉창의 투혼, 일왕을 향하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은 도쿄 교외의 요요기 연병장에서 거행된 관병식을 마치고 궁성으로 돌아가는 일왕 히로히토의 행렬을 기다렸다 그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애국청년 이봉창(李奉昌)의 분노의 폭발이었다. 그로부터 83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히로히토를 향해 힘차게 수류탄을 던지던 그 당당한 모습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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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 삼전도의 치욕, 병자호란과 의병항쟁 1636년(병자년) 12월 청 태종이 2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다. 정묘호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침략하였으나 실제로는 명을 공격하기 전 조선을 군사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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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 KAL 858편 폭파사건을 되돌아본다 북한은 1987년 11월을 전후하여 대한민국 내부가 개헌 문제, 대통령 선거 등 극도로 복잡해진 정치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한국 국내정국을 더욱 혼란시키고 사회 불안을 더욱 가증시켜 민주발전을 저해시킨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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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 한글을 지켜낸 최후의 보루, 조선어학회 창립 초기부터 우리말인 한글을 통해 민족사상을 고취시키려 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1929년 10월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해 〈큰사전〉의 편찬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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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 위당 정인보의 삶과 한국학 위당 정인보를 설명하는 표현은 아주 많다. ‘양명학연론’을 저술해 ‘양명학’하면 정인보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고, 양명학자로서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또한 다산에 대한 연구로 조선 고유의 실학사상을 정립하기도 했다. 후대에 국어국문학 사전에도 실릴 만큼 국문학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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