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초대석

[2022/12] KU 통일인문학연구단장 김성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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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인문학은 물리적 분단 넘어 마음 장벽 허무는 방법론 


순국선열의 역사 추적해가는 과정은

남과 북이 하나 되는 중요한 모토 


글·사진 | 편집부 


 건국대 철학과 교수 재직 시절,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동아시아 평화를 강의할 때였다. ‘보편적 철학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 발 딛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주제는 무엇인가.’ 이 물음이 가슴을 두드렸다. 밤낮없이 묻고 또 물었다. 해답은 ‘분단, 평화, 통일’에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통일인문학 연구팀을 꾸려 2009년 HK사업(Humanities Korea Project)에 선정되었고, ‘통일인문학’이라는 세계 유일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같이 행복하게’를 좌우명 삼아 13년간 통일인문학연구단을 이끌면서 수없이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포스트 통일’과 ‘통합적 코리아학’을 주제로 통일인문학 2.0 시대를 열어가는 김성민 교수를 지난 11월 15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만났다.  


가을이 곱게 내려앉은 교정을 걸었다. 초록 일색이었던 나무를 알록달록 물들인 가을 햇살이 마술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일감호에 반짝이는 햇살, 노란 은행잎 위에 내려앉은 햇살, 어여쁜 청춘의 얼굴을 비추는 햇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햇살은 사람을 미소 짓게 한다.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열어 무장해제 한다. 이솝우화 ‘북풍과 태양’ 이야기처럼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바람 아닌 햇살이었으니 말이다. 인터뷰에 앞서 햇살 예찬론을 펴는 까닭은 오늘 ‘가을날의 햇살’ 같은 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철학자에서 통일연구가로 변신하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바쁜 사람이다.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통일인문학연구단장을 병행하는 일만으로도 분주한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정책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평화발전분과 상임위원,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장, 민족의학연구원 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제한민족재단 이사 및 공동의장, 북한연구학회 부회장, 국민총행복전환포럼 부이사장 및 운영위원장, 국경없는학교짓기 이사 등 현재 몸담은 단체만도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정말 정신이 없어요. 하하. 사람들이 일 중독자라고 하는데, 맞는 말 같기도 해요. ‘더불어, 함께, 같이’ 이런 단어를 좋아해요. 남북통일 문제도 그래서 천착하게 됐고요. 철학은 홀로 태어나서 홀로 성장한 인간은 없다는 대전제에서 시작하잖아요. 함께 성장하려다 보니 바빠진 것 같아요. 하하.”


정치·사회철학을 전공한 김성민 교수는 사회적 확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인문학은 비판과 실천의 학문’이라는 믿음이 확고하다. 서양의 플라톤 정치·사회철학이 이론과 실천을 강조하고 동양철학도 지행합일을 최고 덕목으로 하듯, 그는 철학 강의에서 “철학은 명사가 아닌 ‘철학함’, 즉 실천을 통해 노력하는 동사”라고 가르친다. 


“2006년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아시아 평화를 강의할 때였어요. ‘보편적 철학도 있지만 지금 여기 발 딛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주제는 무엇인가’ 하고 물었는데, 그 철학적 화두가 ‘분단, 평화, 통일’에 있음을 깨달았어요. 미국에서도 자주 접하는 우리 문제의 본질은 역시 분단 문제였거든요. 분단체제로 인해 우리는 신체와 사고가 분단된 아비투스(습성)로 점철돼 있음을 절감했죠.”


철학자에서 통일연구가로 변신한 계기였다. 귀국하자마자 통일인문학 연구팀을 꾸렸고, 그가 진두지휘한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연구단은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2009년도 HK사업(Humanities Korea Project) 인문 연구분야에 최종 선정됐다. 


통일인문학의 지향점은 소통·치유·통합


통일인문학은 기존 북한 문제의 주요 관점이었던 사회과학적 담론과 다르게 국내 최초로 인문학적인 집단연구를 통해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국내 유일이자 최초의 방법론이다. 세계 유일 분단국이다 보니 세계 유일의 학문이기도 하다.


“70년 넘는 물리적 단절 이후 심리적 장벽이 너무 두꺼워져서 먼 나라처럼 느껴져요. 비행기로 50분이면 가고, 자유로 타면 판문점에서 개성까지 50분, 평양까지 1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인데 말이에요. 마음의 장벽이 서로에 대한 적개심으로 만들어지고 심화됐어요. 증오와 미움을 넘어서 북한은 우리의 적이고, 적을 전멸해야 한다는 집단적 무의식을 트라우마라고 봐요. 우리가 아름답게 서로 돕고 살았던 마음의 원동력을 복원해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게 인문학의 지점이죠.”


통일인문학의 지향점은 소통, 치유, 통합이다. 소통은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 등으로 생긴 역사적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통합은 남북 주민은 물론 한반도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코리안들의 정치적, 역사적 연원을 함께 보듬어 그들의 가치도 존중하는 담론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가까워지고 방어 차원에서 한·미·일 체제가 공고화되는 신냉전 시대의 핵심은 남북관계예요. 분단된 남북을 중심으로 한·미·일, 북·중·러 대립구조가 더욱 경직되는 거죠. 이럴 때일수록 진영을 넘어 각 나라가 윤택하도록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필요해요. 체제와 영토의 통일을 넘어 사람과 사회문화적 통합, 구성원이 행복한 통합이야말로 대립과 충돌, 갈등을 완화할 수 있어요.”


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통합”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외교적으로 예민한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학문, 문화, 체육, 경제 등의 민간 교류가 이루어져야 신냉전 시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분석적, 합리적 방법으로 접근하면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체제, 제도, 법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게 훨씬 쉽고 빨라요. 북쪽 학자들을 만나면 한민족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아리랑 나오면 서로 눈시울을 붉히거든요. 공통적 DNA가 전부는 아니지만, 통합으로 갈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모터라고 생각해요.”

 

‘포스트 통일’과 ‘통합적 코리아학’ 향해 일보 전진


통일인문학의 담론은 비단 남북·통일 문제만은 아니다. 갈등과 분열로 상처가 깊어진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하루에 2.6명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해요. OECD 국가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죠. 아메리칸드림에서 차별받았던 거 다 잊고 우리 스스로 파시즘이 되어 다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해요. ‘꼰대’ 논란처럼 세대 갈등도 심하죠. 젠더 갈등은 세계 1등이에요. ‘이대남’ ‘이대녀’ 성별 차이로 투표 결과가 달라지는 유일한 나라죠.”

그는 이분법으로 나뉜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어디에나 원로가 대접받는 사회가 보편적으로 성숙한 사회예요. 선배의 경륜과 경험을 경청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죠. 미디어 철학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말해요. ‘너희를 갈라치기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너희는 통틀어 20대 청춘이다. 서로 피해자다’라고요. SNS 소통방식이 남발하면서 정보가 민주화·다양화되는 데 반해 역설적으로 알고리즘에 따라 편협해지는 것도 우려할 상황이에요.”


이러한 갈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우리는 잘 안다. 서로를 미워할수록 우리 사회의 행복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홀로 태어나 성장한 개인은 없다는 철학적 명제를 기억해야 한다. 


“인성교육 못지않게 사회교육이 중요해요. 소통의 방식을 가르치고, 토론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소통은 배려이며, 배려는 역지사지하는 거예요. 남의 입장에 서보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성장하면서 남의 생각을 읽고 배우는 일에 인색해요. 그러다 보니 쉽게 선을 긋고 차별하게 되죠. 소통, 치유, 통합의 통일인문학 패러다임을 우리 사회에 적용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2009년 통일인문학연구단을 출범하면서 10년, 20년, 30년 단위로 단기, 중기, 장기 플랜을 세웠다. 10년 단기 목표는 학문적으로 100권의 책을 내고, 교수진의 논문도 수백 편 넘게 쓰면서 초과 달성에 성공했다. 


“통일인문학 패러다임이 자리잡았으니 다음 단계는 사회적 적용, 실천적 적용, 사회적 확산이에요. 11년 차부터 시작된 중기 목표였죠. 2019년 두만강포럼 연변대학에서 열린 기조발제에서 북한 학자들한테 ‘너희는 반쪽짜리 조선학이고, 우리는 반쪽짜리 한국학이다. 나는 그걸 넘어서는 통합적 코리아학을 제안한다’고 했더니 다들 동의하더라고요. 이를 위해서 현재의 대학원을 확장해 통합한국학대학원(가칭)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통합한국학대학원을 기반으로 ‘포스트 통일’에 대비하고 국내외 훌륭한 인재들을 모아 한반도 평화, 아시아 평화, 세계 평화를 위한 전문연구 및 교육기관을 만드는 것이 통일인문학연구단이 꿈꾸는 최종 목표다.


순국선열은 남북 대립 없는 유일한 주제


“순국선열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나요. 빛도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영혼을 달래면서 항일무장투쟁 전적지를 답사할 필요가 있어요. 역사적 추모와 탐방을 통해 순국선열에 대한 근원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신채호 선생이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했잖아요. 역사를 알리는 것이 선배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잘살거나 잘살기 위해 급하니까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잊는데, 물을 마실 때 수원(水源)을 생각하는 게 이치예요. 우리의 근원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아야 해요. 역사는 내가 왜 여기 서 있는지 캐묻는 거거든요.”


그는 해외에 잠들어 있는 동포의 유해를 봉환하는 데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따로 없듯 순국선열 역시 남과 북이 따로 없는, 이의와 대립이 없는 유일한 주제라고 이야기했다. 


“순국선열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어요. 앞으로 남북관계에서도 대립적 예각이 심할 때는 함께 소리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순국선열이에요. 일제강점기 조국을 위해 함께 피 흘린 역사에서 남북이 따로 있을 수 없어요. 함께 논의하고 대응하고 정책을 마련할 수 있죠. 이런 점에서 순국선열을 어떻게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기릴 것인가는 남북이 하나 될 수 있는 중요한 모토이며, 남북 분단 전에 순국하신 선열들의 정신은 남북 통일·통합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각자 나무를 존중하고, 나무의 생명과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나무들이 나무답게 어우러질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숲을 꿈꾼다. 세계 80억 명의 소우주가 더불어 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게 소명이다. 나와 너,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는 철학적 사유에서 그의 삶은 매일 새롭게 출발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듯, 햇살 같은 마음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길 소망한다. 온화한 햇살이 좌우·성별·세대·빈부 갈등의 거친 바람을 밀어냈으면 참 좋겠다. ‘가을날의 햇살’ 같은 그가 꿈꾸는 세상을 마음 다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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