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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순국선열, 그 아름다운 희생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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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중 가장 으뜸은 순국선열

순국선열유족회, ‘법정단체’ 조속히 지정해야 


글 | 심재추(월간 순국 편집주간)


 한 해가 또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다. 광복 77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현재의 대한민국에 만족해 이 나라를 만든 순국선열을 잊고 있다. 각종 공식행사 때,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을 올리면 무엇하나. 순국선열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이를 기리고자 하는 것인가? 일제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광복 이전까지 국내외에서 일제로부터 빼앗긴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을 벌이다가 목숨 바치신 분들을 우리는 ‘순국선열’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순국선열을 기리는 것은 민족정기를 살리는 일이자 애국혼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요, 국민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인생을 산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치 있게 산다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지난 11월 17일은 ‘제83회 순국선열의 날’로, 조국의 독립과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처절하게 숨져 가신 15만 순국선열을 기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시애틀 교향악단 공연장인 베나로야홀 외벽에는 미국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전몰장병을 기리는 시구가 새겨져 있다.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이/ 평화와 새로운 희망의 서곡이었는지 아니면 헛된 것이었는지./ 우리의 죽음을 당신들께 남기니 의미를 부여해주세요./ 우리는 젊어서 죽었습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대한민국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이 나라를 세우려고, 지키려고 스러져갔던가!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유사시에 나라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던질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청년들이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던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적인가! 


순국선열의 은혜로 나라와 생명을 보전한 우리는 당연히 그들을 깊이 애도하고 그들의 희생을 보람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 우리 후손이 해야 할 마땅한 의무다. 그래야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바르게 서고, 또 영원히 지켜지는 것이다.


우리는 순국선열에게 

얼마나 감사하며 기억하고 있는가?


‘애국(愛國)’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아무리 말해야 무엇하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기리는 순국선열 예우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른바 국가유공자 단체설립법 개정이 아무런 성과 없이 또 올해를 넘길 것 같다. 대한민국이 광복된 지 77년이 지나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올랐지만 대한민국 건국의 제단에 성스러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죽음은 아직도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국가유공자란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유공자 중에서 으뜸은 ‘순국선열’이다. 그들은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헐벗으며 싸우다 고문으로 죽고, 싸우다 죽고, 총칼에 죽고, 매 맞아 죽고, 굶주림에 죽고… 모두 하나같이 나라를 위해 태산같은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럼에도 순국선열보다 정작 대접을 받는 것은 살아서 돌아온 애국지사들이었다. 그 수가 이미 죽어 말없는 순국선열보다 많았고, 광복 이후의 현실 공간에서 발언권도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가 광복회라고 할 수 있다. 광복회의 설립 취지도 중요하지만, 이 때문에 순국선열의 큰 빛이 가리워져서는 안 된다. 


현재 국가유공자 법정 단체로는 독립운동 단체인 광복회 1개,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등 호국단체 10개, 4·19와 5·18 등 민주화단체 6개 등 모두 17개 단체가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6·25와 4·19, 5·18 등은 건국 이후의 사건에 기인한 단체임에도 모두 세분화하여 법정단체로 지정되었고, 더욱이 대상 인원이 200명 미만인 유족 단체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법정단체로 지정되어, 국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 단체에서는 ‘광복회’만 유일한 법정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나라를 독립하는 데 목숨까지 바친 이들이 남긴 가족들을 77년 동안 국가가 냉정하게, 그리고 아직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재산, 그리고 가족까지 모든 것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 15만여 명의 순국선열과 유가족을 77년 동안 왜 정부는 아직도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15만 명의 순국선열이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라서 수백여 명에 불과한 다른 국가유공자 단체보다 이렇게 푸대접을 해도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정말 정상적인 국가인가. 이러한 모습이 진정 내 조국이 맞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희생의 고귀함 알려주는 

진정 품격있는 국가로 만들어야


“아무리 애국이 좋아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보상받는 일이 아니라면 확산되거나 계속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워싱턴’은 영국과의 독립운동 때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백하고 있다. 미국 군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존경심과 우대하는 풍토는 국가를 위한 희생의 고귀함을 알려주는 문화를 가꾸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분들의 가족이 가난에 허덕이고, 존경과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앞으로 누구에게 나라를 위한 희생을 요구할 것인가. 국가를 위한 희생보다는 자기 역할을 잊은 채 제 목숨을 지키는 게 최우선인 역겨운 자들을 만들어 낼 뿐이다. 


우리가 순국선열을 기리고, 그 후손들을 보듬는 것은 민족정기를 살리는 일이자 애국혼을 살리는 일이요, 국민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로 미흡한 순국선열의 유족과 후손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위해 ‘순국선열예우법’을 새롭게 제정하거나, ‘국가유공자 등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순국선열유족회를 법정단체(공법단체)로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업적과 발자취를 재정립함은 물론, 순국선열 관련 사업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고, 순국선열의 정신을 우리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것이다. 


순국선열유족회는 2021년 4월 29일 이동일 회장 외 임원 23명이 순국선열의 위상 확립과 그 유족들이 소외되고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국가유공자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개정을 국회에 청원하였다. 하지만 2021년 6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법안심사 소위로 넘겨졌다. 심사 소위는 ‘심도있는 심사 필요성’으로 2달간 1차 연기한 후, 2021년 9월 27일 ‘심도있는 심사 필요성’이라는 똑같은 이유로 2024년 4월 29일까지 3년을 연기시켰다. 한마디로 제21대 국회 임기 말까지 연기시켜 ‘순국선열 예우에 관한 법’을 만들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심도있게 하기 위해 특정과목을 시험 전날에 공부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치현안에는 그렇게 집착하면서 정작 필요한 법안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심사를 하지 않는 해괴한 국회가 아닐 수 없다.


남은 자들의 존경과 기억으로 

순국선열의 명예를 지키자 


『반대론』의 저자인 미 소설가 머카디는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국회의원이란 대부분 그들이 즐겨 입는 조끼는 고깃국물로 얼룩져 있으며, 위선적이고 뺀질뺀질하다. 되는 대로 말하는 그들의 연설 또한 정치적 생색이라는 고깃국물로 얼룩진 무식한 정상배들이다”라고 매도한다. 그래도 모두가 아니라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소수는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도 국회를 잔인하게 풍자한다. “국회란 지위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양심을 물물교환하는 커다란 시장이다.” 의회의 본산인 영국은 경고한다. “부패한 정치는 부패한 국회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이다. 부패한 국회의원을 선출한 것은 국민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국선열 예우에 관한 특별법이 아직도 심도깊게 국회에서 심사 중이라고 믿고 싶다.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그 법을 읽고 있지 않다면 너무 큰 실망감과 자괴감을 얻게 될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듯 움직여야 순국선열 예우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가 비록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독립운동을 한 순국선열만큼은 지켜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나라가 아무리 잘 살려고 날개의 중요성만 강조하면 무엇하나, 뿌리의 중요성을 잊지 않을 때 우리 대한민국은 더 큰 비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순국선열 예우에 관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기대해 본다.  


필자 | 심재추 

문학박사. <월간 순국> 편집주간. 『한국문학의 근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에서 현대문학사와 영상문학, 디지털관련 문화콘텐츠 분야를 주로 연구·강의한 바 있다. 현재 디지털 콘텐츠 전문기획사인 ㈜디플랜네트워크를 설립, 간행물 발간 및 디지털콘텐츠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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