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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3/01] 민중예술의 종합체 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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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해학으로 풀어낸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


인류 보편 주제인 자유와 평등 

역동적이고 유쾌하게 풀어내다  


글 | 편집부  사진 | 국립무형유산원 


우리나라 무형문화재인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신분제 등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탈춤은 춤과 음악, 연극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BTS 무대 등 현대 예술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이번 탈춤 등재에 따라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무형유산은 판소리, 김장 문화, 씨름, 연등회 등 22개가 됐다. 



제1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산하 평가기구의 등재 권고를 받아들여 지난 11월 30일 한국의 탈춤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정식 명칭은 ‘한국의 탈춤’(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이다. 탈춤이 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적 신분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고, 이런 주제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탈춤은 북청사자놀음, 봉산탈춤, 오광대 등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13개와 시도무형문화재 5개로 구성돼 있다. 춤과 음악, 연극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 BTS 무대 등 현대 예술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허용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는 “한국 탈춤은 모든 사람의 자유, 보편적 평등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역동적이고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한국 탈춤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억압된 민중의 스트레스 출구


가면을 쓰고 하는 놀이는 농경 사회 초기부터 있었다. 가을걷이에 감사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할 때 가면을 쓰고 춤을 추었다. 삼국시대에는 궁중에서 열리는 연회나 불교 행사 때 탈춤 공연이 마련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산대도감(山臺都監)이라는 관청을 두어 국가 행사가 있을 때 가면극을 상연했다. 하지만 산대도감이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 중기에 해체되면서, 관청에 속해 있던 광대들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가 탈춤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나중에는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탈춤을 전문적으로 추는 집단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탈춤으로는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 별신굿 탈놀이, 함경도의 북청사자놀음, 황해도의 봉산탈춤과 은율탈춤, 경상남도 통영의 오광대놀이 등이 꼽힌다. 강원도 강릉의 단오굿에서도 관노비들의 탈춤을 볼 수 있으며, 한양 주변에서는 산대놀이가 자주 공연되었다. 산대놀이는 인조 때 산대도감이 폐지되자, 여기에 소속되어 전문적으로 춤을 추던 사람들이 나가 공연을 하면서 생겨났다. 서울의 송파산대놀이나 경기도 양주의 별산대놀이가 오늘날까지 전해 온다.


탈춤의 내용은 지배층이나 특권층을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 특히 조선 후기의 탈춤은 무능하고 부패한 양반이나 계율을 어기고 문란한 생활을 하는 파계승을 조롱하고, 그릇된 남녀 관계나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풍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탈춤에는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양반의 종이지만 주인공인 말뚝이부터 승려, 일반 서민인 신발장사, 무당, 떠돌이 한량, 문둥이, 백정, 무동, 심지어는 원숭이, 사자 등 아주 다양한 계층과 부류의 사람(그리고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나와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속한 계층의 문화를 직설적으로 보여 준다. 탈춤은 여기에 음악과 춤이 가미되고 수많은 재담과 연극적인 요소 등이 어우러져 최고의 민중예술이 되었다.


탈춤은 마을의 공터나 언덕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에서 대중 공연으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먼저 풍물패가 마을을 돌면서 길놀이를 하여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공연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탈춤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에 호응하면서 함께 즐기고, 억눌렸던 감정들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소망을 빌었다. 지배계층을 공공연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탈춤은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웃음과 해학의 이름으로 유일하게 허용된 민중의 출구 역할을 했다.


한국전통극의 대표, 봉산탈춤


황해도(해서 지역)에 널리 전해져 오는 탈춤의 한 종류다. 해서 지역에서는 가면희나 가면극을 탈놀이 혹은 탈놀음이라고 하지 않고 ‘탈춤’ 혹은 ‘놀탈’이라고 했다. 봉산탈춤은 다른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고, 배역의 활달한 춤과 뛰어난 연기로 국내 최고의 탈춤으로 명성을 떨쳤다.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젊은 계승자들의 우수한 기량과 지속적인 세계일주 공연으로 오늘날 국제적인 한국전통극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전통극이라 하면 봉산탈춤을 떠올릴 정도로 국내외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봉산탈춤은 여러 지역에 전승되는 탈놀이에 비해 탈의 원형과 기능, 제작기술, 춤사위의 독창성과 연기적인 표현, 다양한 의상과 미적 우수성, 노래와 규모를 갖춘 반주악 등 여러 측면에서 민속적 수준을 넘어 풍부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마을의 단결 도모, 북청사자놀음


북청사자놀음은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하는 탈놀이로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북청사자놀이의 주목적은 벽사진경(辟邪進慶)에 있다. 백수의 왕으로 벽사의 뜻을 가진 사자가 가면으로 전래하는 과정에서 악귀를 내쫓고 마을이 태평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면서 정월 대보름날 사자놀이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아이를 사자에 태우면 무병장수한다거나, 사자 털을 베어다 두면 장수한다는 생각에서 사자놀이의 종교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사자놀이를 통해 마을의 단결과 협동을 도모하는 사회적 통합의 기능도 매우 중요했다. 정월 16일에는 그동안 들어온 곡식과 지출한 경비 등을 결산했다. 남은 곡식은 마을의 극빈자에게 일부 주고, 학비가 없어 공부를 못 하는 학생을 지원하며, 마을 노인들의 경로잔치에 쓰고, 마을 회관인 도청을 새로 짓는 경비 등 마을의 공공사업에 사용했다. 일 년에 한 번 큰 명절을 맞이해 밤새도록 춤과 노래를 즐기며 흥과 신명을 푸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긴장을 풀고 활기 넘치게 새해를 시작하는 오락적 기능도 있었다.


양반에 대한 신랄한 비판, 

오광대


다섯 광대가 탈을 쓰고 춤추며, 대개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극을 오광대(五廣大)라고 한다. 경상남도 일대에 분포하는 산대도감계통극의 한 분파다. 현존하는 오광대의 주된 내용은 벽사의 의식무(오방신장무), 양반에 대한 모욕, 파계승에 대한 풍자, 일부와 처첩의 삼각관계에서 오는 가정비극, 축사연상(逐邪延祥)의 축원무(사자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각 지방의 탈놀이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중부와 서북지방의 탈놀이에 비해 파계승놀이가 약화되어 있는 반면 양반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는 말뚝이재담은 가장 신랄하다. 연출 형식은 다른 탈놀이와 마찬가지로 춤이 주가 되고, 재담(대사)과 노래와 동작이 곁들여 연기된다. 춤은 염불·타령·굿거리 등 민속무용에 쓰이는 반주곡들에 의해 춘다. 

특히 농악의 사물(四物) 즉 꽹과리가 주도하는 장구와 북 등 타악기의 반주음악으로 지방적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오광대 중 1964년 ‘통영오광대’와 ‘고성오광대’가, 1980년 ‘가산오광대’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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