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Theme.1 21세기 신냉전의 본질과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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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조건에 실행되는 제국의 패권전쟁
거대한 제국전쟁 한복판에서
안보 위협하는 의존도 줄이고 호혜적 국가 연대 구축해야
글 | 이진우(포스텍 명예교수)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우리를 엄습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탈세계화를 초래하여 ‘신냉전’과 ‘시대 전환’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한편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동맹국과 다른 한편에는 유라시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가 대립하는 ‘신냉전’이 앞으로의 세계질서를 규정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냉전은 끝난 적이 없었다. 많은 사람은 비교적 오랜 기간의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이제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세계화로 인한 착시와 자기기만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전개될 신냉전의 방향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냉전의 본질과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평화의 시대가 끝나고, 그와 함께 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우리를 엄습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탈세계화를 초래하여 ‘신냉전’과 ‘시대 전환’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한편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동맹국과 다른 한편에는 유라시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가 대립하는 ‘신냉전’이 앞으로의 세계질서를 규정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냉전은 끝난 적이 없었다. 많은 사람은 비교적 오랜 기간의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이제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세계화로 인한 착시와 자기기만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전개될 신냉전의 방향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냉전의 본질과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신냉전은 냉전의 역사적 반복인가? 아니면 신냉전은 세계화의 조건에서 실행되는 제국들의 패권전쟁인가?
냉전은 일반적으로 미국과 소련, 그리고 각각의 동맹국인 서부 블록과 동부 블록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냉전(cold war)이라는 용어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 직접적인 대규모 전투가 없었기 때문에 사용되었지만, 그들이 각각 지원한 대리전쟁은 이 두 초강대국의 세계적 영향력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지정학적 패권전쟁이었다. 한반도를 갈라놓은 1950년의 한국전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이 유엔 결의안의 지원을 받아 국제 군사 연합을 구성하여 소련에 대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냉전은 이미 자유주의 진영과 유라시아 권위주의 체제와의 대립이었다.

이러한 냉전의 특성을 정확하게 포착하려면, 우리는 역사적 장면을 더 뒤로 돌려야 한다. 1939년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했다. 스탈린 정권은 소련이 이웃의 작은 국가들에 의해 안보를 위협당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핀란드와 영토를 교환하겠다고 제안했다. 스탈린은 핀란드 섬을 발트해의 전방 군사 기지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소련이 침공했지만, 핀란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저항했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과 다른 유럽 지도자들은 용감한 핀란드를 환영했지만, 서방은 군사적 개입은 고사하고 무기도 보내지 않았다. 핀란드인들은 명예를 지켰지만 결국 소모전에서 패배하여 스탈린이 처음에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은 영토를 양도했다.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1939년의 핀란드 침공을 연상시킨다. 다른 점이 있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깜짝 놀란 자유주의 진영이 서로 연대하여 우크라이나를 단지 수사학적으로만 아니라 군사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이 보여준 것처럼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주권을 지키고,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한 것이다.
신냉전은 이렇게 전쟁의 가능성과 함께 시작한다. 국제적 갈등이 평화적인 타협과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평화의 패러다임은 이제 끝난 것이다. 20세기의 냉전이 제1,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었다면, 신냉전은 언제든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세계대전이라는 용어가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 세계대전은 결코 인류의 문명을 둘러싼 전쟁이 아니다. 세계대전은 패권을 획득하기 위한 제국들의 전쟁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프랑스에 맞서 싸웠고, 영국은 벨기에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참전하였다.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와 싸우고, 그리고 독일이 소련 및 유럽의 나머지 지역과 싸운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또한 모든 추축국에 대한 미국의 전쟁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었다. 냉전은 엄밀한 의미에서 제국이 아닌 척하는 두 제국, 즉 미국과 소련 사이의 패권전쟁일 뿐이다.

제국 간의 전쟁은 이제까지 계속되었는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1년 소련 체제의 해체로 사람들은 냉전이 종식되었다고 착각한 것이다. 평화로운 경쟁체제로 인식된 세계화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었고,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만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통일된 독일은 적어도 새로운 제국을 꿈꾸고 있지는 않지만,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로서 앞으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 분명하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러시아와 중국이 부상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더욱 결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냉전의 특징 중 하나인 핵무기 아마겟돈의 가능성도 여전하다. 이 모든 것은 냉전의 종말이 거대한 전쟁 사이의 비교적 긴 평화 시기가 빚어낸 신기루였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우리는 신냉전과 함께 거대한 제국 전쟁의 한복판으로 들어선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제국 전쟁의 시작
21세기 새로운 제국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때 땅속에 파묻혀 목동들이 노닐던 로마 카피톨리누스 언덕의 폐허 속에 앉아 있으면, 누구나 제국의 쇠퇴와 몰락에 관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영국 제국이 몰락하고 러시아 제국이 쇠퇴하는 것을 보면서 제국의 시대가 끝났다는 망상에 동의할 수도 있지만, 모든 역사는 제국의 역사이다. 오늘날 세계는 두 제국, 즉 영국의 북미 식민지화에서 시작된 미국 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한족이 지배하는 중국 제국이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라시아의 3대 고대 문명인 중국, 이란, 러시아는 결코 사라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서구 중심의 단일 세계주의에 참여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세계화 덕택에 미국에 필적하는 제국으로 굴기한 중국은 정치체제의 자유화는 고사하고 세계화를 패권 확대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중국과 이란과 러시아는 반서구의 공동전선을 발전시키고 있다.
중국을 오늘날의 대국으로 발전시킨 것이 미국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중국을 새로 구성된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4개국(결국 5개국) 중 하나로 만든 것도 미국이었고, 종전 이후 중국에 엄청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한 것도 미국이었다. 1979년 텍사스를 방문했을 때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소련을 버리기로 한 덩샤오핑의 역사적 결정에 화답하듯 중국의 WTO 가입을 지원한 것도 미국이었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택한 미국의 패권 전략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미국은 동시에 강대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더 가까워져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항한다.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냉전 2.0, 즉 신냉전은 결코 과거 냉전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진영과는 관계없이 거의 모든 강대국이 말로는 분쟁이나 새로운 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냉전 이후 시대는 확실히 끝났고, 다음에 올 것을 규정하기 위한 강대국들 사이에 경쟁이 진행 중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냉전이라는 이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신냉전은 시작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잠식하려고 시도하고, 미국의 힘과 영향력에 도전한다. 그들은 경제를 덜 자유롭고 덜 공정하게 만들고, 군대를 키우고, 내부적으로는 정보와 데이터를 통제하여 사회를 억압하고, 외부적으로는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는 국제질서의 기본법을 무모하게 무시하면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제 체제에 즉각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신제국주의 전략으로 국제질서를 재편하려고 한다. 중국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기술적 힘을 모두 갖춘 유일한 경쟁자이다. 세계화로 강대해진 중국이 이제 세계화를 위협하고 있다.
신냉전은 이렇게 세계화의 몰락과 함께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는 ‘몰락’이라는 말에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세계화는 세계의 모든 국가가 공정한 질서 안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지속적인 경쟁은 언제나 지속적인 냉전을 의미했다. 그 때문에 21세기의 신냉전에서 새로운 제국들은 ‘세계화’를 패권의 수단으로 삼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푸틴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서구의 의존도를 정치적, 군사적으로 이용하였으며, 이 전쟁을 통해 의존도를 더욱 강화하려고 하였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세계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제국의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와 세계화, 안보 관점에서 구축해야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시진핑의 명백한 공모는 평화의 미몽에 갇혀있던 유럽을 깨워놓았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이제 푸틴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추구하는 아시아 전략을 위해서도 승리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틀에서 중국과 더는 평소처럼 거래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해진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는 이제 더 이상 ‘상호의존을 통한 평화’의 수단이 아니다. 세계화는 의존도를 높여 상대 국가를 예속시키려는 패권의 수단이다. 따라서 신냉전이 지배하는 미래에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을 줄이고, 호혜적인 상호의존의 자유주의 체제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자유주의 진영의 통일과 연대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제국의 부상으로 인한 경제체제의 탈동조화 현상이 극단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은 여전히 자국에서 소비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동차를 중국에서 팔고, 애플과 테슬라 같은 미국기업은 여전히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의존관계가 안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신냉전 시대에 세계화는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전만 해도 중국에 대한 견제가 단지 중국의 불공정 무역 및 경제 관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은 그 어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전략적 경쟁자가 미국과 동맹국의 첨단기술, 노하우 또는 데이터를 악용하여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반도체 전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초점이 미래의 침략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능력을 제한하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이 보건을 안보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경제와 세계화를 안보의 관점에서 보도록 강요한다. 특히 무역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는 이제 경제적 의존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특정한 국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안보는 그만큼 더욱 취약해진다. 안보를 위협하는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호혜적인 상호의존의 국가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신냉전의 도래와 함께 세계는 또 다른 큰 전환점에 도달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서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힘을 가지는가에 달려 있다. 달리 말하면,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상호의존적 관계를 선택하느냐에 좌우된다. 제국은 왔다가 사라지지만, 블록은 견뎌내기 때문이다.

필자 이진우
연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동 대학 총장, 포스텍 교수, 한국니체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포스텍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불공정사회』, 『니체의 인생 강의』,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의심의 철학』, 『중간에 서야 좌우가 보인다』 등이 있다.
[이 게시물은 순국선열유족회님에 의해 2023-01-03 15:30:45 편집위원 컬럼에서 이동 됨]