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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Theme.3 일본 역사교과서의 역사인식과 왜곡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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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을 ‘파견’으로, 3·1운동을 ‘폭동’으로 기술  


왜곡과 오류 그대로 계승 일본 국가정책으로 진행

한일 역사 공동연구 절실


글 | 손승철(강원대학교 명예교수)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초·중·고 역사교과서에는 한국사에 관한 부분, 특히 고대 한일관계 및 한국에 대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 독도영유권에 관한 기술 등 여러 부분에 왜곡과 오류가 많다. 이 중 왜곡실태가 아주 심각한 항목은 임나일본부설, 삼국조공설, 왜구, 임진왜란, 한반도위협론, 한국강제병합, 징용·징병과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서술이다. 이러한 항목들에 대한 왜곡은 교과서에 따라 기술과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문부성의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 따라 대동소이하게 기술되었고, 2022년 4월 검정통과된 초·중·고 교과서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 역사교과서는 일본인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일본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과 일본인이 남긴 물질문명과 정신적 유산을 포함한 모든 발자취를 기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과서는 일본 청소년들이 현재를 이해하고,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미래의 진로를 결정하는 역사적 사고력과 비판력을 키워가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한일 양국은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웃이었으나, 때로는 침략을 하거나 식민지 지배를 하는 등 갈등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관계를 사실적으로 서술하여,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와 미래에 공존·공생하는 동반자로서의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초·중·고 역사교과서에는 한국사에 관한 부분, 특히 고대 한일관계 및 한국에 대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 독도영유권에 관한 기술 등 여러 부분에 왜곡과 오류가 많다. 더구나 이러한 행위가 일본의 국가정책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의 발행 제도


일반적으로 교과서는 자유, 검정, 국정의 세 종류로 발행한다. 일본의 경우, 검정제도를 채용하고 있고, 검정권은 문부성 또는 도도부현(都道府縣)에 신설되는 교육위원회로 되어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문부성이 전적으로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교과서제도는 ‘편찬–검정-채택–사용’ 과정을 4년 주기로 한다. 진행과정을 보면, 먼저 문부과학성에서 ‘교과서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를 발표하고, 교과서출판사가 역사학자·교육학자·현직교사를 대상으로 집필자를 선정한다. 집필이 끝나면 출판사에서 편집을 하여 문부과학성에 검정 신청한다. 그 후 문부성의 ‘교과용도서 검정심의회’에서 심사를 한다. 검정심의위원(25명)은 대학교수, 초·중·고 학교장, 전직 외교관(겸임) 등으로 선임하고, ‘교과서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 준해서 검정의견을 제시하여 출판사에 통보한다. 이후 출판사는 검정의견에 따라 수정요청표를 작성하여 문부과학성에 다시 제출하면, 검정조사심의회에서 제시한 의견대로 수정했는가를 심사하여 최종적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는 제출용·전시회용·납본용으로 견본 1만 부 인쇄하여 교과서 전시회를 개최한다. 교과서전시회는 47개 도도부현 500여 곳에서 하는데, 도도부현 교육위원회에서는 교장, 교원, 교육위원회 관계자, 학식 경험자로 구성된 도서선정심의회를 설치하여, 해당 지역의 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를 선정하고 교과서로 사용하도록 한다. 이 과정을 보면, 결국 집필된 교과서의 검정 통과 여부와 사용 여부는 전적으로 문부성의 통제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관련 서술의 왜곡실태


역사적으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은 크게 3차례 전개되었다. 제1차는 1955년 일본의 극우세력들에 의해 시도된 황국사관의 부활과 교과서에 기술된 침략 용어의 수정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때부터 교과서에 국가정책을 적극 반영하여 검정을 전문으로 하는 조사관 인력을 대폭 확충했고, 이들의 상당수를 황국사관을 가진 사람들로 충당했다. 그 결과 일본이 벌인 전쟁은 부득이했으며, 한국병합도 한국에 진출한 것이고,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밟았으며, 일본이 한국을 불행하게 했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서술했다.


제2차는 1982년 교과서 검정본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내용은 ‘8·15광복’을 ‘일본이 지배권을 상실한 것’이라 했고, ‘침략’을 ‘출병’ 또는 ‘파견’으로, ‘수탈’을 ‘양도’로, 3·1운동을 ‘데모와 폭동’으로 기술했다. 이 내용이 한국에 전해지자, 한국 정부에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한국관시정사업’의 강화책을 제시하는 한편, 국사편찬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45개 항목의 수정을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그리고 민간에서는 ‘독립기념관’ 건립 모금운동을 추진했고, 그 결과 국민성금으로 세워진 독립기념관을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했다. 그 후 일본에서는 새로운 검정기준에 의해 15개항을 수정했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해 왔다. 그러나 일본의 시정은 부분적이었고, 근본적으로는 왜곡 상태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제3차는 2001년 후소사[扶桑社]의 『새로운 역사교과서(新しぃ歷史敎科書)』의 검정통과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이 교과서를 주도한 세력들은 기존 역사교과서가 ‘자학사관(自虐史觀)’에 의해 기술되었다고 하면서, ‘자유주의사관(自由主義史觀)’에 의해 일본국가와 민족의 자긍심을 키워주는 새로운 역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역사교과서 대책반’을 구성하여 후소사교과서 25항목, 기존 7종 교과서 10항목의 수정을 요구했다.  

이 중 왜곡실태가 아주 심각한 7항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❶ 임나일본부설(일본의 바다를 건너 임나라는 곳에 거점을 두고 2백 년간 임나를 지배했다.) 

❷ 삼국조공설(고구려는 야마토에 접근했고, 신라와 백제가 일본에 조공했다.) 

❸ 왜구(왜구의 구성은 일본인 외에 조선인이 포함되었다.) 

❹ 임진왜란(조선출병: 히데요시는 명을 정복하고 인도까지 점령하려고 대군을 조선에 보냈다.) 

❺ 한반도위협론(일본을 향해 대륙으로부터 하나의 팔둑이 돌출되어 있다.) 

❻ 한국강제병합(한국 내에서는 일부 병합을 수용하자는 목소리가 있었고, 한국병합은 일본의 안정과 만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영국·미국·러시아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❼ 징용과 징병은 강제성이 없으며,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다.


이러한 항목들에 대한 왜곡은 교과서에 따라 기술과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문부성의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 따라 대동소이하게 기술되었고, 2022년 4월 검정통과된 초·중·고 교과서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0년부터는 초·중·고 역사교과서의 독도 기술 부분에 “독도[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한 영토이며, 에도시대 초기부터 돗토리번 사람들이 번의 허가를 얻어 이 섬과 주변 바다에서 어업을 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면서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학계의 대응과 전망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대응은 1965년 한일국교 재개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1975년 ‘한국관 시정사업’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역사교육연구회’에서 일본 ‘조선사연구회’와 공동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82년 2차 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45개 항목을 시정 요구했고, 민간에서는 ‘한일문화교류기금’과 ‘일한문화교류기금’을 발족시켰다. 그러나 이들 기관은 역사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로 설립된 것은 아니어서 한계가 있었다. 1990년대에 교과서 분쟁 해소를 위해 ‘국제교과서연구소’가 설립되고, 1998년에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도 활동을 개시했다.


2000년대 들어와 한국교육개발원을 비롯해 한국학중앙연구원, 고구려재단 및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이 참여했고, 후소샤 교과서가 등장하자 84개의 일반 시민단체들이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 등을 발족시켰다. 일본의 NGO 및 역사교육자협의회를 비롯해 교육계와 결속하여 한일 간에 ‘공동역사교과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활동이었다. 제1기는 2002년 5월부터 3년간 19개의 주제를 선정해 보고서 6책을 발간했고, 제2기는 2007년 6월부터 2년 9개월간 24개의 주제를 선정해 보고서 7책을 발간했다. 그 결과 일부 쟁점에 관해서는 역사해석의 오류를 공동 확인했다. 예를 들면 ‘임나일본부’와 왜구 구성원에 대한 해석은 오류가 있다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근현대 분야에서는 일부 위원의 편향된 자국 중심의 인식 때문에 논의에 장애가 되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양국 교과서 문제에 대해 공동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상설 기구화가 절실하다.


교과서 왜곡을 시정하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일본 정부의 정책과 자세, 그리고 우익세력들의 편향된 자국중심사관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독일-프랑스, 독일-폴란드의 경우, 역사분쟁을 해결하고 공동교과서 및 보조교재를 발간하는 데 5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양국 정부와 학자,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상호이해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 손승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북해도대, 동경대, 구주대에서 연구했다. 강원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국사편찬위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간사를 역임했고, 한국이사부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이사부 독도를 걷다』(2020, 역사인), 『한일역사교과서, 왜곡과 인식의 공유』(경인문화사, 2017) 등 한일관계사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와 80여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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