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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 성장현 서울시 용산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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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은 순국선열의 도시’ 자부심으로 역사문화도시 건설  


조국 독립 위해 싸운 선열들의 가르침 

역사 물줄기 타고 후손들에게 큰 울림


글 | 편집부 

사진 | 용산구청


 1979년 12월, 고향 순천에서 탄 서울행 완행열차 종착역이 용산역이었던 까닭에 용산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어려운 형편에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공사현장 일용직에서부터 책 판매원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정직과 성실, 인내의 땀방울이 쌓이고 쌓여 간절한 꿈이 이루어졌다. 1998년 43세의 나이에 서울시 최연소 구청장으로 이름을 올린 이후 12년간 구청장을 맡아 용산구의 놀라운 발전을 이끌었다.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역사·문화·관광사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특히 독립운동 역사를 바로 세우고 선양하는 일에 앞장섰다. 유관순 열사 추모비와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건립에 이어 지난 3월 23일에는 용산역사박물관을 개관했다. “용산은 순국선열의 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역사의 주춧돌 위에 도시의 미래를 쌓아온 성장현 용산구청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 년 전 햇살 따사롭던 어느 봄날,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에서 백범김구기념관, 효창공원을 따라가면서 ‘용산, 참 괜찮네’ 하는 생각을 했었다. 흔히 지자체들에서 독립운동 발자취를 새긴다며 벌이고 있는 일련의 사업들이 ‘보여주기식’ 일면이라, 알맹이 없는 껍데기를 보는 같아 헛헛할 때가 많은데, 용산은 조금 달랐다. 역사에서 도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엿보였고, 숱한 역사의 장면 가운데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을 중심에 두려는 시정철학이 읽혔다. 그런 까닭에 오래전부터 성장현 구청장을 만나보고 싶었다. 운 좋게 그 시간이 주어졌다.


백범과 이봉창·윤봉길 의사 애국정신 기리며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에 많은 공 들여


“우리 구는 순국선열의 도시이며, 민족의 성지입니다. 바로 효창공원 덕분이죠. 백범 김구 선생과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임정요인(이동녕·차리석·조성환) 등 7위 선열이 공원에 묻혀 계십니다. 안중근 의사 가묘도 있고요. 구에서는 효창공원의 의미를 주민들에게 더 상세히 알릴 수 있도록 2016년부터 7분 선열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열사 상시개방을 이어오고 있고, 매년 숭모제도 열고 있어요. 또 2015년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에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세웠어요.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힌 뒤 이장 과정에서 실전(失傳)된 열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죠. 2020년에는 지역의 숙원이었던 이봉창 의사 기념관을 옛 집터 인근에 조성했습니다.” 


성 구청장은 용산구 저변에 흐르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는 “용산은 순국선열의 도시”라는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 까닭에 40년 용산에 사는 동안 12년을 구청장으로 용산구를 이끌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에 많은 공을 들였다. 노력만큼 커다란 진전을 이루어 어느 지자체도 해내지 못한 ‘역사문화도시’의 위엄을 확고하게 세웠다. 숱한 업적 가운데 그는 이봉창 의사 기념관 건립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았다. 


“대한민국 영웅인 이봉창 의사는 용산에서 나고 자란 대표적 애국 투사입니다. 김구 선생이 주관한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1932년 1월 8일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죠. 비록 의거는 실패했지만 침체된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봉창 의사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됐어요. 1등급 ‘대한민국장’이 아닌 2등급이라는 사실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업적에 걸맞은 예우가 너무나도 부족했어요. 이러한 현실을 보며 구청장이기 이전에 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의사의 업적을 알리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죠. 처음에 생가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3년 동안 활동을 했지만, 고증작업이 쉽지 않아 의사의 옛집이 있었던 곳에 기념관을 건립하게 되었어요.” 


이봉창 의사 기념관(역사울림관)은 의사의 집터가 포함된 효창4구역(현 용산KCC스위첸아파트) 주택재개발사업에서 기부채납 받은 부지에 지상 1층, 연면적 70㎡ 규모로 지어졌다. 전시실, 사무실, 툇마루를 갖춘 한옥 형태이며, 건물 외 부지는 이봉창 역사공원으로 꾸며졌다. 명칭 또한 구민 공모를 통해 선정해 의미를 더했다. 


12년간 ‘지역발전’과 ‘구민행복’에 전념

교육·복지·역사·개발·안전에서 고른 성과


성장현 구청장은 순천 출신이다. 순천과 용산, 거리도 멀고 지역적 연관성도 없어 보인다.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걸까. 

“1979년 12월, 고향 순천에서 탄 서울행 완행열차 종착역이 용산역이었던 까닭에 용산과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어려운 형편에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공사현장 일용직에서부터 책 판매원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용산에서 두 아이를 낳아 길렀고 이제는 아이들은 물론 손주들의 고향이 된 이곳 용산에서 구청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1991년 용산 초대 구의원에 당선됐고, 1998년 43세의 나이에 서울시에서 최연소 구청장으로 당선됐다. 이후 2010년 민선 5기 구청장으로 돌아오기까지 정치적 아픔이 컸다. 선거 한 달 전 지인들에게 밥 한 끼 사려고 했던 것이 문제가 돼 10년간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10년의 세월이 아프기도 했지만, 용산 100년의 미래를 구상하는 기회가 됐다고 한다. 


“2010년 민선 5기 용산구청장으로 다시 취임해 12년 동안 지역발전과 구민행복만 바라보며 열심히 달렸어요. 4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용산은 상전벽해(桑田碧海), 천지개벽(天地開闢)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개발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유관순 열사 추모비 건립을 비롯해 도시에 역사적 의미를 더했고 용산복지재단, 꿈나무종합타운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복지에도 심혈을 기울여왔어요.”


그는 자타공인 ‘일 잘하는 구청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업적이 많은 지자체장으로 꼽힌다. 주민들과의 소통에서부터 교육, 복지, 역사, 개발, 안전까지 각 분야에서 고르게 성과를 보였다. 


용산구는 지난해 대외기관 평가에서 24건의 수상을 기록하며 ‘어나더 레벨(Another Level)’을 증명했다. ‘2021 대한민국 사회안전지수’ 1위 지자체 선정, ‘용산 역사문화 르네상스 특구 지정’(중소벤처기업부), ‘WHO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 가입, ‘아동친화도시 인증’(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여성친화도시 신규 지정’(여성가족부) 등을 통해 명실공히 살기 좋은 도시로 인정받았다. 이어 ‘제15회 대한민국교육산업대상’(국회교육위원회 위원장상), ‘제14회 치매극복의 날 유공 프로그램 운영’(보건복지부 장관상), ‘2021 기초생활보장 우수 지자체 포상’(보건복지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이외에 청소년, 청년, 여성 등과 관련해서도 많은 수상 기록을 세웠다. 


‘정치인 성장현’을 만든 8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보자 연설이었다. 1971년 순천에서 있었던 마지막 유세 연설을 듣고 법관이 되겠다던 산골 소년의 꿈은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과 감동을 심어주는 정치인으로 바뀌었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첫째도 둘째도 ‘구민행복’이었어요. 맹자가 말한 것처럼, 항심(恒心)은 항산(恒産)에서 나옵니다.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정한 재산과 생업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생기죠. 제가 이전에 쓴 책 이름도 ‘밥 얻어먹고 살기가 어디 쉽다냐?’입니다. 사람들이 더 가지려 하고 출세하려 하는 것도 결국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죠.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말인데요, 백성이 배부르고 따뜻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정치와 행정의 본질입니다. 늘어난 구 재산이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세계 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역사·문화·관광에서 성장동력 찾아


지난 3월 23일 용산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건설돼 철도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를 치료하는 병원으로 사용된 ‘용산철도병원’(등록문화재 제428호)을 리모델링했다. 붉은색 외부 벽돌 성능 회복과 철도병원 내부 흔적 보존을 통해 근대건축물 가치를 최대한 살려냈다. 


용산구가 처음 박물관 건립에 대해 계획을 수립·검토한 것은 2011년부터다. 이후 학예사 채용, 박물관 건립추진자문단 구성, 기본계획 수립용역, 박물관 자료 공개 구입, 전시 상세기본계획 수립 등 절차를 이어왔다. 


“지방자치시대, 문화관광은 지방정부의 강력한 경쟁력이에요. 용산은 이미 곳곳에서 재개발 사업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개발 이후 가치 창출을 고민해야 합니다. 도심개발이 완전히 이뤄져 근현대 역사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이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세계 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 관광에서 용산의 성장동력을 찾았죠.”


다양한 역사문화 사업들을 추진해온 결과 2021년 4월 중소기업벤처부 지역특화발전특구(용산 역사문화 르네상스 특구)로 지정됐다. 도시의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실질적인 경제유발 효과로 이어지는 아주 의미가 큰 프로젝트다. 용산역사박물관은 이러한 역사문화 르네상스 특구를 이끌 주축이 될 전망이다. 


“계획을 구체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장소를 선정하고, 유물을 확보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 방법을 지속적으로 강구한 끝에 옛 중앙대 용산병원 부지를 찾았어요. 1928년에 지어진 옛 용산철도병원 건물을 개보수해서 지역사 박물관으로 만들었죠. 양질의 유물 확보가 중요한 만큼 민선 6기에서부터 역사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대적으로 유물 수집에 나섰어요. 현재까지 4,000여 점을 모았죠. 개관 이후 ‘보더리스(경계 없는) 용산’을 주제로 다양한 유물들을 선보이고 용산 100년 역사를 갈무리하겠습니다.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도시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특구 사업이 실제적인 경제유발 효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정책을 수행하겠습니다.”


성장현 구청장은 민선 7기 마지막 임기를 남겨놓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흔들림 없다. 구청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한다. “임기 중 거의 이뤄 아쉬움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용산역에 첫발을 내디딘 후부터 정직과 성실, 인내의 땀방울로 쌓아온 40년 개인사에 대한 신뢰이며, 정치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지역발전과 구민행복에 전념해온 시간들에 대한 자신감이리라. 


“러시아 속담에 ‘역사는 사람을 벌하지 않는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는 사람을 벌한 뿐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선열들의 가르침은 역사라는 물줄기를 타고 흘러 후손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선열들의 가르침에 따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구청장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먼 훗날에도 ‘일 참 잘한 구청장’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바야흐로 봄날이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우리의 독립운동사도 기나긴 겨울을 이기고 끝끝내 봄을 맞이했다. 그래서 역사는 희망이며 새로운 출발이다. “용산은 순국선열의 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역사의 주춧돌 위에 도시의 미래를 쌓아온 성장현 구청장의 발자취가 분명 우리 역사에 소중한 페이지로 남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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