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전설
[2023/01] 강원도 원주의 만세시위 ❷
모여 봐야 몇 명, 또는 몇십 명에 불과했지만 굴종하고 침묵하기를 거부했다. 주로 한밤중에 마을 뒷산이나 공터에서 어둠 속에 횃불을 밝혔다. 일제는 한밤중에 6명이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부른 만세시위 참여자에게 징역 8월형을 부과했다. 병합 후 10년간 전력을 다해 일사분란한 지방통치체제를 구축했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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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강원도 원주의 만세시위 1
원주는 일제의 군사적 압박에 목이 눌려 독립운동이 질식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때문에 원주 읍내에서는 만세시위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변방 면과 동리들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작은 동리 주민들은 탄압을 피해 한밤중에 산에 올라 화톳불을 피우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제의 수직적 억압체제 하에서 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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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 경기도 김포의 독립만세운동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하구의 김포(金浦) 지역은 1910년대만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업 지역이었다. 수리시설이 부족해 오직 천수(天水)에 의존해 농업용수를 확보했고 매년 우기 때는 한강이 범람하여 농작물 피해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개인의 경작 부담이 컸던 김포 일대는 왕실에서 군량이나 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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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 경남 하동의 독립만세운동
경남 하동(河東)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과 물류의 거점으로 일찍이 대읍(大邑)을 이루었다. 한말 동학 농민군과 영호남 의병들의 항일정신이 하동 독립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하동 지역 독립만세운동은 총 17회로 참가 인원은 1만 2천 명, 사망자 17명, 부상자 95명, 옥고를 치른 사람은 50명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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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 경남 진주의 독립만세운동
예로부터 ‘조선 조정의 반은 경상도 사람이고, 그 반은 진주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진주는 풍부한 물산과 인재로 전국적인 위상을 가진 곳이었다. 외적이 침략했을 때는 웅장한 지리산을 닮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사상, 김시민 장군과 기생 논개의 호국정신이 빛났다. 조선후기 ‘삼정문란’이라는 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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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 충남 아산의 독립만세운동
충청남도 아산은 아산만을 면하여 평야지대의 농산물과 넓은 갯벌의 수산물이 풍요로운 곳이다. 또한 조선시대 경기 남부와 충청도 세곡(稅穀)을 거두어들여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실어가는 조운의 거점이었다. 해평 윤씨 윤웅렬(尹雄烈) 일가는 아산만에 가까운 음봉면 들에서 농업경영과 무관으로서 부를 쌓았고, 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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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 충남 청양의 독립만세운동
청양(靑陽)은 기호유림의 본고장으로 옳고 그름, 의와 불의에 대한 치열한 의식을 지닌 선비의 고장이었다. 1906년 국내 최고 최대의 의병투쟁이었던 홍주 의병의 의병장 민종식이 이곳 사람이며, 홍주 의병 운동에서 청양 지역민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청양 일대는 다른 지역보다 늦게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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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 충남 홍성의 만세시위 2
1919년 4월 1일 오후 8시경 홍성 금마면 사람들이 모여 들고 연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중간에 조한원이 벌떡 일어나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수십명의 관중들이 따라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전국에서 독특한 연극 공연장 시위가 벌어졌다. 4월 4일 밤에는 홍성 주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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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 충남 홍성의 만세시위 1
홍성은 양반 유림세력의 세거지가 되어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의 후학 이설(李楔), 김복한(金福漢) 등이 남당학파를 형성하는 등 척사사상(斥邪思想)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한용운, 김좌진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특히 1896년 제1차 홍주의병, 1906년 전국 의병투쟁 중 가장 강력했던 제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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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경기도 양주의 만세시위
일제 헌병 나리타는 “3월 14일 양주로 200m가량 내려간 곳에서 한창 대한국 독립만세를 절규하고 있었으므로 해산을 명하였더니, ‘2천만 동포가 조선독립을 기뻐하여 만세를 부름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저항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3월 14일 양주군 주내면에서 100~300명의 군중이, 양주군 중북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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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 경남 진주의 만세시위 2
3월 19일 시위는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12시간이나 진행되었으며, 체포된 사람이 200명이 넘었다. 이렇게 진주에서 크고 강력한 시위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 『매일신보』는 “진주 소요범인에 재산가가 다수”라는 분석기사를 실었다. 진주의 대규모 시위는 가진 자들이 솔선수범한 결과 거지와 기생까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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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 3월의 전설(73회) ┃ 경남 진주의 만세시위 1
진주는 호국의 성지요 서부 경남의 중심 도시였다. 임진왜란 연전연패의 흑역사에서 최초의 찬란한 진주대첩이 이곳에서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권율장군의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였다. 3·1운동 때 진주는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였다. 서부 경남의 행정, 경제, 교육과 문화의 중심 도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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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 3월의 전설(72회) ┃ 평북 용천군의 만세시위
용천은 신의주 아래에 있는 국경지역 군이다. 압록강 하구의 토끼 모양 한국 지형의 입에 해당하는 위치이다. 서울-신의주 간 경의선 철도가 신의주에 종착하기 전에 용천군을 지난다. 1903년 러시아가 압록강 상류의 산림벌채권과 군사전략적 가치 때문에 용천군 용암포를 조차하고 군대를 파견하여 진지를 구축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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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
[2021/06] 3월의 전설(71회) ┃ 경기도 장단군의 만세시위
장단군은 경기도 서북부의 38선과 휴전선이 겹치는 지역이다. 해방 당시 10개 면 67개 동리가 있었는데, 67개 동리 중 절반이 넘는(54%) 36개 동리가 북한에 있고, 나머지 31개 동리 중 22개는 파주군, 9개는 연천군으로 나뉘어져 있다. 강상면, 대남면, 소남면 전부와 진서면과 장도면 대부분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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