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컬럼

[2022/10] 진부하고도 참신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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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조국”을 먼저 외치는 국민 많다면

이 세상에 두려울 일 무엇이 있겠는가


글 | 김중위(월간 순국 편집고문)


  “나보다 조국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는 국민이 많을수록 그 나라는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우리에게도 수도 없는 매케인이 있었다. 외적이 쳐들어올 즈음해서는 역적으로 몰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나고 산중의 스님들까지도 승군(僧軍)을 조직해서 왜적(倭敵)과 싸웠다. 전투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다 주는 아낙네들의 눈물겨운 항전과 기생 논개의 희생정신이 우리의 전통으로 살아 있는 나라다. 나라를 잃을 무렵에는 자결로 저항하고 제국주의 국가의 깃발 밑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의사와 열사와 지사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다. 


오래전 얘기지만 다시 한번 해보자. 


“나보다 조국이 먼저.” 이 말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후보와 대결했던 공화당의 후보 매케인(John McCain)이 후보 수락연설에서 한 말이다. 대단히 진부한 얘기다. 그런데도 당시 필자에게는 이 말이 아주 참신한 얘기로 들렸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만큼 애국이라는 단어를 잊고 지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러면서 문득 저런 집안이 있고 저런 인물이 있기에 미국은 위대한 나라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고향을 떠나 황무지인 미주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의 나라, 오직 개척정신 하나로 독충과 잡목과 짐승과 인디언과 싸우면서 농토를 일구고 정착한 사람들의 나라, 자신들의 종주국인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고 세계 최초로 신생 공화국을 건설한 사람들의 나라, 그리고 연방 탈퇴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면 남북전쟁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의 나라, 세계대전에는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참전하여 연합국에게 승리를 안겨 준 사람들의 나라, 냉전기에는 모든 자유주의 국가의 안전을 위해 공산세력과 세계평화를 위한 소방수 역을 자임하고 나선 사람들의 나라, 그리고 6·25전쟁 때에는 유엔참전국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 준 사람들의 나라. 그런 나라의 사람들 중에서도 매케인의 이력을 보면 가히 교목세신(喬木世臣, 집안 대대로 중요한 벼슬을 하였기에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는 신하)이라 부를 만하다.


월맹군에 붙잡혀 극한 협박·고문에도

위대한 조국애 지켜낸 매케인


매케인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4성 장군 출신의 전쟁영웅이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전쟁영웅이었다. 자기의 두 아들까지도 언제든지 전쟁에 뛰어들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군인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의 영웅으로 일본의 항복문서 서명식이 거행되는 미주리함상의 증인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똑같이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나서 아들 매케인이 참전하고 있는 월남전에도 참전하였다. 아들이 포로로 있는 현장에 눈물을 머금고 폭탄투하를 명령해야만 했던 사령관으로도 유명하였다.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된 매케인 본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더욱 극적이다. 


매케인은 1967년 10월 월남에서 자신의 전폭기를 몰고 하노이 상공에서 폭격을 하려는 순간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받고 공중 탈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팔다리가 부러지는 엄청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월맹군과 민간인들에게 붙잡혀 갖은 모욕과 구타 속에서 환경이 열악하기로 이름 높은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러는 사이 월맹군은 그의 부친이 미군사령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악랄한 방법을 동원하여 회유 협박 고문을 하면서 석방을 조건으로 반미(反美)활동에 앞장설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거부하였다. 수감된 동료들이 석방될 때까지는 자신은 절대로 이 수용소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미국에 대한 어떤 비방도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이 신념 때문에 그는 5년간이나 더 그 지옥 같은 수용소에 억류될 수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애요 동지애요 조국애인가? 


조국의 고마움 잊은 채 살아가는 현실에서 

모든 나라 국민에게 애국심 깨우쳐


필자는 그가 대통령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로 그를 지켜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전쟁영웅이 반드시 훌륭한 대통령이 되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그의 전우애와 애국정신을 보면서 부러워할 뿐이었다. 그의 그런 정신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가치로 높이 떠받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해서다. 그는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전쟁 포로였을 때 조국을 사랑하게 되었다. 미국의 고결함과 지혜, 정의, 선의 때문에 미국을 사랑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리당략적 원한이나 적대감은 대의가 아니라 병적인 증상”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정치인이 국민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제나 “나보다 조국이 먼저”라는 신념으로 살아왔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매케인이기에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비록 미국의 한 정당의 대통령후보의 입을 통해서 듣는 말이지만 참으로 오래간만에 들어 보는 말이어서 여간 신선하게 들리지 않았다. 우리 정치인들의 입에서 저런 진정성 있는 말 한번 들어 보면 속이 다 시원해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신념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잠에서 깨어나라”라고 소리치는 얘기로도 들렸다.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조국의 고마움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는 새롭게 모든 나라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북돋아 주고 있었기에 말이다.


“나보다 조국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는 국민이 많을수록 그 나라는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위대하다고 말할 형편까지는 못 되지만 훌륭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수천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시도되는 대륙세력의 침략과 해양세력의 침략을 강인한 국민정신으로 물리치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우리들이어서다. 


훌륭한 조상 상기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 삶의 품격이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에게 수도 없는 매케인이 있어 온 것도 사실이다. 외적이 쳐들어올 즈음해서는 역적으로 몰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전국각지에서 의병(義兵)이 일어나고 산중의 스님들까지도 승군(僧軍)을 조직해서 왜적(倭敵)과 싸웠다. 전투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다 주는 아낙네들의 눈물겨운 항전과 기생 논개의 희생정신이 우리의 전통으로 살아 있는 나라다. 나라를 잃을 무렵에는 자결로 저항하고 제국주의 국가의 깃발 밑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의사와 열사와 지사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다. 


군번도 없는 학도병들이 앞장서서 나라를 구하는 데 큰 공헌을 해 온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그리 흔한 사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전쟁 때마다 각종 전투에서 육탄으로 싸워 나라를 구한 덕분에 우리는 오늘 세계 10대 대국을 넘나드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우리도 대단히 훌륭하고 위대한 국민이라는 생각이다. “나보다 조국이 먼저”라는 생각만 우리들 모두가 지니고 있다면 세상에 두려울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자존망대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훌륭한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는 있다. 


못난 조상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훌륭한 조상도 많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훌륭한 조상을 상기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 삶의 품격이 달라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필자 | 김중위

경북 봉화 출생.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구대학교에서 명예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상계> 편집장, 4선 국회의원, 초대 환경부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정치와 반정치』, 『눈총도 총이다』, 『노래로 듣는 한국근대사』 등 다수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국제 PEN클럽 고문, 한국시조협회 고문 등과 함께 월간 <헌정> 편집인, 월간 <순국> 편집 고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장 등을 맡으며 칼럼과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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