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 홍일식 문화영토연구원 이사장·전 고려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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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와 역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인문학의 거장
‘한국적 인본주의’가 한류의 근간
세계평화·인류행복 이끄는 문화대국으로
서울 태생으로 조선조 손꼽히는 문벌 가문인 남양홍씨 후예다. 대대로 내려온 학자 집안답게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했다. 김영삼정부 때 교육부 장관, 총리 후보까지 올랐지만 상아탑에 머물러 있겠다며 고사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60여 년간 쌓아온 학문의 높이와 깊이는 당대 최고라 할만하다. 국문학의 거장이면서 민족과 역사, 전통문화를 평생 연구해왔다. 한발 앞서 시대적 화두를 던지며 치열하게 연구하고 가르쳐온 실천적 지성인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반에 이미 ‘문화영토’라는 화두를 던지며 한류를 예언한 장본인이며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세계효문화본부 등을 이끌며 대한민국 역사와 정신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2019년 사재를 털어 문화영토연구원을 설립,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홍일식 전 고려대학교 총장을 성북동에서 만났다.

문화영토연구원 사무실은 홍일식 이사장의 성북동 자택에 자리하고 있다. 계단을 내려가니 정면에 기개 넘치는 산봉우리가 우뚝 솟은 산수화가 시선을 붙들었다. 그림 양쪽으로 인자함이 돋보이는 흉상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쓴 유묵이 어우러져 있고, 벽면에는 『조선왕조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종장헌대왕실록』, 『한국민속대계』, 『한국사대사전』 등 고서들이 빼곡했다. 통유리로 스며드는 맑은 가을 햇살이 정갈한 서재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문득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60여 년간 세상 유혹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신우일신 몸과 마음을 닦으며 켜켜이 쌓아 올린 거장의 역사가 가슴을 울렸으리라.
‘대한민국의 기적’ 일군 협업의 역사
“세월 잘 만난 탓에 원시 농경사회부터 인공지능 시대까지 살고 있으니 선택받은 인생이지요. 나라가 어지럽지만, 본래 우리 역사 속에 정치는 항상 어지러웠어요. 국가사와 민족사가 같이 가는데, 일반적으로 국가사가 내려갈 때 다행히 민족사가 올라가거든요.”
첫인사에서 석학의 깊이가 엿보였다. 짧은 몇 마디 말 속에 역사, 정치, 국가, 민족이 한데 어우러지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흰색 셔츠와 검정색 슈트, 주홍색 타이의 정갈하고 세련된 조화도 완벽했다.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정도를 걸으면서도 멋을 잃지 않았던 선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세동점 기간에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어요. 세계사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죠. 모든 나라가 독립투쟁을 했고 2차대전 후 140여 개의 나라가 독립을 했어요.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근대국가 건설에 성공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해요.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제가 연구한 결론은, 우리 민족 모든 구성원이 서로가 절묘하게 역할 분담을 잘 해냈기 때문이에요.”
그는 역할 분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자 역할을 분담해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갔어요. 중국과 미주로 망명해 무력 항쟁을 벌이고 외교적 독립운동을 택한 강경투쟁 노선과 국내에서 갖은 수모를 참아가며 민족의 역량을 키워 미래를 준비해온 온건준비 노선이 그것이죠. 전 민족의 차원에서 보면 밖에서는 광복을 위한 투쟁, 안에서 자기 역량을 키우는 노력이 병행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두 역량이 광복 후에 합쳐져 오늘날 전대미문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죠. 식민지 해방투쟁에만 전념한 다른 나라들이 국권회복은 했지만 아직 민주화·산업화를 이루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뚜렷해집니다.”
그는 친일파 논란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단편적 사건을 빌미로 친일파로 낙인찍기보다, 역사적 맥락에서 논리적 합리성을 찾고 차분히 옥석을 가려 역사적 인물의 공과 사를 따져볼 때가 되었다고 조언했다.
고상한 국민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

홍일식 이사장은 역사 연구와 더불어 전통문화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고려대학교 제13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동양고전에 대한 교육을 강조했다. 당시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교양과목으로 ‘명심보감’을 수강해야 했다. 그는 외국 석학들이 학교를 찾으면 무조건 한정식집으로 모셨다. 한국 전통문화의 놀라운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부심 또한 남달랐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펄 벅 여사가 한국을 소재로 『살아있는 갈대(Living Reed)』라는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1960년 늦가을 한국을 방문했더랍니다. 지프차를 타고 경주 안강 근처 국도를 지나는데, 지게에 볏단을 짊어진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대요. 미국 같으면 당연히 농부가 그 달구지에 올라타고 채찍을 휘두르면서 갈 텐데, 한국의 농부는 소와 짐을 나누어서 지고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펄 벅 여사는 우리나라를 ‘고상한 국민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격찬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만물이 공생공영하는 문화를 높이 산 것이죠.”
그는 “우리의 뼛속에, 핏속에 살아있는 게 인본주의”라고 역설했다. 지금의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것도 한류 콘텐츠 안에 인본주의, 즉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란다.
“사람이 생명을 잃을 위기에 봉착했을 때 서양 사람들은 핼프 미(Help me), 일본사람들은 다스케데 구레(たすけてくれ), 중국인은 추밍(救命)이라고 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날 살려’가 아니라 ‘사람 살려’ 그럽니다.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당할 때도 ‘아이고, 사람 잡네’라고 하죠. ‘내’가 아닌 ‘사람’을 강조하는 인본주의가 우리 삶 곳곳에 녹아있어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성공비결을 “전 세계적 서바이벌 게임에 한국적 휴머니즘 장착”으로 꼽았던 해외 언론의 분석기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노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게임에 뛰어들고, 목숨이 걸린 서바이벌에서 홀로 버려진 노인을 자청해 떠맡는 스토리에는 효와 노인 배려라는 한국적 정서가 강하다. 어찌 보면 그가 오래전부터 예언해온 ‘한국적 인본주의’의 저력이 세계에서 제대로 빛을 본 셈이다.
인문학의 지평 넓힌 세기의 역작
홍 이사장이 이룬 학문적 성과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만큼 방대하다. 그 가운데 『한국문화사대계』, 『한국민속대관전』, 『중한대사전』 등 수십 년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만든 걸작들은 인문학을 발전시킨 공로가 매우 크다.
시인 조지훈 선생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을 지내다 타계할 무렵 연구소의 총간사였던 그에게 “『한국문화사대계』를 완간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던 그의 가슴에 ‘민족’이란 두 글자를 평생의 화두로 새긴 계기였다. 『한국문화사대계』는 2권까지 나온 상태였고, 이후 출간 작업을 도맡아 전 7권을 1972년에 완간했다. 『한국문화사대계』는 순수 학술 도서로는 드물게 그 후 100만 질이 판매됐다. 학문적 축적이 많지 않던 시절의 획기적인 사업이었고, 훗날 일본 도쿄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한 저널에서 광복 후 한국학 연구의 3대 업적 중 하나로 꼽았다.

1995년 발간한 『중한대사전』 은 27년 세월의 피땀이 서린 역작이다. 중국·일본·홍콩·북한에서 나온 중국어 사전이 15만 어휘에 불과한 데 반해, 『중한대사전』은 2배가 넘는 30만 어휘를 수록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발간 후 25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세계에서 이를 능가하는 사전이 없다고 한다. 국문학 전공자가, 중국어과가 없는 고려대에서, 수교도 안 된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해낸 결과물이라 생각하니, 더 놀랍다.
“역사·문화적으로 봤을 때 중국 본토가 통일되면 한국에 분명 영향이 있을 거라 판단해서 중국어 대사전 편찬작업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러한 예측을 이해해주지 못했고, 중국에 대한 국교도 안 된 상황이라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어휘를 모으려고 홍콩에 가서 약학, 의학, 화학 등 특수용어사전 사서 가지고 오면 김포공항에서 검열에 걸려 다 빼앗겼어요. 내용과 상관없이 공산국가에서 출간된 책이라 안 된다는 거예요. 당시에는 한국에 중국어 전공자가 없어서 중국 대학과 긴밀하게 협력해 교열과 감수를 진행하느라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죠.”
인문 분야의 학술·문화에서부터 사회·역사·정치·경제·과학·기술·무역 등 각 분야에 걸친 새로운 어휘와 용법을 광범위하게 망라한 덕분에 훗날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외교를 펼치며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할 당시 『중한대사전』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문화대국’ 향한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되다
“문화 앞에 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의의 경쟁을 할수록 서로를 배우고 모방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가며 더욱 고매한 인간적 품위를 높여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인류의 가장 절실한 열망인 평화와 행복은 정치와 경제보다는 문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7월 <문화영토연구> 창간호를 발행하며 쓴 창간사 내용 중 일부다. ‘문화영토’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문화영토연구원은 2019년 7월 홍일식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든 단체다.
그가 ‘문화영토론’을 처음 구상한 때는 1978년이다. ‘민주화의 봄’을 맞이했던 1980년,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당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내에 ‘영토문제연구실’을 개설, 문화와 영토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2년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이었던 그는 ‘새로운 문화영토의 개념과 그 전망’이라는 제하의 개회사를 겸한 학술강연에서 처음으로 ‘문화영토론’을 학계에 제기했다. 이후 1983년 10월 30일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학술지 <영토문제연구>를 창간하고 논문과 저서 발간, 언론 인터뷰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근래의 한류를 비롯한 우리 민족문화의 눈부신 세계화를 목도하면서 우리의 민족사와 국가사가 유사 이래 인류역사 창조의 지류(支流)가 아니라 주류(主流)로, 더 이상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 그리고 따라만 가는 주변부가 아니라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중심부로 크게 떨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대한민국은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선도할 수 있는 문화대국으로 나아가야 해요.”
앞으로 문화영토연구원은 우리 인류문화사에서 문화영토론을 중요한 학문 주제로 성장시키기 위해 △문화영토 정책 개발 연구 △효문화 확산과 세계화 연구·사업 △문화체험교실 운영 △장학사업(다문화가정, 조선족·고려인 가정, 탈북동포 가정 청소년 대상) △학술지원·우수연구논문 시상 등을 주요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홍 이사장은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기획위원,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공동의장,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장,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이사장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에서도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우당기념사업회는 17년간 이끌어왔다.
“21세기는 ‘문화주권’ 시대이며, 문화대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도덕성 함양이 중요합니다. 마오쩌둥과 장제스를 비교해보면 답이 나와요. 1945년 당시 재력·병력·화력, 국제적 위상으로 보면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장제스가 우세했어요. 그런데 불과 4년도 안 돼서 중국 대륙은 마오쩌둥 천하가 됐어요. 그 결정적 요인이 도덕성이에요. 도덕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순국선열을 우러러 모셔야 합니다. 외국에 놀러 가는 사람은 많은데 순국선열을 기리는 사람은 적어요. 기성세대가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이에요. 지금이라도 순국선열 선양과 예우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해요. 그것이 곧 문화대국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문화대국을 향한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되었다.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꿈꾸며 독립투쟁에 나섰던 우리 선열들의 고귀한 발자취가 등대처럼 그 길을 비춰 주리라. 그리고 홍일식 이사장은 선열과 미래세대를 잇는 든든한 징검다리가 되어 세계의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